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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훈] 금과 달러가 걸어온 길②

[출처: 셔터스톡]

 

[한대훈의 투(자 이야)기] 금과 달러가 걸어온 길② 19세기는 그야말로 영국의 최전성기였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1차 산업혁명과 증기기관, 그를 바탕으로 축적한 경제적 부와 금은 그들을 세계 최강으로 견인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국의 총경제산출물의 10년간 연평균 성장률(CAGR)을 산출해 보면, 17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큰 변화가 없다가 18세기 후반 이후 본격적인 상승세가 시작돼 19세기 내내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몰락

전세계 부(wealth)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세기 중반에 약 60%까지 도달한다. 당시 미국ㆍ프랑스ㆍ독일은 모두 20%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격차였다. 그만큼 영국의 세계 경제에서 위상은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3국이 1ㆍ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미국의 수치가 60%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영국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 가능하다.

 

하지만 영국은 20세기에 진입하면서 입지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원인은 전쟁이었고, 그 시작은 바로 제 1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유럽 각국은 막대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영국의 군사비 지출은 1913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4% 밖에 되지 않았지만, 1914년 본격적으로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후 1916~17년에서는 군사비 지출 비중이 무려 38%까지 증대됐다고 한다. 참고로 독일 역시 1917년경에는 GDP 대비 군사비 지출비중이 53%까지 치솟았다. 1차 세계대전은 연합국, 즉 영국의 승리로 마무리가 됐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단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독일에 물렸지만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면서 재정적 문제 해결이 원활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물렸던 그 엄청난 규모의 전쟁배상금의 문제 때문에 황폐해진 독일에서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등장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이 1939년에 발발하게 된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도 다시 한 번 연합국의 중심축에 서게 되고, 이때 불가피하게 막대한 재정타격을 재차 입게 되면서 서서히 세계 중심에서 물러서게 된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은 영국에게 있어 ‘상처뿐인 영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금의 유출이 시작된 영국

당연히 이런 심각한 경기침체는 영국에 큰 타격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악재는 단연 금(gold)의 유출이었다. 당시 영국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만 해도 영국은 유럽 최대 금 보유량을 바탕으로 금본위제를 공고하게 유지하면서 파운드를 세계적인 기축통화로 등극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이 결정적이었다. 이로 인해 심각한 자금난을 겪은 영국으로서는 당연히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축통화인 파운드를 통해 부채를 갚아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영국의 재정 상황을 파악한 각국은 파운드를 금으로 빠르게 교환해 나갔다. 이것만으로도 영국의 금 보유고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금 보유량이 줄어들자 불안감을 느낀 은행의 예금주들 또한 빠른 속도를 파운드를 매각하고 금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즉, 영국은 파운드화를 발행할 수 있는 여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그들은 1929년 대공황까지 경험하게 되자, 심각한 경기침체 속 파운드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된다. 더 이상 금에 기반하여 파운드를 발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실 이 때 영국만 금본위제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똑같은 재정위기를 겪었던 유럽의 다른 국가들 또한 빠르게 금본위제를 포기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국가들이 아니었다. 영국이 제일 중요했다. 기축통화국으로서 영국과 파운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은 화폐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로서 남게 되었으니 말이다.

 

#미국의 등장

바로 이 시점에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 새로운 패권국가 미국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의 경제력을 급격히 상승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사실상 참전은 하지 않은 채 연합국으로 군수물자를 공급하며 부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조사된 바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채무국들의 해외채권 중 미국 비중이 무려 58%에 달했다고 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유럽의 대다수 전쟁국가들은 미국에 빚을 내고 물자든, 현금이든 받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지만 바로 이러한 상황 탓에 미국의 경제력은 손쉽게 영국을 넘어서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 인플레이션을 통해 유럽 내에서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가 지속적으로 의문시 되면서 결국 신뢰할 만한 실물 내지는 경제력을 보유한 국가, 그리고 그들의 화폐는 무엇이 될 것이냐는 의문이 근본적으로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미국과 영국 양 국간의 금 보유고에 있어서 급격한 차이가 이 때 발생하게 된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경제성장은 19세기 후반부터 이미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에 양 국가의 금 보유고는 20세기에 진입하면서 이미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세계 1차 대전을 전후로 그 격차는 좁혀질 수 없는 수준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1940년대 이후로는 8~10배 가까운 보유고의 차이가 유지되었을 정도다. 

 

당시는 금 보유에 따라 자국 화폐의 발행이 결정되는 금본위제도를 거의 모든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었다. 미국이 그만큼 많은 금을 보유했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통화인 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많은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달러를 신뢰하고 가져가고자 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기축통화의 입지는 이미 이 때부터 영국의 파운드로부터 미국의 달러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정적으로 전 세계 기축통화가 파운드로부터 이탈해 달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사태는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의 결성을 통해 이뤄지게 된다. 이미 미국은 이 당시 전 세계의 금을 쓸어 담다시피 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통해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금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역으로 그 금들은 대다수 미국으로 향하면서 미국 달러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는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World gold council의 자료에 따르면, 1950년 미국은 전 세계 금의 65%(1945년 63.0%)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미국은 전 세계 주요 44개국의 지도자를 미국 뉴햄프셔의 브레튼우즈로 끌어 모은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당시 막대한 금을 보유한 그들의 국제적 힘이 어느 정도로 강력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이 자리에서 그들은 금환본위제라는 새로운 화폐시대를 제안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모두가 원하는 통화인 달러를 받아가기 위해서는 금을 가져와야만 한다는 것이다. 35온스 당 1달러로 가치는 고정. 이제는 어느 나라의 중앙은행도 화폐와 금의 비율을 임의로 조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파운드가 아닌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시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한대훈 SK증권 애널리스트, 『넥스트 파이낸스』 저자

※ 3편에서는 금본위제의 몰락과 지폐본위제(미국 달러) 시대의 시작, 4편에서는 그리고 부상하기 시작한 디지털화폐로 이야기를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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