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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칼럼니스트의 눈] 이념 떠난 차세대 정치로 세대교체 절실

청년정치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운데), 윤소하 전 원내대표(심대표 왼쪽)와 21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들이 지난 3월 비례대표 후보 선출보고대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의당은 지역구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심 대표 외에 5석의 비례대표를 얻는데 그쳤다. ‘국회를 청년하다’는 구호가 무색하지 않으려면 좀더 확실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운데), 윤소하 전 원내대표(심대표 왼쪽)와 21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들이 지난 3월 비례대표 후보 선출보고대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정의당은 지역구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심 대표 외에 5석의 비례대표를 얻는데 그쳤다. ‘국회를 청년하다’는 구호가 무색하지 않으려면 좀더 확실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 선택은 우리네 정치 현실에 몇 가지 화두를 던졌다. 그중 가장 첨예한 것은 젠더 문제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젠더 문제를 대하는 위선적 시각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력형 성희롱에 대해 목소리만 컸지, 속마음으로는 여전히 관대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누구 편이냐만 따지는 선택 편향
권력형 성희롱에 오히려 관대
기득권 위해 신념 저버리는 정치
이념 초월한 젊은 정치인 키워야

과거에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극단적 선택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음에도,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의심하는 듯한 발언으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같은 여성들도 그랬다. 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걸까.
 
결국 분노와 두둔을 가름하는 그들의 판단 기준은 권력형 성희롱이 아니라, 누가 성희롱을 했느냐였던 거였다. 그가 우리 편이냐 상대편이냐의 문제였다. 정작 권력형 성희롱에 대해서는 ‘옳지는 않지만 눈감아줄 수도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칭 진보라는 사람들이 ‘심기 보좌’라는 군사독재 시대의 용어를 서슴없이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심기 보좌가 비서 업무 중 하나”라는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내놓으면서 말이다.
 
이같은 ‘선택 편향(selection bias)’은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유독 많이 나타난다. 그런 정치적 선택 편향이 특히나 두드러졌던 게 박 전 시장에 대한 정의당의 태도였다.
 
박 전 시장의 장례 절차에 대한 논란 속에서 빈소가 차려진 뒤, 정의당의 류호정·장혜영 두 초선의원은 “조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것은 박 전 시장을 비난해서라기보다는 박 전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정의당 지도부의 태도였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며칠 뒤 “류호정·장혜영 두 의원의 메시지가 유족분들과 시민의 추모 감정에 상처를 드렸다면 대표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장례 기간에 추모 뜻을 표하는 것과 피해 고소인에 대한 연대 의사를 밝히는 일이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와 정의당의 입장”이라면서도 그랬다.
 
류 의원은 앞서 피해자를 향해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당 혁신위원장인 장 의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애도할 수는 없다”고 밝혔었다. 두 의원의 말이 틀리지 않았고, 그것이 자신과 당의 입장과 배치되는 게 아니라면 심 대표는 사과를 해서는 안됐다. 대신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두 의원의 메시지는 박 전 시장을 추모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나는 조문을 하겠지만 그것이 박 전 시장을 두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면서 “경찰은 엄중한 책임감으로 피의자인 고 박 전 시장에게 피해자의 고소 사실이 유출되었다는 의혹을 비롯해 이번 사건에 관한 모든 진상을 낱낱이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어야 한다. 그런 말이 장 의원의 입을 통해서 나오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심 대표가 두 의원의 조문 거부 발언에 공식 사과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박 전 시장을 추모하는 일부 당원들의 항의성 탈당 행렬에 놀란 결과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직 정의 실현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이제 막 정치의 첫걸음을 뗀 두 의원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기득권을 보호할 수 있다면 가끔 신념은 저버릴 수 있다는, 그것이 곧 정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과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정의당은 이미 총선 전 정의당에 유리한 선거법 개정을 위해 조국 사태에 눈을 감아버린 (결국 원하는 결과도 얻지 못했지만) 전력도 있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 정치 현실에 던져진 또 다른 화두 하나를 만난다. 그것은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대 정의당은 ‘노심초사’로 불리었다. 노회찬·심상정 의원과 초선의원 4명으로 구성됐다는 얘기였다. 21대 그것은 ‘심도오초(沈導五初)’가 됐다. 심상정 한 명이 초선의원 5명을 이끄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의원 수는 6명으로 같더라도 당의 구조는 더욱 비정상적이 돼버렸다. 심 대표의 리더십이 시대를 쫓아가지 못해도 이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없는 까닭이다.
 
노회찬·심상정의 스타성에 기대는 정당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진보정치를 뿌리내릴 수 있는 정당으로 발돋움하려면 차세대 정치인들이 부상해야 한다. 과거처럼 ‘진보’ 아닌 ‘진부’한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의 행복한 삶에 관심을 갖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자주니 평등이니 하는 이념에서 자유로운 젊은 정치인들을 서둘러 키워야 하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의 말처럼 이데올로기는 “한국사회에서 도덕적 우월감을 만끽하기 위한 인정 투쟁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던” 까닭이다.
 
심 대표가 내년 7월까지 임기를 채우지 않고 조기 퇴진하기로 선언한 만큼 다음달 열릴 당대회에서 그런 인물이 당 대표로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시대 요구에 부응하려면 젊은 세대에 양보해야
젊은 정치의 필요성은 집권당에 더욱 절실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다행스런 일이다. 그는 시대 변화에 뒤떨어지는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실언들을 잇달아 해왔다. “천박한 서울” “초라한 부산”에 앞서서도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 “정치권에 정신장애인이 많다”는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물론 그가 서울이나 부산을 폄훼하고 장애인을 비하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과 부산을 사랑하고, 장애인이 안타까워 한 말이었을 터다. 하지만 그 정도 정치 연륜이면 말을 가려 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 없이 말했다가 문제가 되면 언론 탓으로 돌리는 건 참으로 구태의연하다.
 
더욱 심각한 건 그의 평소 태도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빈소에서 보인 행동 역시 그것의 일부일 뿐이다. 그는 박 전 시장 고소에 대한 당의 대응을 묻는 기자에게 “××자식”이라고 욕을 했다. 빈소에서의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자가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빈소에 간 것은 아니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게 언론의 임무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질문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만약 그런 질문을 안 했다면 그 기자는 회사에 돌아와 선배나 부장한테 질책을 당했을 것이다. 기자는 프로답게 질문했는데 이 대표가 아마추어처럼 버럭한 것이다. 평소의 권위주의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 권위주의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까지 미친다. 민주당의 최고위원 후보 4명이 지난달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 대표를 평가한 적이 있다. 이를 들어보면 21세기의 공당 대표가 맞는지 놀랍기만 하다. “아무 때나 버럭하고, 금방 끝나는 게 아니라 여파가 있다.” “이 대표에게 진솔하게 말하기 어렵고, 말하고 나서도 한참 혼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가 이미 다 해본 길이어서 새로운 상상력이나 도전에 대해 안된다고 생각하는 면이 강해 답답하다.” “특유의 까칠함과 지나친 자신감이 때론 화를 부르지 않나 하는데 조금 자제하면 좋을 듯하다.”
 
중진들도 이 정도인데 경험 없는 초선의원들이 어떻게 자유롭게 뜻을 펼칠 수 있겠나. 게다가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진 그들이 중진이 되면 또다시 새로운 초선들을 또다시 주눅 들게 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악순환이 거듭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 민주당 의원들이 국민의 대표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고 정권의 거수기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새로운 조류와 시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을 만들려면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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