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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초대 국정원장 "박지원, 정권 안보 챙기다가 탈난다"

1998년 5월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이 바뀌기 전의 국가안전기획부 청사를 방문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오른쪽)이 직접 쓴 국정원 원훈('정보는 국력이다') 비석 제막식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국정원 이름과 원훈을 직접 작명했다. 왼쪽은 이종찬 당시 안기부장. [연합뉴스]

1998년 5월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이 바뀌기 전의 국가안전기획부 청사를 방문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오른쪽)이 직접 쓴 국정원 원훈('정보는 국력이다') 비석 제막식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국정원 이름과 원훈을 직접 작명했다. 왼쪽은 이종찬 당시 안기부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17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모습.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17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모습. [중앙포토]

 국가정보원(국정원)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는 등 정부와 여당이 또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것이 1961년 6월 10일이니 올해로 60년, 내년이 환갑인데 아직도 개혁이 필요하다면 뭔가 비정상이다. 이러다 개혁이 아니라 개악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김대중 전 대통령(DJ) 재임 시절 마지막 국가안전기획부장과 초대 국정원장을 역임한 이종찬(84) 우당기념관장을 지난 12일 만났다.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이종찬 초대 국정원장의 정보기관 철학]
제도 개혁보다 인사 제대로 해야
대공수사 경찰 이관 부작용 우려
이스라엘 모사드 경험을 배우고
전방위 국익 수호 파수꾼 역할을
김대중, 박해받고도 정보기관 용서
문재인 대통령, 용서·화해 배워야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산 역사'인데.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와 국정원까지 모두 거쳤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에게 흑역사가 있다. 흑역사의 원죄가 있어서 진보든 보수든 정권 바뀔 때마다 개혁을 말한다. 그게 안타깝다. 이젠 그만하자는 거다. 박지원 원장도 취임하자마자 제일성으로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개혁을 말했다. 이걸로 마지막으로 하자는 뜻일 거다. 1980년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취임하자 내가 반성하는 뜻에서 '사박 노, 모사드 예스(SAVAK no, Mossad yes)'라고 제안했다. 이란 팔레비 왕정의 정보기관 사박은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정권 안보 기관이었다. 반면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국가 안보를 위해 일했다. 정권 안보가 아니라 국가 안보로 가자는 취지였는데 실행은 참 어려웠다. 모래성처럼 쌓았다 무너지고를 반복했다."
 
 -역대 정보기관이 흑역사로 점철됐다.
 "3선 개헌, 유신 선포, 김대중 납치 사건, 코리아 게이트에 개입했다. 역대 최악의 정보기관 수장은 김형욱·이후락·김재규를 꼽을 수 있다. 김형욱은 3선 개헌 등 나쁜 짓 다 하고 자리 안 준다고 미국 의회에서 비밀을 폭로했다. 이후락은 DJ 납치 사건을 일으켰다. 급기야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쐈다. 흑역사는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 사건을 벌이기 전 40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한 장면. 김재규와 김형욱 부장 등을 모델로 그렸다. [사진 쇼박스]

1979년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 사건을 벌이기 전 40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한 장면. 김재규와 김형욱 부장 등을 모델로 그렸다. [사진 쇼박스]

