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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허울 쓴 독재 배격해야”

윤석열

윤석열

한 달 만에 침묵을 깬 윤석열(사진) 검찰총장의 첫마디는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통해 실현한다”는 것이었다. 3일 오후 4시30분 대검찰청에서 열린 신임검사 신고식에서다. 법조계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발동을 비판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 정권 핵심을 겨냥한 수사를 하다 여권으로부터 사실상의 사퇴 압박을 받은 윤 총장이 공식 석상에서 작심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윤 총장은 앞서 지난달 8일 추 장관의 수사지휘에 대해 5줄짜리 입장을 내놨지만 이후 줄곧 침묵해 왔다.
 

윤석열, 신임검사 앞 작심 발언
“권력형 비리에 당당하게 맞서라
민주주의는 법의 지배 통해 실현”
법조계 “여당·추미애 비판한 것”
여당 “검사의 절제·균형 말했어야”

윤 총장이 이날 ‘법의 지배’를 언급한 것은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으로 검찰 독립성이 침해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찰 독립성에 대한 보장 없이는 법의 지배가 실현되기 어려운데, 민주적 통제라는 이름으로 정권이 검찰에 개입하면서 결과적으로 민주주의가 망가지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윤 총장은 또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총선 압승 이후 다수결의 힘을 과시하고 있는 거대 여당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윤 총장은 추 장관이 법무부와 검찰을 사실상 상하관계로 규정한 데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윤 총장은 “선배들의 지도와 검찰의 결재 시스템은 명령과 복종이 아니라 설득과 소통의 과정”이라며 “검사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설득”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달 8일 추 장관이 작성했다는 법무부 입장문의 초안에서 윤 총장을 ‘수명자’로 지칭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의 페이스북에 공개된 초안에는 “수명자는 따를 의무가 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지휘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채널A 사건 수사도 마찬가지다. 대검 형사과장들은 물론 중앙지검 수사팀 검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성윤 중앙지검장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야당 “사람에 충성 않는 칼잡이 윤석열의 귀환”
 
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 참석한 추미애 장관(왼쪽 사진)과 같은 날 차를 타고 대검찰청을 나서는 윤석열 총장. [연합뉴스]

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 참석한 추미애 장관(왼쪽 사진)과 같은 날 차를 타고 대검찰청을 나서는 윤석열 총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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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총장이 “방어권 보장과 구속의 절제가 인권 중심 수사의 요체”라고 밝힌 것 또한 이 전 기자를 무리하게 구속한 중앙지검 수사팀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윤 총장은 “구속이 곧 범죄에 대한 처벌이자 수사의 성과라는 잘못된 인식을 걷어내야 하고, 검찰이 강제수사라는 무기를 이용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말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추 장관·윤 총장을 향해 “‘인권 수사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대로 협력하고 과감한 개혁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청했다.
 
윤 총장은 “권력형 비리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도 했다. 중앙지검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피해자 면담 회피 의혹’과 관련해서다. 그는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법 집행 권한을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발언은 대검 참모들의 첨삭 없이 윤 총장이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윤 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 검사 육탄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 피소 유출 의혹까지 검찰을 둘러싼 현안이 산적한 상황이지만 지난 한 달간 침묵했다.
 
하지만 윤 총장은 더 이상 현안 언급을 회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권고안을 제시하자 일선 검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무부가 관철 의지를 드러낸 것과 무관치 않다. 곧 단행될 검찰 인사에서 윤 총장 측근 학살 인사가 반복될 가능성도 높다. 검찰 일각에서는 “더욱 강한 비판을 기대했는데 윤 총장이 수위를 조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미래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정권의 충견이 아닌 국민의 검찰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칼잡이 윤석열의 귀환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와 세다. 결단이 선 듯”이라고 반응했다.
 
반면에 경찰 출신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사 대상이) 청와대라고 해서 과잉수사를 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검사의 절제와 균형을 언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유진·손국희·김홍범 기자 jung.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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