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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돼지고기 먹어 식중독···우리가 몰랐던 부처님의 죽음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한국불교 조계종과 태고종은 육식을 금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달랐습니다. 인도 불교는 탁발로 음식을 구했습니다. 고기든 야채든, 탁발 음식은 분별 없이 먹어야 했습니다. 그게 또한 수행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부처님도 그런 음식을 먹고서 큰 탈이 났습니다. 2600년 전 인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정희윤 기자가 묻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답합니다.  
 
 
부처님께서 식중독에 걸린 적이 있다고 했다. 사실인가?
 
“그렇다. 식중독에 걸려서 엄청 고생을 하셨다. 설사를 쏟아내고, 피까지 마구 쏟아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음식을 드셨나?
 
“돼지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그게 상한 돼지고기였다. 인도는 3월만 지나가도 기온이 섭씨 40~50도까지 올라간다. 옛날에는 냉장고도 없었으니, 고기가 상하기 쉬웠을 터이다. 일각에서는 발음이 비슷한 ‘버섯 요리’라는 설도 있다.”
 
부처님께서 상한 돼지고기를 드시고, 식중독에 걸리셨다. 그것 때문에 결국 돌아가셨다. 전혀 몰랐던 이야기다.  
 
“여기에는 더 놀라운 이야기가 얽혀 있다.”
 
부처님이 드신 돼지고기도 탁발로 구한 것이지 싶다. 부처님도 직접 탁발을 다니셨나?
 
“그렇다. 제자들이 챙겨주는 밥상을 가만히 앉아서 드셨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직접 탁발을 다녔다. 그럼 제자들이 일렬로 줄지어서 부처님 뒤를 따라갔다. 하루는 힌두교의 수행자인 바라문이 부처님의 탁발하는 모습을 보고서 엄청 조롱한 적도 있다.”
 
남방불교인 태국 스님들이 아침에 줄지어서 탁발을 나서고 있다. 탁발로 구한 음식은 분별심 없이 먹어야 한다. [중앙포토]

남방불교인 태국 스님들이 아침에 줄지어서 탁발을 나서고 있다. 탁발로 구한 음식은 분별심 없이 먹어야 한다. [중앙포토]

 
그 이야기 생각난다. 농사는 짓지 않고 얻어만 먹는다고 부처님을 놀렸다고 들었다. 그래서 부처님이 바라문한테 뭐라고 이야기했나?
 
“부처님은 이렇게 반박했다. ‘떠돌아 다니는 유행과 얻어 먹는 탁발의 삶이지만 올바른 수행과 참다운 지혜로 마음의 밭을 간다. 그리고 그 밭에서 ‘불사(不死)의 열매’ ‘진리의 열매’를 얻는다.’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진정한 농사가 뭔가. 마음 농사다. 그걸 짚어준 거다.”
 
잠깐만, 애초에 남방 불교는 왜 탁발을 했나?
 
“종교가 타락할 때는 항상 ‘부(富)의 축적’이 있다. 돈이 모이면 욕망이 생기고, 권력이 생기고, 파벌이 생기고, 싸움이 생긴다. 요즘 종교도 똑같다. 불교든 기독교든 싸움이 생기는 곳을 보라. 거기에는 반드시 축적된 부가 있다. 그런데 불교의 탁발 시스템은 이걸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는 역할을 한다.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면 ‘부의 축적’이 가능하지만, 탁발을 통해서는 그날그날 음식을 구하면 ‘부의 축적’이 불가능하다. 청정 승가를 위해 부의 축적을 원천봉쇄하는 셈이다.”
 
가령 오늘 내가 소고기가 너무 먹고 싶다. 그럼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계속 탁발을 해도 되나?
 
“그렇지 않다. 탁발에도 지켜야할 규칙이 있다. 일곱 집을 돌고서도 탁발을 얻지 못하면 그날 아침은 굶어야 한다. 굶은 채로 수행에 매진해야 한다. 또 폭풍우가 몰아쳐 탁발을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럴 때도 굶은 채로 수행에 전념하라고 돼 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인도의 보드가야에 있는 대탑 앞에서 한 외국인 순례객이 기도를 하고 있다. 남방불교에서는 꽃으로 붓다에게 공양을 올리는 오랜 전통이 있다. 보드가야=백성호 기자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인도의 보드가야에 있는 대탑 앞에서 한 외국인 순례객이 기도를 하고 있다. 남방불교에서는 꽃으로 붓다에게 공양을 올리는 오랜 전통이 있다. 보드가야=백성호 기자

부처님이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한 인도 사르나트의 사슴동산. 스리랑카에서 온 순례객들이 단출한 야외 법회를 갖고 있다. 멀리 우뚝 솟은 다메크 스투파는 ‘진리를 보는 눈’이란 뜻을 담고 있다. 사르나트=백성호 기자

부처님이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한 인도 사르나트의 사슴동산. 스리랑카에서 온 순례객들이 단출한 야외 법회를 갖고 있다. 멀리 우뚝 솟은 다메크 스투파는 ‘진리를 보는 눈’이란 뜻을 담고 있다. 사르나트=백성호 기자

 
부처님은 29살에 출가해서 35세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45년간 인도 북부를 돌아다니며 설법을 했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식중독으로 돌아가시게 된건가? 혹시 탁발 음식때문이었나?
 
“부처님이 80세 때였다. 하루는 대장장이집 아들 쭌다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었다. 부처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모이면 법문을 하셨다. 쭌다도 부처님 법문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부처님께 음식을 올렸다. 그게 돼지고기였다.”
 