 -김대중 정부 때도 일탈이 많았다.
 "DJ가 K 차장을 잘못 기용하는 바람에 통신감청을 불법적으로 했다. 내가 미림팀(도·감청 조직)을 없앴는데 과거 파일을 들고 나가 사건이 터졌다. 제도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인사를 잘해야 탈이 안 난다. DJ 당선 뒤에도 이를 실천하는 게 상당히 어려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법을 잘 만들어도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 잘못하면 얼마든지 탈선이 생긴다. 1997년 대선 열흘 전에 DJ의 지지율이 많이 올라가자 안기부 고위 간부가 DJ 측에 자꾸 정보를 갖다 줬다. 나는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하면 정보기관을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정보는 국력인데 정권마다 정보가 권력 수단으로 이용됐다.
 "미국 정보학의 태두인 셔먼 켄트가 '정보는 지식이다(Intelligence is knowledge)'라고 한 말이 있다고 보고했더니 DJ가 지식을 국력으로 바꿨다. 영어 표기 NIS(National Intelligence Service)는 내가 정했다. 위에서 누르고 국민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기관(Agency)을 국민을 위해 서비스(Service)하는 기관으로 바꾸자는 거였다. 일제가 조선을 삼킬 때 정보전부터 시작했다. 러·일 전쟁 때 러시아에 무관으로 가 있던 아카시 모토지로는 러시아가 점령한 핀란드와 폴란드 사람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공작을 수행했다. 러시아 군대가 발이 묶이는 와중에 조선을 쉽게 삼키기 위해서였다."
 
 -정보 공작의 피해자였던 DJ가 국정원을 만들면서 특별히 뭐라고 당부했나.
 "자신이 받은 박해와 수난을 국가 이익으로 돌릴 줄 아는 대통령이었다. 최대 피해자였지만 큰 그림을 이야기했다. 야당 정치인 시절 엄청난 탄압을 받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정보기관의 사용자가 되자 보복적 차원에서 정보기관을 없앨 것이냐, 국가를 위해 좋은 기관이 되도록 개혁할 것이냐를 고심하다 후자를 선택했다. 대통령의 첫 말씀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빨리하자'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시절 수시로 이종찬 국정원장의 대면 보고를 받았다.[중앙포토]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시절 수시로 이종찬 국정원장의 대면 보고를 받았다.[중앙포토]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12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제도 개혁보다 인사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12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제도 개혁보다 인사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 대면보고를 안 받았다. (※취임 초기와 달리 2006년 2월부터는 대면보고를 받았다고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알려왔습니다.)
 "당연히 받아야 한다. 안 받으면 깜깜이가 된다. 미국에서는 상대 당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면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제일 먼저 가서 정보 브리핑을 해준다. 국가지도자 반열에 오르면 정보를 공유한다. 그래서 야당이 정책적 비판은 해도 구체적인 정보는 발설 안 하고 초당적 협력이 가능해진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한다면서 국정원 메인 서버를 열어봤다.
 "정보기관이 비밀 정보기관으로 온전하려면 너무나 많은 정보기관 외부 사람들이 국정원에 들어가서 감시하고 들춰보는 것을 허용하면 안 된다.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청산위원회도 마찬가지다. 민간인들이 국정원에 들어가서 모든 정보 문서를 다 들여다보는 것은 반칙이다. 이런 행동은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다른 나라에서 우리에게 양질의 정보를 안 준다. 민간에게 노출될 텐데 왜 주겠나. 김형욱 부장 시절에 미국 CIA가 양질의 정보를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 좋은 정보를 주면 자꾸 국내 정치에 이용했기 때문이다. 원장 시절에 내 존안 파일을 보려고 눌러도 안 나왔다. 조선왕조실록을 당대 임금도 맘대로 못 봤다. 사초(史草 )를 훔쳐볼 게 아니라 일을 잘하면 좋은 평가는 따라온다."
 
 -당·정·청이 국정원 개혁안을 발표했다.
 "절차부터 문제가 많다. 박지원이 국정원장 임명된 다음날 개혁안이라며 발표했다. 신임 원장이 현황도 파악하기 전에 발표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개혁하게 되는 거다. 이건 아니라고 본다. 전임 서훈 원장 시절에 국내 정보에 개입하지 않고, 월권 하지 않고 조용하게 잘했다. 현행 제도가 나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사람을 제대로 쓰면 잘 된다는 사례를 보여줬다. 정보 작성자(국정원장)와 사용자(대통령)가 정말로 정권 안보가 아니라 국가 안보를 위해서 일하는 기관으로 좀 만들어야 한다."
대북 공작원 '흑금성'과 1997년 대선 당시 '총풍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공작'의 한 장면.

