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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더니…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행정·사법부에 이어 입법 권력까지 장악한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과 5명의 수석이 한꺼번에 사표를 내는 사태가 벌어졌다. 흔한 일이 아니다. 총사퇴 카드는 대개 궤멸 수준의 선거 참패나 권력형 비리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빠졌을 때 쓰는 극약처방이다.
 

대통령 실장·수석의 집단 사표
권력 만능 사고가 시민 저항 불러
힘으로 밀어붙이는 폭주 멈춰야

그러나 국회 3분의 2에 육박(177석)하는 의석을 거머쥐고 주류 교체를 기념하는 축배를 든 지 채 넉 달도 지나지 않았다. 추미애 발(發) ‘검찰 개혁’도 완성단계다. 살아있는 권력에 감히 메스를 들이댈 ‘통큰 검사’도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정도면 물샐 틈 없는 권력 장악 아닌가. 그런데 권력 심장부의 대거 교체라니.
 
걸핏하면 야당 탓, 전 정권 탓, 재벌 탓, 일본 탓, 검찰 탓, 언론 탓…. 총론은 적폐 프레임, 각론은 국민 편가르기로 권력을 유지해온 정권이 호된 민심의 역풍을 맞고 있다. 집값 상승의 책임을 집 가진 임대인의 투기 탓으로 돌리려다 그만 시민들의 역린(逆鱗)을 건드리고 말았다.
 
장대비 속, 거리로 쏟아져 나온 성난 민심이 폐부를 찌른다. ‘임차인만 국민이냐 임대인도 국민이다’ ‘어제는 준법자 오늘은 범법자 내일은 과태료’ ‘전세 종말 월세 지옥’ ‘국민은 개돼지가 아니다’ ‘공공임대 좋으면 여당부터 임대 살라’…. 민심의 분노에 불을 지핀 다주택 보유 청와대 참모들의 사의 표명에 ‘너희도 못 하면서 왜 국민에게만 시키냐’는 일침도 이어졌다.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열쇠는 문재인 대통령이 쥐고 있다. 사실 부동산 보유세 인상, 공공주택 100만호 건설, 전월세 상한제 및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등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이게 실현되면 집 없는 서민들이 안정적으로 임대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그러니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2019년 국민과의 대화)고 확신에 차 말했던 게 아닐까.
 
부동산 시장이 임대인-임차인의 단순 관계로만 돼 있다면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동산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금융과 긴밀히 연계돼 있고, 금융은 국내 산업정책과 실물경제는 물론 국제경제의 흐름과도 연동돼 있다. 또 변화하는 라이프 스타일과 주거에 대한 의식도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는 고차 방정식을 풀려면 작은 생선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굽는 세심함과 정책적 절제가 필요하다.그러나 너무 서두르면 생선살이 부스러져 먹을게 없어진다.약팽소선(若烹小鮮).개혁의 명분은 쥐고 가되 순리와 상생을 거스르는 않는 지혜를 보여야 왜곡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거꾸로다. 임차인을 선, 임대인을 악으로 구분 짓고 적대적 관계로 몰아갔다. 무절제한 폭력적 정책이 시장의 역습을 불러, 그토록 보호하려던 사회적 약자가 더 고통받는 지독한 왜곡을 겪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지금은 퇴직한 전직 언론인 A씨가 부동산 정책을 놓고 토론한 적이 있다고 한다. A씨가 “대통령이 추구하는 정책 목표가 무엇이냐. 기존의 집값을 떨어뜨리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집값 상승을 막겠다는 것인가”고 물었다. 노 대통령은 “사실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다”면서도 “집값이 급격히 떨어지는 걸 원치 않는다. 자칫 금융이 위태로워져 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 지적에 대해 깊이 토론해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지나치게 솔직한 게 흠’이라던 노 대통령의 캐릭터가 묻어나는 일화다. 지금 똑같은 물음을 던진다면 현 정부는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당시 정책실장이던 김병준 전 통합당 비대위원장의 기억도 일치한다. “노 대통령은 국가 권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지났다는 걸 알았다. 의식과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법을 아무리 고쳐놔도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걸 절감한 것이다. 한·미 FTA를 추진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권력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 시장의 압박으로 산업의 구조조정을 이끌어내려고 했던 것이다.”
 
23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고도 추가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오만은 권력이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권력만능적 사고다. 일방적으로 밀어 붙여온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자사고·특목고 폐지 등이 본래의 정책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 사태를 부동산 정책 실패로만 보는 건 본질을 간과하는 것이다. 약자 보호를 내건 거칠고 선동적인 정책이 선거 때 재미 좀 보려는 득표 전략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그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양손 가득 거머쥔 권력의 힘으로 뭐든지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국정 운영방식과 결별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바로 직전 정권이 그랬다.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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