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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칼럼] 납세자의 권리와 정부의 의무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몇 년 전 북유럽 출장에서 노르웨이 청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세금을 내는 데 불만은 없는지 궁금했다. 의외로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지금 세금을 많이 내지만 은퇴 후 기존 월급의 80% 가까운 연금을 받기에 마치 적금 드는 것 같다고 한다. 은퇴 후 삶에 대한 정부신뢰가 크다. 최근 부동산3법의 통과로 강남 은퇴자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60% 가까이 급등한 집값 때문에 연금으로 종부세 내기도 버겁다고 울상이다. 미국은 주택구입 당시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겨 납세의 예측 가능성이 있다.  
 

포퓰리즘 증세와 정부의 비효율성
미분적분 시장과 덧셈뺄셈 정치권
납세자 예측가능성 보호입법도
세금의 새로운 국민적 합의 필요

우리의 경우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세금을 내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처럼 급격한 증세는 납세자를 패닉에 빠지게 한다. 임대차3법에서 임차인의 예측 가능성 보호를 위해 전세 계약기간 4년과 계약갱신 때 보증금 인상률을 5%로 제한한다면,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을 위해서도 재산세 인상을 4년간 현재 수준의 5% 이내로 제한하는 입법이 뒤따라야 할지 모르겠다.
 
몇해 전 삼성의 젊은 임원이 삼성전자의 국내 매출은 10%도 안 되고, 해외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12조원 이상의 세금을 내는데, 왜 이렇게 기업 하기 힘들게 하느냐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다. 소득이 많으면 많은 세금을 부담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가진 자의 노력에 대한 평가보다 사회적 책임만을 강조한다. 그래서 납세를 의무로만 여기고 과세도 징벌적으로 한다. 납세자도 탈세나 절세를 고민하지 자기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가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납세는 의무인 동시에 권리이다. 납세자는 세금이 바르게 쓰이길 주장할 권리가 있다. 좋은예산센터 소장인 김태일 교수는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서 이제는 납세자 주권이 이루어져야 하고 예산운동을 통해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독립운동은 영국 정부가 미국식민지에 인지세를 부과하고 보스톤에 차를 수입하는 권한을 독점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대표없이 세금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구호나 보스턴 티 파티의 납세자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미국에서는 국민보다는 시민(citizen)이, 시민보다는 납세자(tax payer) 의식이 더 강하다. 민주주의 원리가 납세자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정부·여당은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10% 이상 증액된 560조원으로 편성했다. 작년에는 전년대비 9.1%, 43조원이 증가한 512조원으로 올해 예산을 편성했지만, 올해 3차 추경이 되면 14.2%가 증가한 547조원이 된다. 지난 5년간 세금은 205조원에서 293조원으로 50% 가깝게 급격하게 늘어났다. 전체 세수입 비중도 근로소득세는 12.3%에서 13.1%로, 양도소득세는 3.9%에서 5.5%로, 법인세는 20.8%에서 24.6%로, 종부세는 0.6%에서 0.9%로 증가시켜 가진 자의 부담을 늘렸다.  
 
종부세 납부대상은 2013년 6만명에서 올해 51만명으로 늘었고 이 추세면 10년 뒤 700만명이 된다. 51만명은 인구대비는 1%지만 가구 수로 따지면 2.5%가 된다. 이대로 가면 10년 뒤 전체 가구 3분의 1 이상이 종부세 대상이 된다. 소득세도 고소득에 집중되어 영국은 2.1%, 일본은 15.5%가 소득세 면제인데, 우리는 소득 하위 39%가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세금이 늘어난 만큼 국가의 힘은 비대해지고 시장개입의 유혹은 커진다. 세금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잘 써야 한다. 고소득자의 납세 의무 못지않게 정부의 선량한 세금 관리의무도 중요하다. 재난을 당하지 않은 공무원들에게도 세금으로 코로나 사태 재난구호금을 주는 것이 맞는가? 부동산대책이 3년간 23번이나 나오고, 태릉을 둘러싼 별내와 다산신도시에 아파트 건설이 한창인데도 태릉골프장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발표로 반발이 거세지자 4천억원을 긴급지원하겠다는 즉흥적 교통대책이 정말 내 돈을 잘 쓰고 있는 것인가?  
 
출산하면 1억원을 주겠다던 엉터리 공약이 오히려 나았다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나온다.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으로 209조원을 썼지만 출산율은 1.24명에서 0.92명으로 세계 최저가 되었고, 작년 신생아출생은 30만명에 그쳤다. 올해 저출산 예산 40조원이면 1억원씩 나눠줘도 40만명의 신생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금과 예산은 급증하고 국가의 힘은 커지는데 과연 내 돈은 잘 쓰이고 있나? 일본에서는 샐러리맨들만 유리알 세금을 낸다는 불만에 샐러리맨신당이 있다. 이대로라면 우리도 다음번 총선에서 납세자당이 비례정당으로 등장할지 모르겠다. 정부·여당이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증세를 일방적으로 몰고 갈 때 야당도 유권자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제대로 된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시장은 미분 적분으로 움직이는데 정치권은 덧셈 뺄셈만 한다. 이제 납세자의 권리와 정부의 의무에 대한 새로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때가 왔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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