대북 공작원 '흑금성'과 1997년 대선 당시 '총풍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공작'의 한 장면.

 -북한의 해외공작 거점이 200개가 넘는데 경찰이 대공수사를 제대로 하겠나.
 "국가 안위를 해치는 모든 요소가 우리의 적이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라 대내·대외 구분이 없다. 스파이 활동 영역이 굉장히 넓어졌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해 세계를 마비시키는데 국내와 국외가 따로 있나. 국가 안보가 전방위적 목표가 돼야 한다. 정보 융합의 시대라 다른 나라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국내·국외를 합쳐야지 대공수사를 경찰에 맡기는 것은 30~40년 전 컨셉이다. 미국은 17개 정보기관을 통합해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국가정보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기능을 분할하고 갈기갈기 찢고 있다. 시대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화웨이·틱톡·위챗을 스파이 기관이라고 판단해 미국에서 활동 못 하게 한다. 중국과 일본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뭘 하는지 모른다. 우리도 대공수사에 한정할 게 아니라 국익을 침해하는 요소를 다 잡아내야 한다."
 
 -국내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경찰에 정보가 집중될 텐데.
 "정보기관은 서로 병립해 상호 견제하고 경쟁해야 한다. 이게 안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미국도 CIA와 FBI를 합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결국 국가정보국을 신설해 통합 지휘하는 쪽으로 결론 났다. 고유 기능을 살려가면서 해야 하는데 모두 찢어 놓으면 나중에 더 큰 일이 생긴다. "
 
 -우리가 모델로 삼아야 할 외국 정보기관은.
 "이스라엘 모사드다. 조직과 직원 수는 많지 않다. 유대인의 사활적인 문제에 대해 계속 봉사하다 보니 강해졌다. 홀로코스트 전범 아이히만을 잡은 것은 모사드지만 아르헨티나 거주 유대인이 신고해준 덕분이었다. 우리도 국민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강한 국정원이 된다면 해외에 있는 모든 교포가 도울 것이다. 정보비가 많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지지 세력이 많으면 강한 조직이 된다. 정보기관은 물고기이고 민족과 국가는 물이다. 물이 마르면 물고기가 죽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지원 신임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박지원 신임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지원 원장 체제를 어떻게 보나.
 "DJ 시대 국정원에 바탕을 두고 그 위에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 보태면 국정원이 발전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르쳐준 대로 정보기관은 정권 안보가 아니라 오로지 국가안보를 위해 일하는 원칙과 DJ정신을 박 원장이 지켜야 한다. 국정원장이 정권 안보 챙기고 국내 정치에 개입해 이상한 짓 하면 꼭 탈난다. 섣불리 정권 안보 챙기려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욕이 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욕이 될 수 있다."
 
 -퇴임 이후에 온전한 대통령이 별로 없다.
 "그래도 DJ는 퇴임 이후 큰 탈이 없었다. 정치 보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용서와 화해 덕분이다. 자신을 괴롭힌 정보기관까지 용서했다.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했다. 거대 여당이 오만해질 수 있는데 유혹을 극복하고 화해와 협치로 가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 본인에게도 좋고 나라를 위해서도 좋다. 문 대통령도 이제 1년 9개월 정도 남았는데 지금부터 통합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이종찬=1936년 중국 상하이 태생.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육사 16기로 1965년 공채 수석으로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80년 기조실장까지 승진했다. 서울 종로 지역구에서 4선 의원 역임. 마지막 국가안전기획부장과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지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1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청와대 쪽을 가리키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1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청와대 쪽을 가리키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제도 개혁보다는 인사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전 원장의 조부 우당 이회영 선생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 독립운동가였다. 우당 초상화 앞에 선 이 전 원장.[중앙포토]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제도 개혁보다는 인사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전 원장의 조부 우당 이회영 선생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 독립운동가였다. 우당 초상화 앞에 선 이 전 원장.[중앙포토]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이소현 인턴기자가 정리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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