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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외국정상 마크롱, 왜 베이루트 폭발현장 찾아 "개혁" 외쳤나

중동국가인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8월 4일 항구 창고에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이 인근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대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적어도 135명이 사망하고 5000여 명이 다쳤으며 3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AP 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폭발 결과 핵폭발을 방불하게 하는 거대한 버섯구름이 발생했을 정도였다. 베이루트 항구와 인근  시가지는 초토화했다. 이번 사고는 21세기 최대의 도시 폭발 사고로 기록될 수준이다.  

마크롱, 현장서 ‘개혁’‘부패추방’ 외쳐
외국 대통령 정치문제 거론 이례적
FT, ‘폭발로 대중, 지배층에 분노’ 지적
주민들, ‘혁명’ ‘정권 퇴진’ 외치며 시위
종교갈등 방지책 권력분점이 근본문제
건국·내전시 기독교·이슬람 요직 나눠먹기
국회도 분할…선거로 견제·세력교체 불가
지도층 부패·무책임·무능에 국민 불만
경제난에 2019년 ‘백향목혁명’ 시위 터져
코로나19로 경제난 가중되며 분노 폭발
6년 방치 화학물질 대폭발, 모순 상징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4일 발생한 대형 폭발로 주변 지역이 초토화됐다. 사진은 폭발로 인해 베이루트 상공에 충격파가 발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4일 발생한 대형 폭발로 주변 지역이 초토화됐다. 사진은 폭발로 인해 베이루트 상공에 충격파가 발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마크롱, 베이루트 폭발 현장에서 “개혁”

그런데 이를 보도하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의 6일자 지면은 조금 독특했다. 이 신문은 6일자 1면 톱에 ‘베이루트 폭발 사망자가 135명에 이르면서/관리소홀 책임자를 처벌한다는 서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이 기사에는 ‘대통령이 행동을 약속’ ‘항구 관리들 가택연금’ ‘생존자 수색 진행 중’이 부제로 달렸다. 3면에는 ‘베이루트 폭발로 지배층에 대한 대중의 분노 깊어질 것으로 예상’이라는 해설 기사가 들어갔다. 레바논 국민이 이번 사고의 원인을 단순한 실수가 아닌 권력층의 국정 무능과 무책임에서 찾고 있으며, 정치 엘리트들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러시아 위성이 촬영한 베이루트 항구의 폭잘 전(위 사진)과 촉발 뒤(아래 사진)의 비교. 폭발로 수많은 건물과 시설이 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타스=연합뉴스

러시아 위성이 촬영한 베이루트 항구의 폭잘 전(위 사진)과 촉발 뒤(아래 사진)의 비교. 폭발로 수많은 건물과 시설이 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타스=연합뉴스

특히 주목할 점은 6일 베이루트에 도착해 사고 현장을 둘러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이다. 마크롱은 베이루트에서 슬픔과 함께 ‘분노’를 표시했다고 프랑스 국제방송 프랑스24 인터넷 판이 보도했다. 마크롱은 베이루트 항구 폭발사고가 발생한 뒤 현장을 찾은 첫 외국 지도자다.  
지난 6일 베이루트 대폭발 현장을 찾은 에미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 외국 대통령으로 처음 사고 현장을 찾은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외국 정상으로선 이례적으로 레바논의 개혁을 촉구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일 베이루트 대폭발 현장을 찾은 에미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 외국 대통령으로 처음 사고 현장을 찾은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외국 정상으로선 이례적으로 레바논의 개혁을 촉구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크롱은 “레바논은 외롭지 않다”며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긴급하게 개혁하지 않으면 계속 가라앉을 것”이라고 변화를 촉구했다. 수많은 사람이 숨지거나 다치고 수십억 달러로 추산되는 사고 현장에서 외국 국가원수가 개혁을 촉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8월 4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질삼암모늄 폭발사고로 거대한 버섯 구름이 생기고 있다. AFP=연합뉴스

8월 4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질삼암모늄 폭발사고로 거대한 버섯 구름이 생기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고 현장 근처에선 ‘정권 퇴진’ 시위

