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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분양광고 속 화려한 조감도의 허와 실

기자
손웅익 사진 손웅익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 이야기(39)

1980년대 후반에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는 프로그램의 하나인 오토캐드가 국내에 보급되면서 건축설계 분야에 혁명이 시작되었다. 30년 전 일이다. 그때까지는 트레이싱지라는 반투명 용지에 연필이나 샤프 펜으로 도면을 그렸다. 도면을 그리다 보면 손과 팔에 연필가루가 묻어 검게 되고 바닥에는 지우개가루가 널렸다. 도면을 몇 번 고치다 보면 트레이싱지가 뚫어지고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지기도 했다.
 
도면이 완성되면 트레이싱지를 감광용지 위에 겹쳐서 청사진기에 밀어 넣으면 푸른색의 청사진도면이 프린트되어 나왔다. 납품 때가 되면 납품도면 부 수 만큼 도면을 찍어내야 하니 경력이 짧은 직원들은 밤새 청사진기에 도면을 반복해서 밀어 넣어야 했다. 도면을 그릴 때도 이와 같은 반복 작업이 가장 비효율적이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설계분야에서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는 것이 일반화된 후에도 조감도나 투시도를 그리는 그래픽회사는 한동안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렸다. 대체로 그래픽 회사 운영자나 직원들은 미대 출신이 많았다. [사진 pxhere]

설계분야에서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는 것이 일반화된 후에도 조감도나 투시도를 그리는 그래픽회사는 한동안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렸다. 대체로 그래픽 회사 운영자나 직원들은 미대 출신이 많았다. [사진 pxhere]

 
예를 들면 건물 외벽 마감이 벽돌인 경우는 벽돌 모양을 다 그릴 수가 없다. 그래서 일부만 표현하고 글씨로 재료표기를 했다. 그에 반해 컴퓨터로 도면을 그릴 경우 이러한 표현은 아주 쉽고 단순한 작업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지우고 복사하고 반복되는 작업도 쉽고 자유롭다.
 
도면을 완성하고 프린트기로 보내면 자동으로 인쇄해준다. 인쇄물을 보내지 않아도 될 경우 웹하드나 이메일로 날려버리면 된다. 건축설계에 있어 가히 혁명적인 변화다. 어느덧 그 혁명적인 변화가 일반화되어서 수작업으로 종이에 도면을 그린 이야기는 건축설계의 전설이 되었다.
 
설계분야에서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는 것이 일반화된 후에도 조감도나 투시도를 그리는 그래픽회사는 한동안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렸다. 대체로 그래픽 회사 운영자나 직원들은 미대 출신이 많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컴퓨터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컴퓨터로 그리는 그림을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그래픽 프로그램도 한계가 있었고 작업자의 숙련도도 떨어져서 결과물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수작업은 예술적인 멋이라도 있었지만, 컴퓨터로 그린 그래픽은 작품성도 떨어졌다. 그러나 그래픽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과 프로그램의 발전으로 이제는 그래픽인지 실제 건물 사진을 찍어 놓은 건 지 구별이 가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오히려 그래픽이 실제 사진보다 더 멋이 있고 환상적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숨어있다. 건축 그래픽은 완성된 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래픽은 사실에 충실하기보다는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다 못해 왜곡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분양광고에 실린 조감도 하단에는 ‘상기 조감도는 실물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글씨로 써두었다. 물론 그래픽이 실물과 동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장된 그래픽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다. 이 경우 그래픽은 소비자를 현혹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상설계공모가 일반화된 요즘 그래픽의 수준 차이로 인해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그래픽의 비중은 더 높아졌다. 여기서 그래픽은 심사위원들을 현혹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현상공모에 제출된 수많은 설계도면과 제안서를 심사위원들이 한정된 시간 안에 상세하게 검토하고 비교하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현상공모 참가자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유로 가장 정확한 건축형태를 볼 수 있는 건축 모형은 제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한 조감도나 투시도는 각종 평가나 심사에서 그 비중이 대단히 클 수밖에 없다.
 
대부분 현상공모 당선작의 그래픽과 완공 후 실물을 비교해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당선작이 현실화되는 설계와 시공과정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겠지만 하나같이 디자인이 후퇴하고 허접해진다. [사진 pixabay]

대부분 현상공모 당선작의 그래픽과 완공 후 실물을 비교해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당선작이 현실화되는 설계와 시공과정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겠지만 하나같이 디자인이 후퇴하고 허접해진다. [사진 pixabay]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선정된 당선작의 최종 결과물이다. 대부분의 현상공모 당선작의 그래픽과 완공 후 실물을 비교해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당선작이 현실화되는 설계와 시공과정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겠지만 하나같이 당초 그래픽 이미지에서 디자인이 후퇴하고 허접해진다. 이러한 결과는 당초 그래픽이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었거나 허구를 보여준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건축설계에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모든 도면이 정확해졌다. 수작업으로 도면을 그릴 때는 애매하거나 불확실한 표현도 많았고 수치가 잘못 표기되어도 찾아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컴퓨터로 그리는 도면은 표현이 명확해졌고 자동으로 수치가 기록되므로 실수할 일도 없다. 그에 반해 컴퓨터 그래픽의 진화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다. 현란한 시각적 효과는 자칫 건축설계의 단점을 감추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맨 얼굴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포토샵을 심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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