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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원 중앙일보 부동산선임기자

"되레 전세난민 쏟아질판"···서민 위한다는 임대차법의 역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시행 첫 날인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신반포에 위치한 한 부동산중개업소의 매물 정보란이 텅 비어 있다. 뉴스1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시행 첫 날인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신반포에 위치한 한 부동산중개업소의 매물 정보란이 텅 비어 있다. 뉴스1

#1.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아파트 전세를 사는 박모(48)씨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지난달 30일 날벼락을 맞았다. 주인이 계약 기간이 끝나는 12월에 직접 들어와 살겠다며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안장원의 부동산노트]
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시행
매매 규제와 맞물리며 복합 부작용
수요 쏠림 심해져 양극화도 부추겨

박씨는 2018년 12월 자녀를 이곳으로 전학시키며 강북에 가진 집은 전세를 주고 왔다.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소식에 2년은 더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박씨는 “전세보증금을 전월세 상한제에서 정한 5% 한도에 상관없이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전세 씨가 말랐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 지난달 13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 아파트 매매계약을 체결한 매수인 김모(43)씨와 매도인 최모(53)씨는 계약을 깨야 할 상황에 부닥쳤다. 최씨는 다음 달 말 전세계약 만기에 맞춰 이 아파트를 팔려고 했다. 다주택자인 그는 종합부동산세 등이 대폭 강화된 7·10 대책에 따른 보유세 부담 때문에 주택 수를 줄일 생각이었다. 김씨는 이날 잔금을 치르고 바로 이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최씨 아파트에 살던 세입자가 만기 후 나가겠다던 생각을 바꿔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2년을 더 살겠다고 했다. 김씨는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출·퇴근하려고 아파트를 사려고 했던 것"이라며 "전세를 끼고 사뒀다가 2년 뒤 들어가는 것은 너무 늦다”고 말했다.
 
전광석화 같은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시행, 지난해 12·16 대책과 지난 6월 6·17대책, 지난달 7·10 대책에서 밝힌 초강도 세제·재건축 규제, 지난달 29일부터 시행된 도심 분양가상한제…. 임대·매매·분양을 막론하고 유례없이 전방위에서 밀어붙이는 규제로 주택시장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 
 

전세 내몰림

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으로 같은 동, 같은 층이어도 옆집보다 전세보증금이 두배로 비쌀 수 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84㎡(이하 전용면적)의 전세보증금은 입주를 시작한 2018년 11월 5억원까지 내려갔다. 이 집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면 주인이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전세 보증금은 5억2500만원(5% 상한 적용)이다. 올해 들어 거래된 같은 주택형의 전세보증금 최고액은 10억3000만원이었다.
 
2년 새 오른 전셋값을 적용하느냐, 상한제(5%) 대상이 되느냐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다. 전세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보증금이 뚝 떨어졌다가 올해 입주 2년을 맞는 헬리오시티 같은 단지에서 특히 격차가 심하다. 
 
시세에 턱없이 못 미치는 보증금으로 재계약해야 하는 주인은 계약이 끝나는 2년 뒤 보증금을 시세대로 받기 위해 세입자를 바꿀 가능성이 크다. 상한제는 임차인이 바뀌면 적용하지 않는다. 
1~2년 전 저렴하게 계약한 세입자는 살던 전셋집에서 2022~23년 대거 나와야 할 수 있다. 계속 살려면 주인이 요구하는 금액으로 보증금을 올려줘야 한다. 인상 폭이 5%가 넘더라도 세입자가 동의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은 집주인과 세입자 간 계약이기 때문이다. 주인은 2년간 올리지 못한 금액뿐 아니라, 그 뒤 4년간 못 올릴 금액까지 반영해 전셋값을 대폭 올릴 가능성이 있다.  
 