마크롱이 폭발 현장에 파인 폭 140m의 웅덩이와 잔해로 어지러운 항구를 불러본 뒤 주변 지역으로 옮기자 성난 군중이 나와 “혁명” “민중은 정권 퇴진을 원한다”라고 외치며 레바논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자 마크롱은 “나는 정권을 인정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니다”라며 “프랑스의 지원은 결코 ‘부패한 자의 손’에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프랑스24는 전했다.  
그렇다면 마크롱은 왜 레바논에서 ‘개혁’ ‘부패’라는 말을 했을까. 그를 맞은 레바논 국민들은 왜 ‘정권 퇴진’‘혁명’을 외쳤을까. 여기에는 깊은 사연이 있다. 레바논 국민의 불만은 단순하게 8월 4일의 폭발사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레바논은 이미 지난해부터 경제난 등으로 인한 시위사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까지 겹쳐 심각한 상황이다. 레바논 국민은 그 배경이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여긴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벌어진 반정수 시위와 진압의 모습. EPA=연합뉴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벌어진 반정수 시위와 진압의 모습. EPA=연합뉴스

 

레바논 심각한 경제·재정난 겪어

특히 경제 사정이 심각하다. 지난해 10월 이후 레바논의 통화인 레바논 파운드의 가치는 80%가 하락했다. 레바논 정부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70%에 이르는 국가부채를 안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최고 50%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는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다. 전기공급도 불안해 만성적인 단전에 시달리고 있다. 단전은 국민이 당장 피부로 느끼는 불편이다.  
사실 레바논 경제는 오랫동안 중동의 모범생이었다. 시장경제와 개방경제, 정부 간섭과 규제를 최소화하는 자유방임주의 덕분에 발전을 계속했다. 무역과 금융, 관광이 경제를 이끌었다. 중동 산유국들은 너도나도 레바논에 투자했다. 레바논의 지중해 연안과 산악지대 리조트는 중동 각지와 아프리카, 유럽에서 온 관광객으로 붐볐다. 레바논 요리는 전 세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권력 분점에 따른 무책임한 기득권층의 양산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세력 확대가 문제를 불렀다. 헤즈볼라는 시아파 지지자를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했다. 1992~1998년과 2000~2004년 총리를 지낸 라피크 하리리가 2004년 2월 베이루트에서 폭탄 테러로 사망한 사건에도 관련 의혹을 받고 있다. 수니파 무슬림인 하리리가 친사우디아라비아 성향을 강화하자 친이란 시아파인 헤즈볼라 세력이 암살한 것이라는 추정이 많았다. 2006년에는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대규모 충돌 사태로 위기가 심화했다. 권력이 취한 정치 세력이 경제의 발목을 잡은 형국이다.  
 
4일의 대폭발로 유리창이 깨지고 손상된 베이루트 시내 건물의 모습. AP=연합뉴스

4일의 대폭발로 유리창이 깨지고 손상된 베이루트 시내 건물의 모습. AP=연합뉴스

권력의 무책임이 경제난 불렀다는 시각  

레바논 경제는 그 뒤 일시 회복돼 2007~2010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9.1%에 이르렀다. 하지만 2011년 이웃 시리아에서 내전이 벌어지면서 정정마저 불안해지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레바논의 경제 성장률은 2018년 –1.9%, 2019년 –5.6%를 기록했으며 세계은행(WB)은 올해 성장률을 –10.9%, 2021년은 –6.3%로 전망했다. 실업자가 늘고 특히 청년층의 고통이 가중됐다.  
급기야 국민의 불만이 폭발해 2019년 9월부터 청년층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격화했다. 이들은 정치 지도자들의 부정부패와 무능, 그리고 무책임을 비난했다. 반정부 시위는 레바논 국기에도 그려진 나라의 상징 나무를 따서 ‘백향목(Cedar) 혁명’으로 불린다.  
반정부 시위는 올해 코로나19가 확대되는 와중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국민의 불만과 분노가 얼마가 큰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친시리아 국가로 분류됐던 레바논에서 반시리아 세력이 확대됐다. 최근 들어서는 시아파 세력조차 시리아에 등을 돌리기에 이른 것으로 분석된다. 
레바논의 에너지부 앞에서 벌이진 반정부 시위. 레바논은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전기 공급 불안이 심하고 단전이 잦아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레바논의 에너지부 앞에서 벌이진 반정부 시위. 레바논은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전기 공급 불안이 심하고 단전이 잦아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불만 폭발 ‘백향목 혁명’…코로나 속 시위  

