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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한 비핵화 협상, 남·북·미·중 4자회담으로 가야

한반도 평화 위한 비핵화 협상 구도

한반도평화워치

한반도평화워치

미·중의 발걸음이 갈수록 노골적이다. 상대국 외교 공관을 서로 폐쇄하는가 하면, 남중국해 도서 문제를 두고도 충돌한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달 처음으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무역 전쟁과 체제 경쟁에 이어 영토 문제에 이르는 전면전이다. 70년 전 미·소 냉전이 극으로 치달을 때의 모습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개인적 성향을 넘어 양국 관계에 충돌 에너지가 쌓이고 있다.
 

정부는 남북 관계를 ‘비상 시동’해 북핵 문제 견인하려 하나
북한은 한국 아닌 미국에 집착해 남북 관계 개선엔 무관심
비핵화 진전 위해선 북·미의 동시 행동 보장하는 장치 필요
미·중을 4자회담에 참여시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도록 해야

이 에너지는 대만·남중국해·한반도 중 어느 취약 지점에서 파괴력을 드러낼지 모른다. 44년 전 오늘 판문점에서 ‘8·18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전 재발의 일촉즉발 위기가 감돌았다. 다행히 미·중 관계 정상화 협상이 순항 중이던 시기였다. 워싱턴-베이징 핫라인으로 사태를 진화했지만, 한반도 지정학의 단면을 보여줬다. 당시 미·중 관계가 지금 같았다면 어땠을까? 아찔하다.
 
한반도에서 강대국을 배경으로 한 충돌을 막고 평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 국정의 최우선 순위다. 1992년 남·북 기본 합의서, 2000년 6·15 정상선언, 2007년 10·4 정상선언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합의는 결국 북한 핵 문제로 좌초됐다. 이런 좌절의 행렬을 뒤로하고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판문점·싱가포르·평양·하노이로 이어지는 정상회담 드라마가 전개됐다. 긴 역사에 걸쳐 외세 간섭과 분단 대립의 사막을 걸어온 한국민에게는 오아시스의 신기루로 비쳤다.
  
남·북·미 지도자들의 비핵화 동상이몽
 
그러나 핵무기를 보유한 채 제재를 벗어나겠다는 김정은, ‘바보 같은 전임자들’이 하지 못한 북한과의 한 판을 겨냥한 트럼프, 충돌의 위기에서 일거에 비핵 평화로의 전환을 기대한 문재인, 이 세 사람이 올린 초현실적 무대는 지금 막을 내리고 있다. 핵 단추의 위협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정상 담판에 대한 신화적 믿음은 깨지고 북한은 9번째 핵 국가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한반도의 주역은 북한과 미국이라는 평양의 오랜 주장이 더 각인됐다.
 
지금까지 북핵 문제는 두 번의 양자 회담과 한 번의 다자 회담에서 구체적인 원칙 합의에 도달했다. 1992년 남·북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그리고 2005년 6자회담의 베이징 합의다. 6자회담에서는 9·19 공동성명 등 3개의 합의가 나왔다.
 
그러나 이 합의들은 모두 이행되지 못했다. 이행 구도는 원칙 합의 단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취약하다. 매 단계 말이 아닌 실제 행동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갈수록 협상이 예민해진다. 특히 북·미 양자 구도에는 종종 2% 부족의 의사소통 문제와 2년마다 선거를 해야 하는 미국의 국내 정치 요인도 제약으로 작용한다. 다자 회담이라고 해서 이런 장애를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협상의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함수 관계도 복잡해진다.
 
어차피 북핵 문제의 처방은 배탈 나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 사이의 선택이다. 맛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덜 불완전한 것을 찾아야 한다. 일단 북핵 감시와 단계적 해체를 위한 장치를 만들고, 추가 개발을 저지하면서 최종 해결로 가야 한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각자 의사를 현장에서 교차 확인하고 특정 국가의 일방적 궤도 이탈을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기록을 보면 미국과 북한에만 맡겨두기 어려운 일들이다.
 