자료: 서울시

자료: 서울시

상한제·갱신청구권과 별개로 세입자가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은 집주인의 실거주 때문이다.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수 없다. 전세를 끼고 갭 투자한 1주택자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 1주택자도 내년 이후 양도할 때 양도세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많이 받으려면 거주를 해야 한다. 보유와 거주 기간이 길수록 특별공제 혜택(최고 10년 이상 보유 및 거주 80%)이 크기 때문에 갭 투자자의 잇따른 입주가 예상된다. 
 
재건축 추진 아파트 임대인은 새 아파트 분양 자격을 받기 위해 전세계약 만기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6·17대책에서 조합원 분양 자격에 2년 거주 요건을 추가하기로 했다.
 
역방향의 부작용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전셋집을 비워야 하는 세입자 일부는 매매로 돌아서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양가상한제는 전세난을 더 부추긴다. 상한제 적용 아파트의 당첨자는 최대 5년간 거주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서 5년간 전세 매물이 나오지 않는다. 입주가 늘어도 전세물량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강남 ‘전세 난민’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전세 매물 잠김과 전셋집 품귀, 전셋값 급등은 서울 강남에서 두드러질 전망이다. 자기 집에서 사는 자가점유율이 낮고 전·월세 집이 많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서울시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자가 점유율은 38.6%로 서울 전체 42.8%보다 낮다. 아파트 재고 대비 2018~19년 전·월세 확정일자 신고 물량을 봐도 강남 3구가 26%로 서울 평균 20.5%보다 훨씬 높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셋집 빼기가 연쇄적으로 일어나 세입자가 주거 인기 지역에서 외곽으로 밀려나는 ‘전세 젠트리피케이션’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가 ‘금세’가 되면서 새로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신혼부부의 전세난이 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강남에서 임대로 살며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도 어려워졌다. 
 

안전한 전셋집으로는 주인이 지방에 사는 집이 주목받을 전망이다. 지방에서 원정 갭 투자한 집들이다. 주인이 들어와 살기 힘들고 세입자를 바꾸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주택소유 통계를 보면 강남 3구 주택 중 서울 이외 다른 시·도 외지인 소유가 18.3%다.
 

매물 부족 가중

앞으로 주택 매매 수요는 무주택자나 갈아타려는 1주택자 위주로 재편될 전망이다. 취득세·양도세·종부세 중과에 막혀 다주택자가 추가로 집을 살 유인은 적다. 시세차익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수한 집에 실거주하려면 임대차 계약기간 4년이 끝나는 물량을 잘 찾아야 한다. 임대차계약이 끝나는 집을 사서 들어갈 기회가 2년 주기에서 4년 주기로 길어지는 셈이다. 매수하기 적당한 매물이 그만큼 줄어든다. 
 
임대차 계약기간 2년만 지난 집을 사기는 쉽지 않다. 대개 매매대금 잔금을 치르는 날짜를 계약만료일과 맞추는데, 세입자가 그 전에 갱신 청구권을 쓰면 집을 사고도 들어갈 수가 없다. 
 
이럴 경우 매도인의 동의를 받아 잔금 일보다 앞당겨 소유권 이전 등기 신청을 하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다. 취득일 기준이 잔금 지급일과 등기 신청일 중 빠른 날이다. 이제까지는 잔금 청산으로 소유권이 넘어오기 때문에 소유권 이전 등기를 서두르지 않았다.
자료: 한국감정원

자료: 한국감정원

매도인도 4년 주기에 맞춰 임대차 계약기간이 끝나는 때에 적당한 매수인을 만나야 집을 팔 수 있다. 결국 매수인과 매도인 모두 매매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이 때문에 미리 선점해 두는 매매 예약이 늘어날 수 있다. 
 
다주택자가 임대차계약기간에 신경 쓸 필요 없는 증여로 돌아설 유인은 더 커졌다. 이미 7·10대책 이후 증여가 급증해 역대 최고 수준이다. 언제든 집을 비워 팔 수 있게 자녀나 친·인척에게 임대할 수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전세와 매매의 순환이 끊겨 인기 지역 매매·전셋값은 더 오르며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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