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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엄마와 간병 지친 딸, 누굴 살릴까…SF로 던진 질문 8

'SF8' 8부작 중 첫 에피소드 '간호중' 포스터. 식물인간 엄마를 10년째 모셔온 딸과 간병로봇 역할을 모두 배우 이유영이 1인 2역했다. [사진 웨이브, MBC]

'SF8' 8부작 중 첫 에피소드 '간호중' 포스터. 식물인간 엄마를 10년째 모셔온 딸과 간병로봇 역할을 모두 배우 이유영이 1인 2역했다. [사진 웨이브, MBC]

우주전쟁·외계인은 옛말이다. 존엄사‧취업문제‧사회적 소수자 등 현대사회의 내밀한 고민이 근미래 무대의 생활밀착형 이야기로 펼쳐진다. “사흘 뒤 지구가 멸망해도 내일의 면접을 고민하는 청춘”(『우주인, 조안』 김효인 작가의 말)처럼.
 

토종 OTT 웨이브·MBC 합작 'SF8'
한국 SF소설 토대 영화감독 8인 뭉쳐
지난달 웨이브 출시, 14일 MBC 첫방
현실적 소재, 생활밀착형 고민 담아

2주만에 30만 시청한 한국판 '블랙미러'

최근 젊은 작가들을 주축으로 르네상스를 맞은 한국 SF 문학이 영화·드라마로 확장되고 있다. 국내 SF 소설을 토대로 토종 OTT 웨이브와 MBC가 공동투자하고 한국영화감독조합, 영화사 수필름이 공동제작한 SF 시리즈 ‘SF8’이 지난 14일부터 MBC를 통해 매주 금요일 각 1편씩 방송된다. 지난달 웨이브에서 전편을 한꺼번에 선보여 2주 만에 30만명이 시청한 데 이어서다.  
 
각 50분여 에피소드 8편이 한 묶음. 총기획을 겸한 감독조합 대표 민규동 감독을 비롯해 김의석·노덕·안국진·오기환·이윤정·장철수·한가람 등 영화감독 8인이 인공지능·증강현실·재난·게임·초능력 등 각기 다른 상상을 펼쳤다.  
민규동 감독은 지난 10년간 성장해온 국내 SF 문학의 에너지가 밑바탕이 됐다고 했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스필버그의 ‘E.T.’, 제임스 캐머런의 ‘터미네이터’ 등 할리우드 SF가 당대 기술혁신과 더불어 평소 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조우하게 해줬다면 인문과학 세팅이 서구화된 상태에서 늦게 시작된 한국 SF 문학은 일상환경에 과학적 화두가 어떻게 스며들어있는지, 한국적 사유를 보여준다”면서 “원래 부제가 문윤성 작가의 1960년대 한국 최초 SF 소설에서 따온 ‘완전사회’였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음이란 맥락에서, 영화적인 동시에 여덟 편이 다양하게, 적은 제작비로 구현이 가능한 원작들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식물인간 엄마, 간병에 지친 딸, 누굴 살릴까 

식물인간 홀어머니를 10년째 보살펴온 딸(이유영)에 대해 인공지능(AI) 간병로봇(이유영·1인 2역)이 “자살확률 95%”라 진단한다면 모녀 중 누구를 살려야 할까. 14일 방영된 그의 연출작 ‘간호중’이 던진 가깝고도 낯선 화두다.  
 
'SF8' 중 '간호중'에서 식물인간 환자와 자살 직전의 그 딸을 돌봐온 간병로봇 '간호중'(이유영)이 둘 중 한 사람만 살리려는 것을 알게 된 사비나 수녀(사진, 예수정)는 이를 막으려 한다. [사진 웨이브·MBC]

'SF8' 중 '간호중'에서 식물인간 환자와 자살 직전의 그 딸을 돌봐온 간병로봇 '간호중'(이유영)이 둘 중 한 사람만 살리려는 것을 알게 된 사비나 수녀(사진, 예수정)는 이를 막으려 한다. [사진 웨이브·MBC]

원작은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가작을 수상한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허블)로, 신예 김혜진 작가의 SF문학 등단작이다. 민규동 감독은 그 자신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어머니의 긴 간병 생활을 봤다”면서 “누구나 한번은 통과할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과 간병의 시간에서 골병들어가는 보호자들의 시스템을 보면 답답하다. SF 형식을 통해 질문하면 좀 무겁고 무서운 이야기여도 그 속에서 깊이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한 인간을 죽이지 말라 하자 그럼 인간도 자신을 사랑으로 만든 거냐는 간호중. 저 질문에 누가 답할 수 있을까” “공중파에서 여성 간 키스를 볼 줄 몰랐다”…. 방영 후 SNS를 달군 반응들이다. 그럴 만큼 사비나 수녀(예수정)가 간병로봇 ‘간호중’과 나누는 대화 등 극 중 설정 하나하나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소설 속 주인공 여성으로 바꿔 "더 새롭게"

