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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안동, 여인 9명의 위태롭던 삶 지금과 똑 닮았어요

국립극단 70주년 기념 연극 '화전가'의 주인공 '김씨' 역을 맡은 배우 예수정. "70년 전 전쟁의 위험과 불안 속에서 국립극단이 창단, 동시대인 옆에 예술로 존재했다는 것이 기특하고 고맙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립극단 70주년 기념 연극 '화전가'의 주인공 '김씨' 역을 맡은 배우 예수정. "70년 전 전쟁의 위험과 불안 속에서 국립극단이 창단, 동시대인 옆에 예술로 존재했다는 것이 기특하고 고맙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예수정(65)은 “설렌다”고 했다. 6일 개막을 앞둔 연극 ‘화전가’를 이야기하면서다. 국립극단 창단 70주년 기념작인 ‘화전가’는 원래 지난 2월 공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공연 이틀 전에 취소되고 말았다. 지난달 28일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드레스 리허설 날 옷이 막 도착해서 입어보려는 순간, 공연이 미뤄졌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기억했다. 이후 공연 재개까지 반 년이 흘렀고, 새로 티켓 판매를 시작한 지난달 30일엔 국립극단 홈페이지가 한 때 마비됐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그날 오픈한 티켓 1차 판매분은 1시간 만에 매진됐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린 사람이 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60대에 꽃핀 42년차 배우 예수정
국립극단 70돌 기념작 ‘화전가’ 주역

배삼식 작가가 각본을 쓰고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연출을 하는 ‘화전가’는 70년 전인 1950년 4월 경북 안동을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의연하게 일상을 살아낸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신작이다. 환갑을 맞은 ‘김씨’와 세 딸, 두 며느리와 집안일 봐주는 할매 등 9명의 여인이 화전놀이를 준비하며 펼치는 수다 속에서 삶을 지탱하는 소소한 기억들을 찾아낸다.
 
연극 '화전가'의 콘셉트 사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영화 ‘해어화’, 창극 ‘심청가’ 등의 작품 의상을 담당한 한복디자이너 김영진이 의상디자인을 맡았다. '화전가' 공연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6일부터 23일까지 열린다. [사진 국립극단]

연극 '화전가'의 콘셉트 사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영화 ‘해어화’, 창극 ‘심청가’ 등의 작품 의상을 담당한 한복디자이너 김영진이 의상디자인을 맡았다. '화전가' 공연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6일부터 23일까지 열린다. [사진 국립극단]

주인공 ‘김씨’ 역의 예수정은 “‘화전가’의 배경과 현재의 시대 상황이 꼭 닮았다”고 짚었다. 코로나19라는 위험에 노출돼 아슬아슬 불안감에 시달리는 현실이 70년 전 전쟁 무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어느 개인도 비켜갈 수 없는 불안감ㆍ위기감이죠. 마치 재앙처럼 우리를 덮쳤어요.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화전가’ 때인 1950년을 보면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사랑을 했고 아가가 태어났어요. 위기 속에서 어떻게 그런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런 신비한 인생 이야기를 들여다봄으로써 진흙탕 속 같고 늪지 같은 현실 땅을 걸어나가는 발에 힘이 실리지 않을까요.”
 
그는 공연 장소인 서울 명동예술극장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회를 전했다. “갓난아기 때는 엄마 젖 먹으러 분장실을 드나들었고, 다섯살 무렵부터는 객석에 앉아 엄마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던 곳”이어서다. 그의 어머니는 드라마 ‘전원일기’의 할머니 역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 정애란(1927∼2005)이다. 어머니는 딸이 배우가 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셨다지만 독문학도였던 그는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극장은 시민을 계몽하는 공간’이라는 말에 ‘피싱’ 당해 연기 인생을 걷게 됐다”고 했다.

 
“‘계몽’이란 게 ‘깨어나게 하는 것’이거든요. 브레히트는 마치 ‘자, 봐. 우리가 이런 사회에 살고 있어. 우리 이렇게 살고 있는 거잖아. 잘 생각해봐’ 하는 것처럼 거리 두기를 강조하면서 ‘계몽’을 하게하는 작가이자 연출가였어요. 극장에서 관객만 깨어나는 건 아니에요. 배우도 시민이잖아요. 깨어있어야 된다는 걸 잊으면 무대에 못 서죠.”

 
배우 예수정.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예수정.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는 대학 재학 시절 주한독일문화원 소속 극회 ‘프라이에뷔네’를 찾아가 연기를 시작했고, 1979년 한태숙 연출의 연극 ‘고독이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데뷔했다. 올해로 연기 42년차. 하지만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40년 무명배우’를 자처했던 그는 영화 ‘부산행’(2016)에서 인길 할머니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데 이어 ‘신과 함께-죄와 벌’(2017)에선 패륜 자식마저 감싸는 모성애로 천만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드라마 ‘공항 가는 길’(2016)의 인간문화재 매듭장인,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2019)의 대기업 총수 역 등도 모두 깊이있는 연기로 소화해내 화제가 됐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69세’에서도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60대에 접어들며 전성기를 연 모양새다. 
 
“시대 덕이에요. 예전엔 나이 든 여배우들이 할머니ㆍ어머니ㆍ시어머니 같은 빤한 역을 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젠 나이ㆍ성별과 상관없이 한 인물의 독보적인 사유의 세계가 수용되는 사회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나이 든 여배우들이 맡을 캐릭터가 많아졌으니, 정말 행운이죠.”
 
연극ㆍ드라마ㆍ영화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그는 “연극은 배우와 관객 사이의 화학적인 교류가 일어나는 작업이고, 영화는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감동을 줄 수 있고, 드라마는 친근하고 살갑게 느껴져서 재미있다”고 말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연기 욕심을 내비친 그에게 작품 선택 기준을 물었다. 그는 “배우는 수동적으로 택함을 받아야 하는 존재여서, 하고 싶은 일을 골라서 하지 못한다. 하기 싫은 걸 안할 자유만 있다”면서 “문학성 있는 작품을 좋아하고, 사회성 있는 작품을 만나면 피가 저절로 뜨거워지고, 오락성 있는 작품은 어려워한다”고 대답했다. 또 “작품의 메시지에 동의하지 않을 땐 안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자신만의 원칙도 공개했다. 바로 “사소한 기쁨을 찾는 것”이다.  
“세상의 ‘악’을 볼 때마다 너무 힘들어요. 파르르 떨리면서 내 스스로 소멸돼가는 느낌까지 들고요.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악을 대항해 이길 힘은 없지만 악으로부터 도피할 수는 있다’는 말을 생각해요. 그리고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 나온 ‘희열이라는 열매를 맺는 상록의 나무’가 자라도록 사소한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악으로부터 시선을 돌려서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며 예술작품 속으로 숨는 거죠. 그런 행위들이 내가 하는 작업에 도움을 주는 것 같네요.”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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