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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의 밀담] 또 뚫린 경계 태세…말뿐인 ‘특단의 대책’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 2월 14~15일, 한국 해병대 1개 중대가 월맹군·베트콩 1개 연대를 무찔렀다. ‘짜빈동 전투’의 승리는 경계를 서던 초병에서 비롯됐다. 2월 14일 밤 거센 비바람 속에서 청음초는 수풀을 헤치는 소리를 들었다. 청음초는 기지 밖에 매복해 적의 접근을 조기에 경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청음초의 보고에 교전이 시작됐다. 적은 다음 날 새벽 본격적으로 해병 기지를 공격했다. 하지만 청음초는 이번에도 적이 몰래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두 번이나 기습에 실패한 적은 해병대의 맹렬한 반격에 200구가 넘는 시체를 남기고 도망갔다.
 

‘동해 목선’‘서해 보트’ 사고 때 마다
‘특단’ 약속했지만 월북 사건 또 터져
적을 적으로 못 부르는 느슨한 군기
안보 둑은 작은 경계 실패로 무너져

전쟁에서 경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짜빈동 전투에서만의 교훈이 아니다. 세계 전쟁사에선 경계가 승패를 가른 전투가 허다하다. 잇따른 군의 경계 실패 사고에 대해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군은 지난해 6월 북한 목선이 강원도 삼척항에 유유히 들어왔는데도 전혀 몰랐다. 당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박한기 합참의장은 엄중 경고를 받았다. 올해 5월엔 중국에서 소형 보트를 타고 충남 태안으로 밀입국한 사건이 있었다. 밀입국 중국인은 육지에서 붙잡혔다. 매번 군 당국은 ‘특단의 대책’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달엔 탈북민 김모(24)씨가 인천시 강화 철조망을 뚫고 북한으로 건너갔다.
 
탈북민 김모(24)씨가 월북 경로로 사용한 강화군 월곶리 연미정 인근의 배수로 앞 소초. 앞쪽으로 북한이 보인다. 감시 장비엔 김씨가 헤엄치는 장면이 녹화됐지만, 군은 뒤늦게 그의 월북 사실을 알게 됐다. [뉴스1]

탈북민 김모(24)씨가 월북 경로로 사용한 강화군 월곶리 연미정 인근의 배수로 앞 소초. 앞쪽으로 북한이 보인다. 감시 장비엔 김씨가 헤엄치는 장면이 녹화됐지만, 군은 뒤늦게 그의 월북 사실을 알게 됐다. [뉴스1]

김씨의 재입북 사건은 군 경계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민통선 검문소의 근무자는 새벽 김씨가 택시를 타고 북한과 가까운 연미정에 내렸는데도 주민이라 생각해 그대로 보냈다. 경계 부대는 매일 순찰을 돌았다지만, 배수로의 철근과 철조망은 점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 장애물에 틈이 벌어진 사실을 전혀 몰랐다. 물샐틈없다고 자랑한 군의 첨단 과학화 경계시스템은 김씨가 한강 하구에서 헤엄쳐 가는 모습을 찍고도 놓쳤다.
 
이는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단이 밝혀낸 문제점들이다. 이것 말고도 더 있다. 정경두 장관이 뒤늦게서야 김씨의 월북을 알았다는 해프닝이다. 지난달 2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정 장관은 ‘김씨의 월북 가능성을 언제 처음 알았냐’는 이채익 미래통합당 의원의 질의에 “(지난달 26일) 아침 7시~7시 반쯤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의 전화를 받고 처음 인지했다”고 답했다. 지난달 26일 북한 관영 매체는 오전 6시 김씨의 재입북을 보도했다. 군사분계선(MDL)을 지키는 국방부의 장관이 최소 1시간 늦게, 그것도 청와대로부터 관련 사실을 전달받았다는 얘기다.
 
국군 정보사령부는 북한 매체를 모니터링한 뒤 이를 포함한 주요 정보사항을 매일 아침 국방장관에게 보고한다. 그런데도 장관은 깜깜이였다. 관련 사실을 잘 아는 군 소식통은 “군 당국은 재입북 여부를 먼저 확인한 뒤 나중에 장관에게 알리려고 했다”면서 “장관 측이 ‘북한에서 탈북민 월북을 보도했느냐’고 먼저 물어봐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론 확인이 안 되더라도 일단 보고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강원도 삼척항에 입항한 북한 목선 선원들. 이들은 112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 주민과 얘기를 나눴다. [뉴스1]

지난해 6월 강원도 삼척항에 입항한 북한 목선 선원들. 이들은 112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 주민과 얘기를 나눴다. [뉴스1]

정 장관은 합참의장 시절부터 경계태세의 강화를 강조했다. 장관이 되고 난 뒤 ‘경계태세 철저’를 입에 달고 다녔다. 오죽하면 국방부 내부에서 “정 장관의 호는 ‘경계’”라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지난해 북한 목선 삼척 입항 사건 이후 국방부와 합참을 닦달해 경계 인력을 늘리고 경계시스템을 개선했다. 그런데도 그의 재임 중 중대 경계 실패 사고가 3번이나 벌어졌다.
 
왜 그럴까. 경계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신적 경계태세의 문제라는 게 군 내부의 일치된 견해다. 정신적 경계태세는 흔히 ‘군기’라고 불린다. 첨단 장비를 갖췄다 하더라도 운용은 결국 사람이 한다. 수많은 감시 장비에서 보내는 화면 가운데 이상 징후를 잡아내는 것은 장병의 몫이다. 안일한 태도로 시간을 때우지 않도록 장병을 질책하고 격려하면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지휘부의 일이다. 지휘부가 제 일을 못 했기 때문에 군사분계선이 아무나 넘는 선이 돼 버렸다.
 
지난해 북한이 연달아 단거리 미사일을 쐈지만, 군엔 남북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익명을 요구하는 장성은 “현 정부에서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며 “북한 전체를 적으로 삼는 것은 나도 반대한다. 하지만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분명히 우리의 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북한 정권과 북한군도 적으로 부를 수 없다 보니 장병의 군기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혹시나 간첩이 아닌 일개 탈북민이 한국이 싫어 북한으로 되돌아가도록 놔둔 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지휘부는 생각을 고쳐야 할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대형 사고 1건이 일어나기 전 29번의 경미한 사과와 300번가량의 위험 요소가 일어난다. 안보라는 둑은 경계 실패라는 작은 금으로부터 무너진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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