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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白起肉<백기육>

한자세상 8/15

한자세상 8/15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의 사직서가 화제다. “천하에 인재는 강물처럼 차고 넘치듯이 검찰에도 바른 인재들은 많다”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인사를 탓했다. “전국시대 조(趙)나라가 인재가 없어서 장평전투에서 대패하고 40만 대군이 산 채로 구덩이에 묻힌 것입니까? 옹졸하고 무능한 군주가 무능한 장수를 등용한 그릇된 용인술 때문이었다”라고 부연했다.
 
문 검사장이 꺼낸 조나라의 용군(庸君)은 효성왕(孝成王) 조단(趙丹, 재위 기원전 265~245)이다. 당시 진(秦) 범저(范雎)는 반간계(反間計)로 조를 노렸다. 노장 염파(廉頗)를 애송이 조괄(趙括)로 바꾸려 돈을 써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귀가 얇은 효성왕은 조괄 어머니의 만류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진의 공세는 거침없었다. 범저는 지휘관을 왕흘(王齕)에서 전쟁의 신으로 불리는 백기(白起)로 바꿨다. 백기와 조괄은 지금의 산시(山西)성 가오핑(高平)시 북쪽 장평관(長平關)에서 마주했다. 노련함이 패기를 유린했다. 백기는 잔혹했다. 투항한 40만 조나라 포로를 “반란이 우려된다”며 구덩이에 파묻었다(阬殺·갱살).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백기열전에 “어린이 240명만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참수한 포로가 45만”이라며 “조나라 사람이 벌벌 떨었다(趙人大震)”고 적었다. 효성왕의 그릇된 인사가 불러온 참사다.
 
백기는 말년에 장평의 갱살을 참회했다. “장평의 전투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을 속여 모두 파묻었다. 이것만으로도 죽기에 충분하다”는 유언에서다.
 
조나라 백성은 효성왕 아닌 백기를 모골송연(毛骨悚然)하게 복수했다. 산시성에 백기육(白起肉)이란 흰 두부 요리가 있다. 현지에서 “백기를 삶아 먹다”는 중국어 ‘츠바이치(吃白起·흘백기)’로 불린다. 원수의 뇌수를 씹어 먹듯 조상의 한을 되갚고 있다.
 
인사 참사가 낳은 복수의 악순환이다. 『묵자(墨子)』는 일곱 근심(七患)을 말했다. 넷째 근심이 “벼슬아치는 녹만 기대하고, 유세객은 무리 짓기 즐기고, 임금은 법을 만들어 신하를 토벌하지만 신하는 두려워 감히 어기지 못한다(仕者持祿 游者愛佼 君脩法討臣 臣懾而不敢拂)”, 여섯째로 “왕이 믿는 자는 불충하고, 충성하는 자는 믿지 못한다(所信者不忠 所忠者不信)”고 했다. 현 정권 임기가 2년도 남지 않았다. 묵자의 나머지 다섯 가지 근심도 일독을 권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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