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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우리들의 ‘천박한’ 도시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서울, 특히 강남을 주 테마로 삼은 이는 시인 겸 영화감독 유하다. 1990년대 말 시집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거대 담론의 80년대가 저물고 욕망·개인·소비·문화의 시대가 열리는 전환기, ‘압구정동’에 프리즘을 댔다. 이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강남 개발 붐이 일던 70년대 말 서울 양재동 남자 고등학교를 무대로, 학교에 내재화된 폭력적 군사문화를 그렸다. ‘강남 1970’은 본격적으로 강남 개발기를 다룬 영화다. 복부인, 조폭, 정치권력이 뒤엉킨 ‘탐욕의 지옥도’를 펼쳐 보였다.
 

천박한 도시라는 여당 대표의 발언
특정 지역 편갈라 낙인찍기 부적절
욕망 단죄보다 잘 읽어야 정책 효과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강에서 괴물이 출현했다. 해외 관객들에게는 바다처럼 넓은 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풍경부터가 인상적이었을 영화다. 이 영화엔 서울 잠실 출신인 봉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숨어 있다. 고교 시절 아파트에서 잠실대교를 내다보다 괴이한 생명체가 기어오르는 장면을 목격한 게 아이디어의 출발이다.
 
최근 서울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등장했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자매가 연출한 미드 ‘센스8’, 마블 영화 ‘어벤져스2’다. ‘어벤져스2’는 강남 테헤란로, 상암동을 누비며 도심 액션신을 찍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외국 영화의 서울 로케이션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앞서 70~80년대 군사정권 때는 ‘서울찬가’류의 ‘관제 건전가요’들이 있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에 대해 “천박한 도시”라는 발언으로 ‘실언’ 리스트를 추가했다. 세종시청의 토크 콘서트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언급하면서 “(프랑스) 센강에는 노트르담 성당 등 역사 유적이 쭉 있어 그게 관광 유람이고, 프랑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안다. 우리는 한강변에 아파트만 들어서 단가 얼마얼마라고 하는데,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이 파리보다 문화도시의 품격이 떨어져 안타깝다는 뜻이겠으나, 다른 누구 아닌 집권 여당 대표의 발언이라 부적절하다. 어느 도시에든 역사성과 배경이 있고,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은 ‘초고층 빌딩숲 옆 전통시장’처럼 이질적 요소가 공존하는 불균질성·역동성을 큰 매력으로 꼽는데, 이 대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서울이 과밀의 메가시티로 성장하면서도, 연일 얼굴을 바꾸며 근사해져 간다고 느끼는 서울 시민의 자부심도 구겼다.
 
사실 이 대표가 정말 천박하다고 여긴 것은 단지 한강변 아파트 풍경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곳을 지배하는 어떤 욕망, 그 욕망에 사로잡힌 어떤 사람들을 겨냥한 것 아닐까. 예술가가 강남의 탐욕을 질타하거나 성냥갑 아파트의 천박한 미감을 조소할 수는 있지만, 정치인의 언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중(국민)의 욕망을 함부로 단죄하며, 특정 지역(민)을 편 갈라 낙인찍는 정치 프레임일 뿐이다. 서울대 장대익 교수는 “여행자에게는 파리가 문화와 낭만의 센 강변이겠지만 힘겨운 도시 노동자에게는 천박한 도시일 수 있듯이 서울도 누가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부동산이든 수도 이전 정책이든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탐구가 빠진 정책이 도시를 천박하게 만든다”고 썼다. 미국 오바마 정부 때 정책의 심리적 작동에 대한 과학적 평가와 제안을 담당하는 ‘사회 및 행동 과학 부서(SBST)’를 신설해 조세·보험·복지·에너지 부문에서 성과를 냈던 사례도 소개했다.
 
한강의 멋진 야경을 선사하는 것이 고층 아파트의 불빛이지만 그 역시 서울의 모습이고 역사며 스토리다. 이 대표는 “한강을 배 타고 지나가다 보면 ‘무슨 아파트는 한 평에 얼마’라는 설명을 쭉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런 문화적 빈곤이 더 문제다. ‘괴물’을 찍은 원효대교, 강남 개발기에 형성된 신사동 유흥가의 ‘원 나잇 스탠드’를 그린 추억의 가요 ‘제3한강교’(당시 ‘퇴폐적’ 가사가 심의에 걸려 수정됐다), 2010년대 도시 서민의 애환을 노래한 ‘양화대교’ 등 한강 다리가 품은 얘기만도 여럿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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