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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했다, 거물들이 폐허 만들어”…들끓는 베이루트

5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한 여성이 폭발로 파손된 건물 안에 앉아 있다. EPA=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한 여성이 폭발로 파손된 건물 안에 앉아 있다. EPA=연합뉴스

 
“거물들(big ones)이 우리나라를 폐허로 만들고 있다”
“차라리 이스라엘이 일으킨 폭발이었으면 좋겠다”
 
대규모 폭발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나온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민심이 이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참사 직후 베이루트 주민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내보냈다.
 
로저 마타르(42)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쾅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창문과 문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창문은 틀째로 날아갔고, 유릿가루가 집 전체에 흩날렸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미술관 내부 모습. AFP통신=연합뉴스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미술관 내부 모습. AFP통신=연합뉴스

 
마타르는 “은행이 우리 돈을 쥐고 있다”면서 “인부들에게 돈을 주려면 현금이 필요하다. 정부가 우리를 도와줘야 하지만 정부도 파산 상태다. 이 나라는 망했다”고 비판했다. NYT는 금융 위기로 인해 레바논 은행들이 시민들의 현금 인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이루트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이만 하셈은 “당신도 보다시피 내 가게는 간신히 서 있기만 한 상태”라면서 “모두 다 사라졌다. 계산대에 있던 돈마저 도둑맞았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그는 은행에 돈이 묶이고, 경기마저 안 좋아 보험을 갱신하지 않았는데 폭발이 일어났다고 하소연했다.
 
베이루트에서 가정용품 매장을 운영하는 나다 케말리도 “거물들(big ones)이 우리나라를 폐허로 만들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는 이번 폭발로 가게와 집을 모두 잃었다. 케말리는 “정치인들의 집으로 가자”며 “그 거물들 중 과연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냐. 누가 우리에게 배상해 주겠냐”고 했다.
 
이날 한 베이루트 주민이 자신의 아파트를 걸어다니고 있다. AFP통신=연합뉴스

이날 한 베이루트 주민이 자신의 아파트를 걸어다니고 있다. AFP통신=연합뉴스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현지 병원들은 인력과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하마드 하산 레바논 보건부 장관은 “피해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극심히 부족한 상태”라고 밝혔다.
 
폭발이 일어난 항만 근처의 ‘로자리오 병원’에서는 폭발로 간호사 1명이 숨졌다. 수술실로 뛰어가던 간호사의 다리가 부러지고, 환자들이 침대에서 밀려 떨어지기도 했다. 조셉 엘리아스 병원 심장내과장은 “병원에 있는 모든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고, 모든 인공호흡기와 화면, 문이 부서졌다”면서 “병원은 벽만 남아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토니 투픽은 “나라로부터 어떤 도움도 기대하고 있지 않다. 지금은 무정부 상태”라고 했다.
 
세인트 조지 의과대학 병원에서는 폭발에 휘말린 간호사 4명과 환자 최소 13명이 사망했다. 폭발 직후 전기가 끊겨 의료진과 환자들은 어둠 속에서 대피했고, 사상자가 이송돼 오며 병원 업무는 사실상 마비됐다. 지금 세인트 조지 의과대학 병원은 문을 닫은 상태다. 라자 아쇼 방사선학과장은 “9·11 테러를 보는 것 같다. 우리한테 지금 상황은 그 정도로 안 좋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도미니크 다우 박사도 “차라리 이스라엘이 일으킨 폭발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집 안에서 폭발을 맞지 않기 더 쉬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베이루트의 한 파손된 건물 전경. AP통신=연합뉴스

베이루트의 한 파손된 건물 전경. AP통신=연합뉴스

 
법원 측이 참사 원인으로 지목된 질산암모늄의 폭발 가능성이 수차례 보고됐음에도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민들의 불만은 더 커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2013년 베이루트에 정박한 러시아 선박 ‘MV 로수스호’는 항만사용료 미납 등을 이유로 억류됐다.
 
MV 로수스호 선원들은 이듬해 배를 놔둔 채 본국으로 송환됐고, 배에 실린 질산암모늄 2750톤은 2014년 11월부터 항만 창고 안에 보관됐다. 레바논 세관은 질산암모늄 처리 지침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수차례 요구했지만 법원은 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항만 감독 하산 코라이템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제 국가적인 재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며 “항만이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베이루트의 한 거리 모습. EPA=연합뉴스

베이루트의 한 거리 모습. EPA=연합뉴스

 
피해는 주로 연안 및 항만 인근 지역에 집중됐지만, 폭발로 인한 충격파는 수㎞ 떨어진 건물의 유리창을 모두 부숴버릴 정도였다고 NYT는 전했다. 도심 지역의 유명 호텔 유리 벽은 산산조각이 났고, 고급 레스토랑과 명품 가게들도 무너져내린 상태였다. NYT는 사적과 클럽들이 위치해 관광 명소로 꼽혔던 젬마이제 지구는 쓰러져 내린 나무들과 무너진 건물 등으로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수년간 이어져 온 경제 침체와 정치적 부패에 이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폭발 참사로 레바논 국민의 불만은 더 커지고 있다. 레바논 국가부채는 지난해 9월 기준 745억 달러로, 레바논 국내총생산(GDP)의 140%에 이른다. 지난해 촉발된 반정부 시위로 총리가 교체됐지만, 레바논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상황은 나아지지 않은 상태다.
 
4일 대규모 폭발로 지금까지 최소 135명이 숨지고 5000여명이 다쳤다. 베이루트시는 폭발로 인한 재산피해액이 30억 달러(약 3조550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베이루트 항구 인근 지역의 모습 .Xinhua=연합뉴스

베이루트 항구 인근 지역의 모습 .Xinhua=연합뉴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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