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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의 시선] 거여 독주…문 대통령의 협치, 신기루가 되다

신용호 논설위원

신용호 논설위원

가물가물하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일정을 혹시 기억하는지. 당연한 현충원 참배가 먼저였지만 대통령 의지대로 처음 간 곳은 여의도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 당사였다. 거기서 당시 정우택 원내대표를 만나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생각하겠다”고 했다. 협치가 간절했던 대통령의 적절한 발언이자, 탁월한 동선이었다. 그때 국회의장이었던 정세균은 이를 “사이다 행보”라 했다. 하지만 임기 초 협치를 향한 밀월은 정부 출범 딱 37일 만에 물 건너간다. 야당이 반대한 강경화 카드를 밀어붙이면서였다. 문 대통령은 협치를 원하면서도 강경화 카드를 놓지 않았다. 정면 돌파식 인사를 택하면서 문 대통령의 협치는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정면 돌파 인사가 매번 협치 막아
양보없는 제안 야당 관심 못 끌어
후보자 포기 각오까지 가질 필요

임기 2년 차인 2018년 11월,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만들었다. “우리 정치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협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꺼낸 회심의 협치 카드였다. 그것도 일주일 만에 무산된다. 이번에도 야당이 인사 문제로 태클을 걸었고, 문 대통령이 또 양보를 안 했다. 야당이 반대한 김수현(청와대 정책실장)과 청문 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조명래(환경장관) 인선을 강행했다.
 
문 대통령의 협치가 내내 실패한 건 포기를 모르는 인사의 영향이 컸다. 조국 전 장관을 비롯해 23명에 달하는 장관급 인사들이 청문 보고서 채택 실패에도 번번이 임명장을 받았다. 벌써 박근혜(10명)·이명박(17명) 정부 때보다 많다. 유난히 인사 문제에 대해선 고집이 셌다. 그럴수록 협치는 요원해졌다. 보고서 채택이 안 된 유은혜(교육 부총리) 임명을 강행하면선 “청문회 때 시달린 분이 일을 더 잘한다”고 해 야당의 화를 돋운 적도 있다.
 
문 대통령이 올 들어 다시 협치를 얘기했다. 신년기자회견에서 “협치야말로 우리 정치에서 가장 큰 과제”라며 운을 띄웠고 지난 16일 국회 개원 연설에선 “21대 국회는 반드시 새로운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재개를 언급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일찌감치 협치는 공허할 거란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여권 핵심 인사와 얘기를 나누다 스치듯 들은 얘기가 확신을 줘서다. 당시 청문회를 앞둔 이인영(통일장관 후보자) 얘기가 나왔다. 야당 반발이 예상보다 만만치 않길래 “저러다 어떻게 되는 건 아닌지”라고 걱정했더니 그 인사는 “그냥 그건 어떻게 되든 임명한다”고 잘라 말했다. 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임명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확고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인사 때문에 협치가 번번이 막혔는데 대통령 생각은 변한 게 없다는 거 아닌가. 그 순간 강경화 때, 김수현 때가 다시 떠올랐다. 안 변했으니 안되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야당의 반대에도 이인영과 함께 북한과의 이면 합의와 학력 위조 논란이 제기된 박지원(국정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여전히 문 대통령에게 협치를 위해 ‘일을 더 잘할 후보자’를 포기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싶었다.  
 
정말 대통령은 인사 탓에 협치가 망가졌다는 생각을 안 해봤을까. 협치를 원한다면 야당을 움직일 파격적 방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요즘 176석 거대 여당의 독선과 독주가 볼만하다. 국회는 토론도 심의도 없는 민주당 세상이다. 정의당의 지적대로 상임위는 당정협의회고 본회의는 민주당 의원총회장이다. 그러니 협치는 이제 신기루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의 협치를 도와야 할 여당이 오히려 대통령과 야당의 거리를 멀게 하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얼마 전 만난 민주당 한 의원은 대놓고 말은 못하고 이런 탄식을 했다. “민주주의는 독식이 아니다. 부동산법 이렇게 다 통과시켰는데 아파트값 안 잡히면 다 책임져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초조해하지 말고 더 타협해야 하는데….”
 
20대 국회에서 의장을 지낸 정세균·문희상은 협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협치는 먼저 손 내밀고 와 달라고 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먼저 배려하고 양보해야 한다”(정세균) “‘야당이 발목 잡아서 아무 일도 못 한다’고 핑계 댈 수 있는 기간은 1년이다.”(문희상)
 
야당이 잘해서 핑계 대지 말고 양보하라는 게 아니다. 엉망진창인 야당이라도 견인해가야 할 책임이 여당에 있어서다. 여당의 야당 배제는 결국 제 발목을 잡는 거다. 나중에 혹시 모를 독박을 자처할 이유가 왜 있나. 협치가 불가능해 보이는 요즘이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더 통한다고 대통령의 과감한 변신을 한번 기대해볼까. 협치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는 야당의 의심을 불식시키는. 아니…. 여전히 부질없는 공허한 상상인 걸까.
 
신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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