코로나19 확산은 레바논에서 정치 문제화하고 있다. 2월 말 발생한 레바논의 첫 확진자가 이란의 시아파 성지인 쿰에서 직항편으로 귀국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란과 친이란 세력인 헤즈볼라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헤즈볼라는 이에 대해 침묵을 계속해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통계사이트인 월도미터에 따르면 인구 682만 명의 레바논에서 8월 7일까지 5672명의 확진자가 나왔으며 사망자는 70명이다. 인구 100만 다 확진자는 831명, 사망자는 10명에 이른다. 지금까지 34만5000여 명을 검사해 인구 100만 명당 5만 명 정도를 검사했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로 이한 경제활동 중단으로 경제 사회적 충격이 커지고 있다. 유엔 인권기구에 따르면 레바논 국민의 75%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레바논에는 리조트 근무자 등 25만 명 정도의 이주 노동자가 있는데 코로나19로 대부분 일자리를 잃었으며 코로나19 검사를 비롯한 혜택과 지원에서도 소외된 상황이다.  
베이루트 항구의 곡물 저장고가 4일의 대폭발로 무너져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베이루트 항구의 곡물 저장고가 4일의 대폭발로 무너져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근본문제는 종교갈등 막자는 권력분점

백향목 혁명에 나선 레바논 국민의 상당수는 경제난과 코로나19에 대한 부진한 대응의 원인을 정치에서 찾는 분위기다.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 교체와 책임지는 정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레바논 특유의 권력 분점에도 찾을 수 있다.  
그 근원은 1943년 레바논 건국과 1989년 레바논 내전(1975~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바논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1299~1922년)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시리아의 한 지방이었다. 하지만 이 산악 지역으로 종교적 소수파인 마론파 기독교도(마론 전례 가톨릭으로도 부른다)와 이슬람 시아파에서 분리된 독특한 종교인 드루즈교 신자들이 몰려와 살면서 하나의 독자적인 지역으로 발전했다. 오스만 제국도 이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했다. 서로 견제하며 공존하라는 이야기였다.  
다종교 지역인 레바논은 제1차 세계대전(1914~18년)이 끝난 1919년 프랑스가 점령했으며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이 됐다. 프랑스는 기독교도가 많은 레바논을 시리아에서 분리해 별도 지역으로 관리했다. 레바논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 프랑스 위임통치령에서 독립했다. 당시 레바논 국민을 이루던 마론파 기독교도와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이슬람 신자), 그리고 드루즈 신자는 다종교 국가 내에서 정치적 안정과 균형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권력분점을 규정한 ‘1943년 국민협약’이라는 불문협약을 맺었다. 약속한 내용을 문서로 구체적으로 남기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질산 암모늄 폭발로 산산히 부숴진 베이루트 항구 창고의 모습 EPA=연합뉴스

질산 암모늄 폭발로 산산히 부숴진 베이루트 항구 창고의 모습 EPA=연합뉴스

 

독립 유지 위해 ‘국민협약’으로 권력 나눠

그 핵심은 독자 국가인 레바논 수립이었다. 마론파 기독교도는 서구(기독교 세력)의 국정 개입을 추구하지 않고 서구 국가가 아닌 아랍 계열의 레바논을 받아들이고, 무슬림은 시리아와 연합하는 열망을 포기한다고 규정했다. 레바논이 기독교 인구를 바탕으로 서구국가의 하나나 일부가 되는 것도, 무슬림 인구를 바탕으로 이웃 시리아에 흡수되는 것도 막고 독자적인 국가가 되기로 합의한 것이다. 프랑스나 시리아에 흡수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가 반영된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라 각 종교와 종파는 정치 권력과 요직을 다음과 같이 분할하기로 했다. 대통령과 레바논 군대의 최고사령관은 항상 마론파 기독교도다. 총리는 항상 수니파 무슬림이다.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다. 국회부의장과 부총리는 항상 그리스 정교도다. 군대의 합참의장은 항상 드루즈교도다. 국회에서 기독교도와 무슬림의 비율은 항상 6대 5로 한다. 이는 1932년 인구조사 결과 기독교도가 51%, 무슬림이 49%로 나타난 것으로 바탕으로 했다.  
레바논은 그 뒤 정치적 안정과 재정 속에 지정학적 위치와 서구와의 관계를 활용해 무역과 관광, 금융업, 농업 등으로 번영을 누렸다. 레바논은 ‘동방의 스위스’로, 수도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로 불렸다.  
 
