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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시각각] 검찰 흑역사에 기록될 공소장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 법조인들이 흔히 하는 얘기다. 언론인은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고 한다. 공소장·판결문·기사를 보면 수사·재판·취재가 제대로 됐는지 알 수 있으니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실’ 기록 원칙에서 벗어난
채널A 전 기자에 대한 기소문
앞으로 검사 교육자료로 써야

공소장의 핵심은 죄명과 공소사실이다. 공소사실은 육하원칙에 맞게 작성해야 한다. 그래야 법관이 피고인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내용은 문자 그대로 사실(事實)이어야 한다. ‘소설’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 대한 서울중앙지검 공소장은 우선 사실에서 벗어났다. 한동훈 검사장이 「당연히 좋은 방향으로 가지, 기본적으로 보면 한 배를 타는 건데, 연결해 줄 수 있지, 제보해, 그 내용을 가지고 범정(검찰의 범죄정보 수집 부서)을 접촉해」라고 말한 것으로 쓰여 있다. 검찰은 이 전 기자가 이 말이 녹음된 파일을 지모씨에게 들려주고 해당 발언을 녹취한 문서도 보여줬다고 적었다. 그런데 한 검사장이 이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녹음 파일은 찾지 못했고, 이 전 기자는 그 말은 한 검사장이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한 검사장이 그 말을 했다는 것은 ‘확인된 팩트’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검찰은 그 대목에 따옴표 대신 낫표(「, 」)를 썼다. 작성자의 고뇌가 엿보이는데, 궁색함은 피하지 못했다.
 
사실이 재구성되기도 했다. 공소장에 〈이동재는 ‘교도소에 있는 이철에게도 편지를 썼다. 여권 인사들이 다 너를 버릴 것이다, 이미 14, 5년이고 이것저것 합치면 팔순이다라고 하며 설득하려고 한다’는 취지로 말하고, 피고인 백○○도 ‘가족부터 지금 찾으려 하고 있다, 와이프만 걸려도 될 텐데’라는 취지로 말하며 취재 목표와 방법, 그간의 취재 과정에 대해 알려주자 한○○은 ‘그런 거 하다가 한두 개 걸리면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 대화 녹취록에서 ‘그런 거 하다가…’ 대목은 ‘14, 5년’ ‘팔순’ ‘가족’‘와이프’ 발언 앞에 있다. 순서가 뒤바뀌었다. 따라서 ‘취재 방법과 그간의 취재 과정을 알려주자’는 허위 사실이다. 기자가 이렇게 짜맞춘 글을 쓰면 허위사실 적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소송당하기 십상이다.
 
이 공소장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등장했다. 한 검사장이 “그건 해볼 만하지”라고 말하기 전에 “그거는 나 같아도 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파일을 수십 번 들어봤지만(25분55초짜리 파일에서 22분32초 부근 해당), 안 들린다. 한 검사장 측 주진우 변호사는 “어렴풋이 들린다는 기자도 있다”고 말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녹음 파일이 붙어 있는 기사의 댓글엔 ‘안 들린다’가 압도적이다.
 
공소사실 못지않게 죄목도 수상하다. 이 전 기자에게 적용된 것은 ‘강요미수’다. 판례에 따르면 강요죄 성립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겁을 먹게 하는 행위’와 ‘구체적인 해악 고지’다. 이 전 기자가 이철 전 VIK 대표에게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해코지하겠다고 했어야 죄가 된다. 공소장을 반복해 읽어봤지만, 해악을 끼치겠다고 협박한 부분을 못 찾았다. 검찰에서 선처받도록 도울 수 있다고는 했다. 한 현직 고검장은 “강요죄 구성 요건을 갖췄다고 도저히 볼 수 없다. 변호사법 위반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그마저도 애매하다”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이렇게 너저분한 공소장은 처음 봤다. 검찰이 이 정도로 망가졌나 싶다”고 말했다.
 
언론개혁은 엉터리 기사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고, 사법개혁은 엉터리 판결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검찰개혁은 기소가 올바르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허위 공문서에 가까운 공소장으로 사람을 옭아매는 게 개혁일 수는 없다. 진짜 개혁이 이뤄지는 날 이 공소장을 신임 검사 교육자료로 써야 한다. 때론 흑역사(黑歷史)에서 배우는 게 더 많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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