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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4일' 대란 그후…무식하단 비난에 뿔난 그들 만났다

'사흘' 해프닝을 두고 "젊은 세대의 어휘력·독해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한 학생이 "(단어를) 모를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사진=밀실 영상 캡쳐]

'사흘' 해프닝을 두고 "젊은 세대의 어휘력·독해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한 학생이 "(단어를) 모를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사진=밀실 영상 캡쳐]

“어른들은 얼마나 독해를 잘하기에 학생에게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온라인 클래스(수업)에 바쁜데 독해 공부까지 하라니….”

 
중학교에 다니는 유의선(14)양은 지난 3일 밀실팀에 이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지난달 21일 한 포털에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사흘’이 올라왔던 거 기억하시나요. 당시 온라인을 달궜던 ‘사흘’ 해프닝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의선양은 이렇게 답했답니다.

[밀실] <42화>
'4흘' 논란, 1020에게 듣다

 
'사흘'은 정부가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불거졌습니다. 광복절부터 사흘간 황금연휴라는 뉴스가 이어지자 일부 네티즌이 “4(사)흘 아니었어?” “왜 3일인데 사흘이라고 하냐”고 글을 남겼죠.
 
이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무식하면 가만히 있어라” “상식이 없는 사람이 많다”는 식의 비난이 올라왔죠. “젊은 세대의 어휘력이 심각하다”고 비판하기도 했고요.
 
의선양도 ‘사흘’의 뜻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는 “요즘 학생들의 어휘력과 독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비판을 받을 때마다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사흘이란 표현을 모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 '사흘 대란'에 화가 난 1020, 이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살펴보세요.  
 

“어휘력 부족, 공교육 실패” 매맞는 1020

지난달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흘 논란은 공교육의 실패"라는 취지의 글이 게재됐습니다. 이 글은 1만 1000건 넘게 '리트윗' 됐습니다. [사진=트위터 캡쳐]

지난달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흘 논란은 공교육의 실패"라는 취지의 글이 게재됐습니다. 이 글은 1만 1000건 넘게 '리트윗' 됐습니다. [사진=트위터 캡쳐]

알고 보면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한자어가 올라오는 일이 종종 있어요. 지난 1월에는 ‘음성 양성 뜻’이라는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 3위까지 올랐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나온다는데, 무슨 뜻인지 몰랐던 이들이 적지 않았던 거죠.
 
이런 일이 벌어지면 '비난의 화살'이 10대·20대로 향하곤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어휘력이 빈곤하다는 증거”라면서요. ‘사흘’이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을 때도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우리나라 공교육 실패를 보여준다”는 식의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1월 28일 오후 5시 '음성 양성 뜻'이라는 키워드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3위에 올랐습니다. [사진=웹사이트 캡쳐]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1월 28일 오후 5시 '음성 양성 뜻'이라는 키워드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3위에 올랐습니다. [사진=웹사이트 캡쳐]

실제로 디지털 기술과 SNS의 범람, 유튜브 등 영상 콘텐트의 확산으로 중ㆍ고등학생의 문해력(文解力)이 떨어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 따르면 한국 중·고생의 읽기 능력은 2006년도 조사 대상국 중 1위였지만, 계속 순위가 낮아져 최근 조사(2018년)에선 37개국 중 6~11위로 평가됐죠. 이순영 교수(고려대 국어교육과)는 “포털사이트에 ‘사흘’이라는 어휘를 검색해야 할 정도로 읽고 쓰는 능력 전반의 하락 양상이 뚜렷하다”고 했습니다.
 

“책보다 유튜브가 편해요”

'사흘' 해프닝을 두고 "젊은 세대의 어휘력·독해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한 학생이 "속상하다"는 답을 했습니다. [사진 밀실팀]

'사흘' 해프닝을 두고 "젊은 세대의 어휘력·독해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한 학생이 "속상하다"는 답을 했습니다. [사진 밀실팀]

그런데, 이런저런 비난을 받는 당사자인 10·20세대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밀실팀은 지난 3~5일 대면 인터뷰, 전화통화, 서면 등 다양한 방법으로 10대와 20대 87명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어휘력과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기성세대의 비판 등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물었죠.
 
10대 중고생들 사이에선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불만이 높았습니다. 중학생 이준수(14)군은 “(부모가) 학원을 많이 보내니까 공부하는 시간이 (어른보다) 더 많아진다”며 “학생들은 국어학원도 많이 다녀서 (전반적인) 어휘력과 독해력은 학생을 비판하는 어른보다 평균적으로 낫다”고 주장하더군요.
 