사고 직후 구호품과 긴급 구조대를 싣고 베이루트 공항으로 달려온 러시아 비행기. AP=연합뉴스

사고 직후 구호품과 긴급 구조대를 싣고 베이루트 공항으로 달려온 러시아 비행기. AP=연합뉴스

인구 늘어난 무슬림 불만 속 내전 발생

하지만 그 뒤 해외 이민율과 출산율 등의 차이로 인구비중이 변화해 다수를 차지하게 된 무슬림의 정치적 불만이 증가하게 됐다, 결국 마론파 기독교도와 무슬림의 긴장이 높아지고 충돌이 벌어지면서 1975년 비극적인 레바논 내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거점을 마련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무장조직과 충돌하면서 1982년 레바논을 침공했다. 1985년에는 남부 지역을 점령해 2000년 5월 철수 때까지 머물렀다. 시리아도 1976년 레바논에 군대를 보내 2005년까지 주둔했다.  
레바논 내전은 12만~15만 명의 사망자를 낸 채 1990년 내부 협상을 통해 종결됐다. 1975년 시작돼 15년 가까이 계속되던 레바논 내전은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타이프에서 이뤄진 각 정파 간 협상을 통해 ‘타이프 협정’을 맺으면서 사실상 종식됐다. 협정의 내용은 권력분점 형태의 변화와 특정 정파를 지원하는 외국 군대의 철수였다.  
타이프 협정 결과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국회에서 종전의 55대 45의 분포를 50대 50으로 바꾸었으며, 무슬림이 맡는 총리의 권한을 강화했다. 레바논에서 국내외 모든 무장세력의 무장을 해제하거나 철군, 또는 추방했다. 다만 이란의 지원을 맡는 이슬람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는 이를 거부하고 세력을 키웠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레바논에서 추방됐다. 이스라엘군은 2000년, 시리아군은 2005년 4월까지 각각 철수했다.  
내전이 끝나고 외국 군대가 철수하고 레바논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지만, 종교적 긴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레바논의 종교별 인구는 무슬림 수니파가 28.79%, 시아파가 28.37%, 마론파 기독교도가 19.53%, 그리스 가톨릭 신자가 4.54%, 그리스 정교도가 6.94%, 기타 기독교도가 4.83%, 드루즈교 신자가 5.54%로 각각 나타났다. 무슬림 57.16%, 기독교도 35.84%에 이슬람 시아파에서 시작됐지만, 현재는 이슬람으로 간주하지 않는 드루즈교 신자 5.54%의 분포다. 공식적으로는 무슬림 54%, 기독교 41%, 드루즈 5%의 분포로 말한다. 당연히 인구가 많은 무슬림의 정치적 불만이 여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레바논의 기독교도는 해외 이민자들의 송금을 바탕으로 경제력이 강한 상태였다.  
레바논으로 향하는 독일 긴급 구조대가 5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레바논으로 향하는 독일 긴급 구조대가 5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권력 분할은 특권·부패·무책임 불러  

정치적으로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 등 요직을 차지한 정치 엘리트들이 특권 세력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대통령과 의회가 있고 선거가 치러졌지만, 종교별 세력 분포를 규정한 1943년 국민협약과 1989년 타이프 협정 때문에 국민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선거로 교체되거나 견제되지 않는 특권 세력이 레바논의 정치 엘리트로 자리 잡은 셈이다. 견제를 받지 않으니 이들은 특권화했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정치와 정책에 책임지지 않는 무견제 세력이 자리 잡으면서 무능·무책임이 판을 쳤다. 이는 이번 폭발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비료와 폭발물 원료로 강한 폭발성을 지닌 질산암모늄이 2700t 이상 압류돼 항구에 보관되고 그 위험성이 지적되면서도 아무도 처리하지 않은 무책임이 결국 사고의 원인이 됐다.  
베이루트 폭발 사고 현장에 달려가는 네덜란드 긴급구조대가 5일 에인트호벤 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베이루트 폭발 사고 현장에 달려가는 네덜란드 긴급구조대가 5일 에인트호벤 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폭발사고 원인은 비민주적 ‘고인 권력’

결국 베이루트 항구의 질산암모늄 폭발은 단순한 인재를 넘어선다. 정치와 제도적인 문제가 얼마든지 국가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핵심에는 선거로 교체되지 않는 권력, 그들이 만든 특권과 부정부패, 그리고 이런 정치 시스템이 유발한 무능과 무책임이 자리 잡고 있다. 베이루트 폭발사고의 파장은 레바논을 넘어 중동 지역을 비롯해 비민주적인 정치적 모순이 심화한 다양한 지역으로 번질 수 있을까. ‘백향목 혁명’이 글로벌 사회의 새로운 흐름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적어도 국제사회의 레바논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복구 협력 자금을 지배세력이 착복하는 일을 막는 제도적 감시는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루트 폭발로 세계가 견제 바지 않는 ‘고인 권력’의 모순과 폐해를 생생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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