몇 가지 이유에서 남·북·미·중 4자회담이 현실적이다. 첫째, 북핵은 근본적으로는 한반도 문제다. 당사자인 한국이 협상 현장에 있어야 한다. 둘째, 중국 없이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김정은은 협상의 고비마다 시진핑을 만났다. 트럼프와 폼페이오도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토로한다. 셋째, 북한은 중국이 참여하는 회담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는 핵 실험 같은 도발을 하지 못했다. 북·중 관계의 레드라인이기 때문이다. 넷째, 강대국은 전면 대결 상태에서도 어느 공간에서는 타협의 여지를 찾는다. 북핵 해결과 한반도 안정은 미·중이 함께 원하는 것이다. 회담 진행에 따라 일본과 러시아의 참여가 필요할 수도 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북한의 비핵화 진전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동시 행동을 보장하는 장치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와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한이 핵 폐기에 뒷걸음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필요하다. 만약 북한이 발을 뺄 경우 중국이 이행을 강제한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중국이 진정으로 북핵 해결을 원한다면 반드시 맡아야 할 역할이다. 이런 전제 아래 한국도 미국의 적극적 행동을 독려할 수 있다.
  
세계 보지 않는 세계관은 위험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되면 북핵 해결이라는 업적을 과시하고자 할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감축·철수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해외 국방예산 감축과 미국 우선주의를 내거는 그의 성취 욕구에 맞는 소재가 된다. 이런 경우에도 핵 폐기 이행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4자 구도가 요구된다.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트럼프식 협상은 끝나고 제재는 지속할 것이다. 북한의 과격 반발과 한반도 위기가 예견된다. 바이든은 올해 초 외교정책 요강을 공개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동맹국 및 중국과 조율된 캠페인을 비상 시동(jump-start)할 것이라고 했다(‘포린 어페어스’ 기고). 다자적 접근을 염두에 둔 것이다. 중국은 진작부터 한반도 문제의 다자 구도를 지지해왔다.
 
지금 정부는 남·북 관계를 ‘비상 시동’해 북핵 문제를 견인하고자 한다. 과거 남·북 관계의 수많은 시도가 궤도에 오르기 전에 북핵 앞에서 예외 없이 주저앉았다. 다분히 북한이 한국 아닌 미국에 집착해 생긴 실패의 기록이다. 지금도 변할 기미가 없다. 정부는 북한의 이런 고질적 전략을 직시하고 한반도를 덮고 있는 국제 정세를 살펴야 한다. 미국은 대선과 무관하게 대북 압박을 상당 기간 지속하고자 할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대북 정책 구도를 존중해야 4자 회담 개최를 설득하고, 나아가 미·중을 한반도에서 조화시키는 길도 시도할 수 있다. 근대 지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세계를 보지 않는 사람의 세계관만큼 위험한 세계관은 없다.”
 
북한 비핵화 합의와 이행 실패의 역사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남북 기본합의서의 쌍둥이 합의다. 남과 북이 핵무기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13차례의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 개최에도 불구하고 핵 사찰 및 검증 대상과 방법 합의에 실패함으로써 이행이 무산됐다.
  
◆북·미 제네바 합의(1994)=북한의 흑연 감속 원자로(핵무기용 플루토늄 생산)를 폐기하는 대신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 2기를 건설해주기로 합의했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경수로 건설과 북·미 관계 정상화가 진행됐으나 1998년 북한의 장거리로켓 실험(대포동 1호)과 고농축 우라늄 의혹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미국 국내 정치의 갈등도 상당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이 빌 클린턴 정부에서 조지 W 부시 정부로 행정부가 교체되면서 2003년 폐기됐다.
 
◆베이징 6자회담 공동성명(2005)=남·북·미·중·일·러 6개국이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요체에 추가해 한반도 평화체제 및 동북아 안보협력을 포함한 포괄적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북한의 불법 자금 문제로 지체되다 2007년 1단계 이행방안을 담은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초기 이행 과정에서 북한의 핵 폐기에 대한 검증 장치 문제(한·미·일은 일괄적 검증 장치를, 북한은 단계적 장치 채택을 주장)로 인해 2008년 이행이 좌초됐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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