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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큰 병 걸렸다는 말에 남편이 메고 온 자루배낭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52)

태백 살 적, 몸이 많이 안 좋아서 집 근처 의원을 가니 큰 병원을 가보라 했다. 그 동네 가장 큰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또 더 큰 병원을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며칠 동안 소견서에 적힌 영어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내가 가입한 생명보험회사에서 코드번호 C계열의 병명도 알게 되었다. 53의 숫자는 자궁암 계열이었는데 의심증상이 있으니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 당시 큰애가 6살 작은애가 4살 때여서 머릿속이 하얘지고, 하늘이 캄캄해진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았다.
 
내가 5살 때 친엄마가 돌아가셨으니 나도 그 유전적인 걸로 일찍 가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부모님이 알면 얼마나 슬퍼하실까, 내가 죽고 나면 어린 내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더 슬픈 건 아픔도 죄가 되는 가난한 현실이었다. 하던 일이 망해 여기까지 와서 숨어 사는 꼴인데, 병원을 간다 해도 돈은 또 어디서 구할 것인가.
 

동네 의원에서 더 큰 병원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내가 5살 때 친엄마가 돌아가셨으니 나도 그 유전적인 걸로 일찍 가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사진 pikist]

 
퇴근한 남편에게 눈치 보며 말했더니,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그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나가서 몇 시간 후 돌아왔다. 낯선 자루배낭을 어깨에 메고 들어온 남편은 덤덤하게 나를 안아주며 호기롭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요즘 그런 암은 병도 아니다. 의사가 못 고치면 내가 조약으로도 고칠 수 있다. 나만 믿어라. 그러니 큰 병원 가서 검사나 받아보자.”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 모른다. 같이 사는 사람이 그리 말해주니 별일 아닌 것 같이 기운이 났다. 남편이 메고 들어온 자루배낭은 동료에게 통째 빌린 돈 가방이었다. 천 원짜리 다발의 백만 원이란 무게는 묵직했다. 훗날, 그 친구는 부부동반으로 만날 때마다 돈 빌리러 와서 대성통곡하며 울던 남편을 놀려 먹었다. 나도 믿지 못할 통곡사건이다.
 
 
다음날, 첫 기차로 강릉에 있는 종합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왔는데 암은 아니고 염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약을 처방받고 기차를 타고 집에 오다가 벅찬 마음을 누르지 못해 정동진에서 내려 아이들과 손을 잡고 바닷가를 내달렸다. 펄쩍펄쩍 뛰며 얼마나 기운 나서 놀았는지, 가족이 함께 먹는 음식은 또 얼마나 맛있었는지…. 귀가하는 기차 안에서 모두 잠이 들어 다음 역에서 하차, 잠든 아이를 하나씩 들쳐 업고 다시 상행선 기차를 기다렸던 기억. 아이들에겐 피곤했던 기억이 나에겐 그 시절 최고 행복한 날로 남았다.
 
어린아이를 두고 부모가 먼저 가는 것도, 부모를 두고 자식이 먼저 가는 것도 죽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사는 날까지 차례대로 갈 수 있게 건강 잘 챙기며 살자고 남편은 늘 말했다. 빈혈이 심해 잘 쓰러지고, 고기를 못 먹던 내게 남편이 말했다. “단백질을 안 먹으니 픽픽 쓰러지지. 돼지고기라도 안 먹으면 애들 크기도 전에 넌 죽는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별별 음식을 다 잘 먹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나 싶다.
 
누구든 가야 하는 길이지만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가족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사진 pikist]

누구든 가야 하는 길이지만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가족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사진 pikist]

 
그럭저럭 살다 보니 나는 할머니까지 되었고, 건강은 걱정하지 말라 큰소리치던 남편은 암에 걸렸다. 그는 “남자가 먼저 가는 것은 순서가 맞는 거다”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도 쓰러져 오랜 병환으로 교대하듯 병원에 다녔다. 그때 어머니는 남편이 먼저 죽을까 봐 또 걱정이셨다. 날마다 당신 먼저 데려가 달라 기도하셨고, 나 역시 어머님 먼저 돌아가시게 해달라는 이상한 기도를 애타게 하곤 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일 년 앞서 돌아가셨다.
 
누구든 가야 하는 길이지만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가족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러나 내가 본 가장 큰 아픔은 어린 자식을 두고 먼저 떠나야 하는 젊은 부모와 부모를 먼저 떠나야 하는 젊은 자식들의 마음이다.
 
이웃 어르신이 몸져누워 계신다. 함께 밥 먹을 시간도 생기고, 자연에서 함께 농사를 지으며 노후를 보내기로 한 아들이 정년퇴직한 지 한 달 만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웃들도 충격이 크다. 슬픔을 못 이기고 누워계신 어르신께 따뜻한 국 한 그릇과 전 한쪽 담아 들고 가는 고마운 앞집 언니의 모습을 보며 고인들이 가 계신 하늘에 안부를 묻는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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