반면 고등학교 3학년 이유진(19)양은 “어려운 한자어를 모르는 친구도 꽤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세대의 어휘력이 점점 줄고 있다고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유진양은 “자연스러운 시대 변화일 수도 있는데, (기성세대가) 무작정 비판하기보다는 어린 세대와의 차이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고 얘기하더군요.
 
'사흘' 해프닝을 둘러싸고 "공교육의 붕괴는 아니다"라고 주장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다수 올라왔습니다. [사진=트위터 캡쳐]

'사흘' 해프닝을 둘러싸고 "공교육의 붕괴는 아니다"라고 주장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다수 올라왔습니다. [사진=트위터 캡쳐]

대학생 또는 사회초년생인 20대로부터는 “굉장히 간단한 지식인데 모르는 사람이 모른다는 것에 놀랐다”(김민규ㆍ24)는 답변이 10대보다 많더군요. 안은영(24)씨처럼 “우리말에 다양한 표현이 있음에도 젊은 세대가 익숙한 단어만 사용하게 돼 표현이 다채롭지 않게 된 것 같다”는 의견이 꽤 있었어요.
 
하지만 20대도 “젊은 세대를 향한 지나친 일반화는 곤란하다”는 취지의 의견이 많았습니다. 대학생 강희진(22)씨는 “일방적으로 공교육과 어휘력 등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현재 젊은 세대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지적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책보다는 영상, 글보다는 말과 온라인 대화가 편한 세대”라는 거죠. 장수지(21)씨는 젊은 세대의 어휘력을 비판하는 편, 이런 비판을 '꼰대'라고 맞받아치는 편이 대립해선 도움될 게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국문학자 "우리말과 한자어의 경쟁 현상"

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BIGKinds)'에 따르면 ’사흘동안“과 ’사흘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기사가 ’3일동안“과 ’3일간“이라는 표현을 쓴 기사의 수보다 월등히 적었습니다. [그래픽=이지수 인턴]

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BIGKinds)'에 따르면 ’사흘동안“과 ’사흘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기사가 ’3일동안“과 ’3일간“이라는 표현을 쓴 기사의 수보다 월등히 적었습니다. [그래픽=이지수 인턴]

국문학자들은 '사흘'을 둘러싼 해프닝을 '공교육의 실패' 보다 '순우리말과 한자어의 경쟁에서 빚어진 사건'이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디지털 문화의 발달로 기성세대가 사용해온 '사흘'과 '나흘'이란 우리말을 덜 쓰게 됐다는 시각이죠.
 
박진호 교수(서울대 국어국문학과)는 “고유 언어와 같은 의미를 가진 한자어가 경쟁하는 현상은 예전부터 많이 있었는데, 대체로 한자어가 승리하는 편”이라며 “사흘을 둘러싼 해프닝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산(山)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뫼’나 강(江)을 가리키는 ‘가람’을 실생활에선 사실상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즉, 이번 해프닝은 ‘사흘’, ‘나흘’이라는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자주 안 쓰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겁니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순우리말보다 한자어를 선호하는 현상은 기성세대나 1020이나 별 차이가 없죠.  

 
그래서 박 교수는 “젊은이들은 사흘이 3일이 아니라 4일이라고 착각하는 현상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 교육이 글러 먹었다’란 식으로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사흘'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자 2004년 한 언론사가 '사흘'을 '4흘'로 표기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진=웹사이트 캡쳐]

'사흘'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자 2004년 한 언론사가 '사흘'을 '4흘'로 표기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진=웹사이트 캡쳐]

 
밀실팀이 직접 조사한 결과 신문ㆍ방송 등 언론 보도에서도 ‘사흘’이란 표현보다 3일이란 표현을 훨씬 많이 쓰고 있었습니다.  
 
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BIGKinds)’를 조사해보니 1990년부터 2019년까지 ‘사흘 동안’이나 ‘사흘간’이란 표현을 쓴 기사가 ‘3일 동안’이나 ‘3일간’이란 표현을 쓴 기사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2019년 한 해만 놓고 보면 ‘사흘 동안’‘사흘간’은 총 8989건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3일 동안’‘3일간’은 3배가 넘는 2만 8261건에 이르렀죠. 신문ㆍ방송의 주된 이용자가 기성세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순우리말인 사흘보다 한자어인 3일을 선호하는 어른들의 언어습관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사흘 대란’은 ‘공교육의 실패’‘1020의 어휘력 부족’ 등보다 순우리말보다 한자어를 선호하는 우리 시대 언어 습관의 변화가 반영된 현상 아닐까요. ‘사흘 대란’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 ‘사흘 대란’에 화가 난 1020, 이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살펴보세요.
 
윤상언·박건·최연수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영상=백경민·이지수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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