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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동창업 새 바람’ 소소한사람들 이승준 대표의 인생 역전 비결

안정적인 시스템과 아이템을 통해 예비창업자들의 성공적인 창업을 지원하며 상생발전을 실천하는 외식 창업 회사 대표의 인생스토리가 주목받고 있다. 외식 창업을 지원하는 ‘소소한 사람들’의 이승준 대표(46)가 그 주인공이다.  
 
사람의 인생 자체가 여러 굴곡을 겪고 살아가지만 이 대표처럼 젊은 시절 사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대표의 젊은 시절은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지던 IMF 외환위기 시절 전후로 나뉜다. 그는 20살이 되던 해 부친의 뜻에 따라 사업을 도맡아 운영하는가 하면, 군 제대 후 IMF 여파로 부친의 사업이 기울었을 때도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꺼내 들어 자산 20억대 성공신화를 쓴 인물이다.
 
이승준 대표를 만나 그의 사업 경험담을 비롯한 인생 이야기와 소소한 사람들이 만드는 소소한 식당의 운영 방식과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처음 사업을 접했던 상황이 궁금하다.
내가 20살이 되자 아버지는 서울 신천역의 1급 자동차 정비공장을 맡기셨다. 당시 강남 지역까지 부속 공장이 7개가량 있었는데, 신천역에 있는 공장이 대표 사업장이었다. 그곳 운영을 내가 하게 됐다. 군대를 다녀오니 IMF 여파로 망하는 공장이 많았다. 이때 선릉역 부근에 있던 현대부품센터만 남고 모든 공장은 파산됐다. 부모님이 무리해서 사업을 확장하신 것도 원인이었다. 매출이 줄자 거래처나 은행에서 부모님에게 금전적인 압박이 따랐다. 당시 어린 마음이지만 ‘내가 힘이 없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없구나. 내 스스로 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 당시 등록금 낼 돈도 없어 휴학하고 일을 하게 됐지만 사업을 해도 큰 두려움은 없겠다 싶었다.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또 다시 사업으로 그 시간을 극복했는데.
1998년에 한 대 남아있던 오토바이로 작은 부품가게를 운영하는 게 시작이었다. 그 해 말에 매형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선릉역에 있는 망한 정비공장을 인수했다. 부품가게를 하다보니 점점 가능성이 보여 외제차 3사 정비수리점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차별화 전략을 통해 실적이 좋았다. 우리 매장은 당시 기술자 대신 서비스 매니저가 전문적인 고객 상담을 맡았다. 특히 노트북 상담의 스마트화를 시도해 고객 신뢰도를 높였다. 외제차를 이용하는 고객의 취향에 맞춰 고객 휴게실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적용했다. 지역 특성상 대기업 회장단과 간부가 많이 찾았는데, 이들을 타깃으로 프리미엄 프라이빗 콘셉트로 운영했다. 가장 특별했던 건 고객 집으로 차를 픽업한 다음 수리 후 돌려주는 홈 투 홈 서비스, 국내 최초로 시도한 걸로 안다. 일반 정비공장의 경우 동호회 등과 연계해 단가가 낮은 것과 비교해 단가가 높았다. 당시 강남에 벤츠 차량을 수리할 수 있는 정비소가 없었기 때문에 해당 차량 소유자들이 대거 몰리기도 했다. 이후 페라리 이태리에서 기술자를 초빙해 해당 차량에 대한 전문적인 수리가 가능케 했다. 이러한 영업 비결이 입소문을 통해 지속적인 고객방문이 이뤄졌고, 2년이 됐을 때 현금 25억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어린 나이부터 사업을 운영하다 보니 다른 경험을 하고 싶진 않았는지.  
재건축붐으로 지점을 팔고 난 비용을 포함한 25억으로 재개발하는 부지를 사면서 2년 정도 일선에서 떠났다. 집안을 일으켰으니 이제는 돈을 위해 살기보다 머리를 채우기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대학원도 다녔다. 이후 견문을 넓히기 위해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던 중 영국에서 1년 6개월을 보냈고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미국 샌디아고에서 살았다. 그동안 번 돈은 한국에 두고 왔기 때문에 하숙집 운영과 대리운전을 하며 생활했다.  
 
하숙집에 숙박하는 유학생과 관광객 등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소통하다 보니 시야가 더 넓어지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평소에 관심이 많고 즐겨 했던 골프 생활을 하기 위해 골프대학원도 다녔다.  
 
소소한 사람들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미국에 있을 때 캘리포니아에서 한식 영업이 잘되겠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요식업을 구상하게 됐다. 결혼 후 아내와 처가에 나라는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고 싶었다. 아내에게 “한번도 안해본 일을 할 테니 나를 믿고 따라와주겠냐”고 했다. 이후 한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분이 개인 사정으로 인해 식당 월세가 밀려 있던 것을 시설비까지 주고 인수했다. 처음 즉석떡볶이 장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소소한 사람들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
소소한 사람들은 외식 창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대표 브랜드로는 ‘소소한 식당’이 있다. 소소한 이야기 라는 콘셉트로 현재 25번째 매장이 오픈 준비 중이며, 이 중 소소한 식당은 직영점 12곳이 있다. 소소한 이야기는 한식, 일식, 맥주집 및 건강주스 판매를 하며, 소소한 식당은 덮밥 전문점이다. 즉, 소소한 이야기는 요식업을 총망라한 사업 이야기 라고 보면 된다. 각 매장은 공동경영자인 직원이 운영을 맡고 있으며, 소소한 사람들은 투자회사로서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역할이 궁금하다.
직원이 취업 후 1년이 지나면 공동경영자로 자격이 부여되며, 본인이 원하는 지역에 창업비용 전액을 지원하고, 처음 매장이 지역 식당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인테리어, 월세 등 모든 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한다. 만약 망한다고 하면 채무는 회사가 안는다. 예비창업자들의 접근성이 높으면서도 이직률은 제로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다. 아무나 하고 공동 창업을 하거나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 생각은 없다. 처음부터 직원이 사장이 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현재 매장을 운영하는 공동경영자가 20명 정도 되는데, 이들의 성취감에 포커스를 맞춰 지원한다.  
 
여기서, 회사 전체의 경영참여를 원한다면 공동경영자로서 기본급 외에도 순이익 50% 배당하는 식이다. 만약, 독립을 원할 시 매장을 100% 본인 소유로 이전 해준다.  
 
소소한 식당이 나아갈 방향이 있다면.
소비자가 거품 없는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공동경영자는 유통 마진이 없는 식자재와 질 높은 자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확고한 각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소소한 식당의 원자재(식자재)를 유통해 유통 마진을 없애고 그 비용으로 공동경영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향후에는 스마트 농장까지 직접 경영을 하여 질 좋은 원자재를 공급함과 동시에 그 마진도 공동경영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결국, 스마트농장부터 지점마다 식자재 납품까지 순이익은 50% 배당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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