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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소설은 누가 쓰시나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소설가협회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 그는 아들의 휴가 미복귀와 관련한 야당 의원의 의혹 제기에 “소설 쓰시네”라고 냉소했다. 작가 스티븐 킹은 소설 쓰기의 막막함과 외로움을 ‘욕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일’에 비유했다. 스토리와 플롯마저 제대로 못 갖춘 가설항담(街說巷談)을 소설이라 칭하다니, 창작의 고통으로 머리를 감싸는 이 땅의 소설가들을 모독한 언사다. 말이 난 김에 하는 말이지만, 추 장관의 타박에 야당이 발끈할 것만도 아니다. 다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럴듯한 추리소설 수준의 의혹 제기는 됐어야 국민의 흥미를 끌었을 것이다. 수준 미달 작품에 발끈한 추 장관의 반응은 그래서 더 뜨악했다.
 

야당의 아들 의혹 제기에는 발끈
‘검언 유착’은 프레임 짜놓고 수사
검사 활극 가미되면서 막장 전락

소설은 허구로 이루어져 있지만 개연성과 설득력이 없으면 소설이라 할 수 없다. 조국 수사에 반대했던 친여 성향의 검사장이 추 장관 아들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동부지검장으로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법무부 차관으로 영전했다. 더구나 해당 수사는 고발 6개월이 넘도록 지지부진하다. 이런 상황이 혹자에게는 ‘소설’의 개연성으로 충분할 것이다. 개연성에 설득력까지 갖추면 작품이 될 텐데, 지금 야당 실력으로는 솔직히 기대난망이다.
 
정작 소설 쓰기의 주인공은 추 장관 본인이 아닌가 싶다. 아들에 대한 의혹 제기에 그는 “엄마가 단지 국무위원이 됐다는 이유로 만신창이가 되는 데 대해 아이한테 미안하다. 아이가 눈물을 흘린다”고 말했다. 엉성하긴 했지만 그래도 결말이 궁금한 추리소설을 감동적(?)인 가족소설로 바꿔 놓았다. 이미 ‘명(命)’이라는 한 음절 단어로 국민에게 왕조시대 경험을 선사했던 추 장관 아니던가. 그에게 이런 정도의 개작(改作)은 일도 아닐 것이다.
 
추 장관이 쓰는 소설의 압권은 ‘검언 유착’ 수사다. 소설은 한동훈 검사장-이동재 전 기자 간 녹취록에 나오는 숱한 말 중 “그건 해볼 만하지” “한 건 걸리면 되지”라는 덕담 수준의 두 마디를 모티브로 삼았다. “관심 없다” 같은 반대 뉘앙스의 말들은 작품의 프레임 밖으로 밀어냈다. 모순되는 단서의 취사선택이 소설의 작법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와 -(부정)를 곱하면 -(부정)가 된다는 논리학의 기본과는 거리가 멀다. 소설은 검사 활극이 가미되면서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뎅기열 사진’이라는 조롱까지 부른 부장검사의 병실 사진까지 등장하면서 막장 풍이 되긴 했지만.
 
이 작품이 과연 다큐로 이어질지, 소설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사기 등 전과 5범의 제보로 시작돼 수사심의위원회의 중단 권고까지 받은 작품이 제대로 매조지될지 의심스럽다. 그렇게 맺은 결말이 얼마나 설득력 있을지는 더 의문이다. 작품을 완성하기 전, 지금 여권으로부터 ‘의인’ 소리까지 들었던 김대업의 ‘병풍(兵風) 소설’ 끝을 참고할 일이다.
 
따지고 보면 정권 3년 내내 소설 같은 반전이 펼쳐졌다. 입만 열면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자식에게는 아무 부끄럼 없이 아빠·엄마 찬스를 쓸 줄 누가 알았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인권 변호사 출신 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스스로 비극을 선택할 줄 상상이나 했는가. 일제의 역사적 과오를 매섭게 몰아치던 시민단체 대표가 위안부 할머니를 이용한 건 또 어떤가. 20번이 넘는 집값 대책에도 소용이 없자 갑자기 전임 정부를 탓하는 것도 상상을 절하는 새 소설 기법이다. 진짜 소설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권력이 쓰는 허황한 소설이 아니었다면 현실을 깨달은 국민이 알아서 각자도생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소설가 이병주는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지금은 달빛에 물들여진 현실이 온통 소설이 될 기세다. 엉터리 소설은 나중에 다시 쓰겠다는 ‘작가’들이 반드시 나타난다. 50년 집권 운운하지만, 권력이 영원할 순 없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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