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49)
# 여름 내내 내부 온도가 30~40℃를 오르내리던 창고에 방치된 병맥주. 맥주를 냉동실에 넣어 식힌 뒤 잔에 따라본다. 갈색에 가까운 색깔에 침전물까지 가라앉는다. 뭔가 오래된 꿀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입안에 왁스를 머금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름은 맥주가 가장 맛있는 계절이자, 가장 맛이 변하기 쉬운 계절이다. 맥주 맛을 변질시키는 주요 원인인 빛과 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왜 맥주병은 대부분 갈색일까?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맥주를 갈색병에 담는다. 갈색병은 빛을 거의 차단한다고 알려져 있다. 맥주의 청량감을 강조하기 위해 녹색병을 사용하는 브랜드들도 있는데, 녹색병은 갈색병보다 빛 차단율이 낮다. 일부 투명한 병을 사용하는 맥주는 스컹키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캔이나 케그는 완벽하게 빛을 차단한다.
![투명한 병에 담긴 맥주는 갈색병이나 녹색병에 담긴 맥주에 비해 빛에 의해 맛이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사진 pexels]](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8/13/538752d8-bdeb-443a-9efc-7a69ba9a24cc.jpg)
투명한 병에 담긴 맥주는 갈색병이나 녹색병에 담긴 맥주에 비해 빛에 의해 맛이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사진 pexels]
지난해 말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투명 페트병만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맥주 제조사들이 아예 페트병 맥주 단종을 검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맥주 회사들은 갈색 페트병을 활용해 빛을 차단해왔다. 녹색 페트병을 사용했던 막걸리, 소주, 사이다는 이미 투명 페트병으로 교체했지만 맥주는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갈색 페트병의 대안을 찾기 위해 5년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해외 맥주 기업 밀러에서는 빛을 받을 경우 냄새를 유발하는 물질로 바뀌는 홉 성분을 제거한 특수 홉 추출물을 활용해 맥주를 제조함으로써 이런 품질 이슈를 해결하고 있다.
10℃ 오를 때마다 두 배씩 변색
![맥주를 냉장해 유통하고 보관해야 맛의 변화를 늦출 수 있다. [사진 pexels]](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8/13/d759738a-256d-4dd9-817b-29698c105722.jpg)
맥주를 냉장해 유통하고 보관해야 맛의 변화를 늦출 수 있다. [사진 pexels]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홉에서 나오는 과일, 꽃, 풀, 송진 등과 같은 상쾌한 향과 쌉쌀함이 사라진다. 또 상하기 직전의 사과와 같은 맛, 상쾌하지 않은 꿀맛, 밀랍 같은 느낌 등이 나타난다. 맥주의 색깔도 어두워질 수 있고 맥주의 단백질이 응고되면서 침전물이 생기기도 한다. 보관 온도가 높아지면 훨씬 빠르게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실온 이상의 온도에서 병 안에 산소까지 들어 있다면 맥주는 쉽게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젖은 박스종이 같은 풍미까지 감지된다. 맥주는 3℃ 정도에 냉장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냉장고의 공간이 부족해 부득이하게 상온 보관해야 한다고 해도 25℃가 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맥주를 맛있게 마시려면 맥주가 잔에 따라지기까지 일관되게 빛과 열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 양조장에서 출고된 직후부터 수입사, 도매상 등 유통 업체가 냉장 배송(콜드체인)을 해야 하고 맥주를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맥줏집, 소매점 등에서도 저온의 어두운 곳에 맥주를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빛과 열이 맥주 품질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완벽한 콜드체인을 구축한 맥주 양조장, 수입사, 도매상이 드문 것이 현실이다. 한여름 도로에서 직사광선을 한껏 받으며 실려 가고 있는 맥주를 보기는 어렵지 않다. 또 맥주를 판매하는 곳에서도 보관 장소에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에게 최상의 맛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