설마, 그 돼지고기가 상한 거이었나?
 
“그랬다. 부처님이 식사 후에 배탈이 났다. 설사병에 걸렸는데 출혈도 아주 심했다. 혈변이 아주 심각했다. 식중독에 걸린 거다. 당시 부처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아, 어떡하나. 그럼 쭌다가 너무 괴로웠을 것 같다. 저 같으면 남은 삶을 자책만 하면서 살아갈 것 같다.  
 
“월드컵 경기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를 했다. 그런데 한 선수가 골문을 놓쳤다. 그 때문에 경기에 졌다. 그럼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지 않나. 이건 월드컵 결승전보다 더 한 거다. 순전히 자신의 실수로 깨달음을 이룬 성인을 죽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양심의 가책이 어느 정도였겠나. 그런데 부처님이 참 대단하다 싶은 게, 이걸 미리 예견했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처방까지 내렸다.”
 
인도 중부에 있는 엘로라 석굴. 아침에 해가 비치면 불상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신라의 경주 석굴암이 인도 불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엘로라=백성호 기자

인도 중부에 있는 엘로라 석굴. 아침에 해가 비치면 불상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신라의 경주 석굴암이 인도 불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엘로라=백성호 기자

인도 보드가야 대탑의 옆면에 새겨져 있는 붓다의 조각상. 가부좌는 고대 인도 요가의 자세다. 보드가야=백성호 기자

인도 보드가야 대탑의 옆면에 새겨져 있는 붓다의 조각상. 가부좌는 고대 인도 요가의 자세다. 보드가야=백성호 기자

 
아니,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떻게 처방을 내리나?
 
“부처님은 쏟아지는 설사로 힘들어하며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비서인 아난에게 이렇게 일렀다. ‘사람들은 이런 말로 쭌다를 슬프게 할 것이다. 당신의 공양으로 여래께서 열반에 드셨소. 당신의 실수이고, 당신의 불행이오.’  쭌다의 슬픔은 이렇게 없애면 된다. ‘쭌다여, 여래가 당신의 공양을 마지막으로 드신 후 열반에 드신 것은 당신의 공덕이며 행운입니다. 쭌다여, 나는 이 말씀을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부처님은 이 말을 그대로 쭌다에게 전하도록 했다.”
 
쭌다의 돼지고기 때문에 돌아가시게 생겼는데, 원망은 커녕 혹시 모를 양심의 가책까지 씻어주신 건가.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아무리 깨달은 분이라 해도 육신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육신의 고통도 있는 거다. 우리는 감기 몸살만 와도 아무 것도 하기 싫다. 그런데 설사를 쏟아내고, 피를 쏟아내는 그 와중에 쭌다의 고통까지 배려한 건 정말 대단하신 거다.”
 
그게 왜 가능했을까?
 
“쭌다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라고 본 거다. 그렇게 보면 부처님 자신의 육체적 고통보다, 쭌다가 겪게 될 정신적 고통이 훨씬 더 큰 거다. 불교에서는 그걸  ‘자비’라고 부른다. 중생의 슬픔이 곧 나의 슬픔이고, 중생의 가슴에 생겨날 매듭이 곧 내 가슴에 생겨날 매듭과 같다. 그걸 ‘불이(不二)’라고 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파키스탄의 라호르 박물관에 있는 붓다의 고행상. 뱃가죽을 만지면 등뼈가 잡히고, 등을 만지면 뱃가죽이 잡혔다는 경전이 기록이 실감난다. 살갗 위로 드러난 핏줄이 붓다의 고행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포토]

파키스탄의 라호르 박물관에 있는 붓다의 고행상. 뱃가죽을 만지면 등뼈가 잡히고, 등을 만지면 뱃가죽이 잡혔다는 경전이 기록이 실감난다. 살갗 위로 드러난 핏줄이 붓다의 고행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포토]

붓다가 열반하자 인도 북부의 쿠시나가르에서 다비식이 열렸다. 그 유적지를 찾은 스리랑카 출신의 한 수행자가 명상에 잠겨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그 앞에서 좌선하며 삶과 죽음의 이치를 물었다. 쿠시나가르=백성호 기자

붓다가 열반하자 인도 북부의 쿠시나가르에서 다비식이 열렸다. 그 유적지를 찾은 스리랑카 출신의 한 수행자가 명상에 잠겨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그 앞에서 좌선하며 삶과 죽음의 이치를 물었다. 쿠시나가르=백성호 기자

 
왜 너와 내가 둘이 아닌가?
 
“우리는 각자가 한 그루의 나무다. 너는 단풍나무, 나는 소나무, 쟤는 대나무. 그런데 마음공부를 하다가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게 됐다. 그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테두리가 깨지는 거다. 나는 지금껏 한 그루 소나무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닌 거다. 비유하자면 나는 한 그루 나무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숲인 거다. 그 숲 안에 단풍나무도 있고, 소나무도 있고, 대나무도 있다. 그러니까 숲의 눈에서 보면 어떤가? 소나무와 단풍나무, 소나무와 대나무, 대나무와 단풍나무가 둘이 아닌 거다. 그러니까 부처님에게는 나의 고통과 쭌다의 고통이 둘이 아닌 거다.”
 
그런 이치가 녹아 있을 줄 몰랐다. 이야기만 들어도 제 마음이 좀 더 넓어지는 기분이다. 다음 편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 건가?
 
“다음 편 주제는 ‘예수님은 어떻게 물 위를 걸었을까?’다. 누구는 이적이라고 하고, 누구는 비유라고 한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백성호 종교전문기자ㆍ정희윤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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