배우 예수정(왼쪽부터), 이유영, 민규동 감독이 지난달 8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SF8’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배우 예수정(왼쪽부터), 이유영, 민규동 감독이 지난달 8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SF8’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원작 속 남성들은 여성으로 바뀌었다. 신부 캐릭터가 수녀로, 어머니를 간병하는 주인공이 중년 남성에서 30대 여성 연정인이 됐다. 주인 연정인을 빼닮게 디자인된 간호중이 주인에게 사랑을 느끼는 설정도 소설엔 없던 것이다.  
 
김혜진 작가는 “소설 속 성별을 남성으로 잡은 건 내가 인물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하게 될까 봐 일부러 거리 두려 애쓴 것도 있다”면서 “민 감독님이 여성으로 바꾼다기에 좋은 선택이라 말씀드렸다”고 했다. 또 “내겐 관심사가 아니었던 로봇의 감정에 대한 감독님의 연출이 흥미로웠다. 방송 후 트위터에 로봇에겐 사랑이 돌봄에 필요한 기능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는 해석을 봤는데, 원작자로서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반응이 반갑고 기뻤다”고 했다.  

 
‘간호중’뿐 아니라 ‘우주인 조안’(감독 이윤정) 등 일부 원작 속 성별을 바꿔 8부작 전체가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이다. 민 감독은 “여자 주인공이 맹활약하는 이미지를 꿈꾼” 기획 의도라고 말했다. “미래를 구상하다보면 여성들이 훨씬 더 많은 삶의 영역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거나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노골적인 새로움이 연상되길 바랐다”고 강조했다.   
'SF8' 중 '우주인 조안'. 자신이 평생 100세 수명이 보장된 ‘C’인줄 알고 살아온 대학생 이오(최성은)는 갓난아기 때 자신의 항체주사에 착오가 있었단 걸 알게 되지만 대학 내 유일하게 항체주사를 맞지 못한 빈민층 ‘N' 출신의 조안(사진, 김보라)과 친해지면서 뜻밖의 자유로움을 느낀다.  [사진 웨이브, MBC]

'SF8' 중 '우주인 조안'. 자신이 평생 100세 수명이 보장된 ‘C’인줄 알고 살아온 대학생 이오(최성은)는 갓난아기 때 자신의 항체주사에 착오가 있었단 걸 알게 되지만 대학 내 유일하게 항체주사를 맞지 못한 빈민층 ‘N' 출신의 조안(사진, 김보라)과 친해지면서 뜻밖의 자유로움을 느낀다. [사진 웨이브, MBC]

 
또 “‘간호중’은 원작에서 철학적 질문이 ‘안락사는 신의 영역의 특권인가’라면 SF적 질문은 ‘우리가 착취 대상으로 쓰는 기계가 인간의 마음까지 학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였다”면서 “이 로봇 입장에서 연정인은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본인이 딥러닝한 상대고 그를 위해 최선의 일을 했고 그 사람이 안겨 올 때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 공포에 풀어낸 20대 방황 

‘SF8’ 중 이처럼 “SF지만 현실적”인 작품으론 ‘우주인 조안’도 있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시대, 고가 항체주사를 맞느냐 못 맞느냐에 따라 수명이 100세(C)와 30세(N)로 양분된다.
 
원작은 김효인 작가의 단편소설 데뷔작 『우주인, 조안』. 안전가옥 앤솔로지 시리즈 중 지난해 출간된 『미세먼지』에 수록돼 있다. 올해 스물여덟인 김 작가는 “미세먼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공포에 방향을 잃고 사는 듯한 제 또래들의 시대적 고민을 풀어냈다”고 했다. 연출을 맡은 이윤정 감독은 “재난 상황에서도 경제적인 계급 차이가 안전·생명 같은 근본적인 인권까지 결정하는 세상이란 게 현실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졌고 그럼에도 27살 주인공은 여전히 취업이나 또래 사이 자존심 싸움 같은,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한다는 게 설득력 있었다”고 전했다.  
'우주인 조안'. 조안 앞에 쉼표를 더한 제목의 원작 소설은 이오가 입는 사진 속 청정복에 문제가 밝혀지면서 이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는 설정이지만, 영화에선 불편한 청정복이 특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윤정 감독의 판단에 따라 항체주사 설정이 가미됐다. [사진 웨이브]

