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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시착’ 씩씩한 여성 덕…일본서 또 달아오르는 한류 붐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일본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사진 tvN]

일본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사진 tvN]

4개월 만에 일본에 다시 돌아왔다. 매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생활해 왔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양국 간 왕래가 어려워지면서 4월부터 4개월 동안은 일본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지냈다. 그사이에 일본 여러 매체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왔는데 주로 두 가지 종류였다. 하나는 성공적인 한국 코로나19 대책, 또 하나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관계자 인터뷰였다. 일본에서 기자들이 한국으로 출장을 못 오게 되는 바람에 한국에 있는 프리랜서 기자인 나한테 요청이 몰린 것이다.
 

코로나 ‘집콕’ 틈타 넷플릭스 시청
젊은 여성들 “한국 드라마에 빠져”

북한도 친근한 사람 사는 곳 충격
자립적 한국 여성 캐릭터에 열광
‘이태원 클라쓰’는 남성 팬 많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한국에서 지난 2월 방영이 끝난 뒤 일본에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게 됐다. 마침 일본은 3월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 새로 넷플릭스에 가입하고 ‘사랑의 불시착’과 만난 일본인들이 많아진 것이다.
  
현빈 표지 모델로 한 ‘주간 아사히’ 불티
 
일본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한 장면. [사진 JTBC]

일본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한 장면. [사진 JTBC]

일본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세대는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던 세대보다 더 젊은 듯하다. 주로 30대에서 “처음 본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랑의 불시착’ 너무 재미있다”며 오랜만에 연락을 준 내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한·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했을 때부터 지상파 TV에서 한국 드라마를 볼 기회는 거의 없어졌다. 한국 드라마 팬들은 비싼 케이블 TV를 계약하거나 DVD를 빌리거나 해서 봤었지만 그러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보게 될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한국 드라마가 많아지면서 젊은 층의 관심이 높아졌다.
 
여러 매체가 ‘사랑의 불시착’ 관계자를 인터뷰해 달라는 요청을 보내와서 결국 연출을 맡은 이정효 감독, 북한 군인 표치수를 맡은 양경원 그리고 ‘귀때기’라고 불리는 정만복을 연기한 김영민 3명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요청은 한없이 많이 왔지만, 내가 혼자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잡지 주간 아사히의 의뢰로 추천할 만한 최근 한국 드라마에 대해 현지 거주자로서 내가 인터뷰를 받기도 했다. 주간 아사히 기자는 “‘사랑의 불시착’ 주연 현빈을 표지로 한 호가 폭발적으로 잘 팔려서 당분간 한국 배우나 가수의 취재에 힘을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현빈에 이어 박서준, 장근석도 표지에 나왔다. 한류 잡지가 아니라 일반 정치 이야기도 많이 실리는 주간지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일본에서는 ‘사랑의 불시착’ 다음으로 역시 넷플릭스로 볼 수 있는 ‘이태원 클라쓰’도 인기가 많다. 주간 아사히가 한 설문조사 결과 ‘가장 좋아하는 한류 배우’ 1위는 ‘이태원 클라쓰’의 주연 박서준, 2위는 장근석, 3위는 현빈이었다. 장근석은 ‘미남이시네요’라는 드라마로 일본에서 떴는데 그때부터 10년 지나도 팬들의 사랑은 뜨거운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큰 반응은 한류 붐의 시작 드라마 ‘겨울연가’ 이래 처음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 지인들한테 하면 꼭 “왜?” 하고 의아해한다. “그런 드라마가 있었어?”라는 반응도 많다. ‘사랑의 불시착’을 모르는 한국인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는 ‘사랑의 불시착’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직접 보지는 않아도 사회현상으로 많이 보도되고 있어서다.
 
한류 스타 현빈(왼쪽)과 박서준을 표지모델로 올린 일본 주간 아사히.

한류 스타 현빈(왼쪽)과 박서준을 표지모델로 올린 일본 주간 아사히.

하지만 한국에서 일본의 새 한류 반응이 욘사마(배용준) 붐 때처럼 느껴지지 않은 건 역시 코로나19 때문일 것이다. 당시엔 갑자기 한국에 일본 욘사마 팬들이 몰려왔다. 특히 ‘겨울연가’ 촬영지 춘천 남이섬 등에 관광객이 확 늘어났다.
 