'우주인 조안'. 조안 앞에 쉼표를 더한 제목의 원작 소설은 이오가 입는 사진 속 청정복에 문제가 밝혀지면서 이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는 설정이지만, 영화에선 불편한 청정복이 특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윤정 감독의 판단에 따라 항체주사 설정이 가미됐다. [사진 웨이브]

 

국내 SF 젊은 독자층, 작가와 동반 성장

이런 현실의 고민을 담은 SF의 인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달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한국 SF 출판 시장은 10년간 5.5배 성장했다. 특히 연령별 SF 구매에서 20대 독자층 비중이 지난 20년간 5배 이상 뛰면서 젊은 작가들도 나란히 성장했다. 2017년 한국과학문학대상 중단편 대상을 받으며 등단 후 지난해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이 1년만에 10만부 판매고를 올린 김초엽 작가를 비롯해 정세랑·황모과·심너울·천선란 작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보다 먼저 SF에 뛰어든 김보영 작가는 지난해 미국 최대 출판그룹 하퍼콜린스에 3편의 단편 번역출판권 계약을 맺었다.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보니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에 대해 예의를 안 갖춘다”(김혜진 작가)거나 “평생 갖기 힘든 부동산이나 집의 의미”(김효인 작가)를 묻는 등 그 미래를 걱정할 만한 현실 사회의 고민들이 SF적 상상에 끊임없는 자양분이 된다고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SF8' 중 김의석 감독이 연출한 '인간증명'. 문소리가 사고를 당한 아들을 인공지능과 결합시킨 어머니를 연기했다. 이루카 작가의 법정 소설 『독립의 오단계』(허블)를 토대로 ‘간호중’과 또 다르게 ’인간과 인공지능이 일정비율로 섞이게 된다면 어디까지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진다. [사진 웨이브·MBC]

'SF8' 중 김의석 감독이 연출한 '인간증명'. 문소리가 사고를 당한 아들을 인공지능과 결합시킨 어머니를 연기했다. 이루카 작가의 법정 소설 『독립의 오단계』(허블)를 토대로 ‘간호중’과 또 다르게 ’인간과 인공지능이 일정비율로 섞이게 된다면 어디까지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진다. [사진 웨이브·MBC]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F는 어렵거나 매니어틱한 장르로 여겨졌는데 끊임없이 노력한 작가들 덕분에 좋은 시기를 맞았죠. 최근 10년간 세상이 많이 바뀌면서 SF를 일상의 이야기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됐어요.” 김효인 작가의 말이다.  
 

판권 불티 나는 문학 잇는 SF 물결은…

민규동 감독은 “생각보다 많은 영화·드라마 기획이 진행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어떤 작가는 모든 장․단편 판권이 대부분 팔려있더라. 조만간 폭발적인 임계점을 맞지 않을까 싶다”면서 SF 물결이 문학 외에도 다가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로 오는 28일 온라인 개막하는 올해 미국 뉴욕아시아영화제엔‘SF8’ 전편이 상영작으로 초청됐다. 그 중 지구 멸망 직전의 초능력자들을 그린 ‘일주일만에 사랑할 순 없다’(감독 안국진) 이미지가 영화제 공식 포스터로 사용됐다. 다음달엔 우주선 SF 블록버스터 ‘승리호’가, 공유․박보검 주연 인간복제 소재 영화 ‘서복’도 개봉을 기다린다.  
오는 28일 개최되는 미국 뉴욕아시아영화제는 한국 8부작 SF 시리즈 'SF8'(사진)을 상영하며 'SF8' 에피소드 중 하나인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의 포스터를 영화제 공식 포스터로 선정했다. [사진 뉴욕아시아영화제]

오는 28일 개최되는 미국 뉴욕아시아영화제는 한국 8부작 SF 시리즈 'SF8'(사진)을 상영하며 'SF8' 에피소드 중 하나인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의 포스터를 영화제 공식 포스터로 선정했다. [사진 뉴욕아시아영화제]

 
이윤정 감독은 “SF적 쾌감의 가능성이 대자본이 투여된 볼거리나 액션같은 기존 영화의 성공비법 안에서만 존재하지는 않는 것 같다”면서 “SF 문학의 성공과 ‘SF8'의 실험에 영화계가 자극받아 SF라는 세계 안의 다양한 가능성을 영화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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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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