‘사랑의 불시착’에 대해 일본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강연을 했을 때도 역시 촬영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질문이 많았다. 아마도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많은 팬이 촬영지를 순례하러, 그리고 출연자를 만나러 한국에 왔을 것이다. 사실상 한·일 간의 왕래가 불가능해진 지금은 일본 국내에서 즐길 수밖에 없다. 어떤 친구는 “한국에 못 가는 대신 도쿄에 있는 한국 치킨체인점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 체인점은 ‘사랑의 불시착’의 PPL(간접광고)로 자주 등장했던 체인점이다. “치킨을 먹으면서 ‘사랑의 불시착’에 대해 수다 떠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사랑의 불시착’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북한에 대한 관심이 그 첫 번째인 것 같다. 정치적인 부분만 부각하는 보도로 북한의 이미지는 일본에서 대부분 안 좋다. 그런데 거기에 친근감을 느낄 만한 보통 사람들도 살고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겨울연가’ 하나로 한국에 대한 시선이 바뀐 것처럼 ‘사랑의 불시착’ 하나로 북한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이정효 감독이 “BTS를 비롯해 K-POP이 퍼지고, ‘기생충’이 퍼지고,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의 정서들을 받아들이게 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한 것도 일리가 있다. 이른바 제3차 한류 붐은 BTS나 트와이스 등 K-POP 중심으로 시작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지금도 코로나19 속에서도 ‘벌새’ ‘말모이’ 등 한국 영화가 일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일본 드라마엔 여성들 목소리 잘 안 내
 
아카데미상 수상 영화 ‘기생충’도 일본에서 개봉돼 호평을 받았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아카데미상 수상 영화 ‘기생충’도 일본에서 개봉돼 호평을 받았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최근 몇 년 동안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그렇지만 이제 한국 문화는 정치적인 것과 상관없이 일본에서 다양하게 정착한 것 같다. “한국은 싫어하지만 ‘기생충’은 좋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일본 사람도 있다. 그래도 한국 문화에 대한 평가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을 때 한국에서는 한국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아졌다. 일본에서는 시간이 많아져도 일본 드라마가 아니라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드라마 촬영이 멈췄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일본 드라마보다 한국 드라마가 더 재미있다고 느낀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 많은 이유가 뭔가요? 일본 드라마는 뭐가 부족한 걸까요?” 일본 드라마 관계자로부터 진지하게 질문을 받기도 했다. 각본, 연출, 배우의 연기력 등등 전반적으로 한국 드라마의 수준이 높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해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하나만 지적했다. ‘여성 캐릭터’에 대해서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주인공 윤세리(손예진)를 비롯해 여성 캐릭터가 남성에 의존하지 않은 자립적인 캐릭터였다는 점이 일본에서 화제가 됐었다. 세리는 재벌의 딸이지만 패러글라이더를 타다가 북한에 불시착해도 씩씩하게 몇 번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건 배다른 오빠들과의 경쟁에도 익숙하고 자신의 힘으로 패션 미용 사업을 성공시킨 자립적인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세리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그랬다. 남성의 뒷바라지만 하는 캐릭터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 한국에서 언급하는 건 별로 못 들었다. 그건 요즘 한국 드라마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래 현실에 없는 것을 대신 드라마로 채우는 면이 있다. 중동에서도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일본에서 왜 ‘사랑의 불시착’의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공감도가 높은지도 조금 알 것 같았다. 중동은 비교적 남성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낮다고 한다. 일본 여성들은 좀처럼 목소리는 안 내지만, 내심 여성의 입장에 대해 불만이 있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그런 여성의 속마음을 생각해서 드라마를 만들어야 일본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실제로 일본에서 ‘사랑의 불시착’ 팬은 여성이, ‘이태원 클라쓰’ 팬은 남성이 많은 경향이 있다. ‘이태원 클라쓰’는 남성이 주인공인 직업적인 성공 스토리와 복수극 드라마로 평소에 상사의 갑질에 말도 못 하고 참고 있는 직장인들이 쾌감을 느꼈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사람의 왕래는 어려워졌으나 온라인으로 드라마나 영화는 쉽게 국경을 넘는 시대가 됐다. 올해 초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상황이다. 2주일 이상 일본에서 지내는 건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유학 온 지 3년 반 만에 처음이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그동안 제대로 못 봤던 일본 드라마도 보고, 다시 일본 문화와 사회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져볼까 한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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