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51)
![아직도 종갓집에선 한 달에 한 번 제사를 지내는 집이 있다. 많은 어머니들이 ‘내 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고 싶다’라고 하신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7/29/9d30e0d2-5813-464b-b71b-d302fda9c71c.jpg)
아직도 종갓집에선 한 달에 한 번 제사를 지내는 집이 있다. 많은 어머니들이 ‘내 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고 싶다’라고 하신다. [중앙포토]
특히 안동은 유교 문화의 메카라 아직도 종갓집에선 한 달에 한 번 꼴로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다. 밤늦은 시간에 홀로 지내는 사람도 있다. 70대가 넘어선 많은 어머니의 한결같은 마음이 ‘내 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떠나고 싶다’라고 한다.
백 년도 안 된 시간에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다. 공동체 문화였던 우리네 인간관계가 얼마나 많이 멀어졌는지 서로에게 관심을 안 주고 살아가는 홀로 일상이 되어버렸다. 관심과 배려가 오히려 흠이 되는 세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낀 최첨단 인공지능이 사람을 지배하고 흔들고 있다. ‘모일 모시에 ㅇㅇ님의 제사를 모셨으니 확인 버튼을 누르세요’라는 신호로 대신하는 게 아닐는지 걱정이다.
얼마 전 책모임을 통해 ‘호모사피언스’와 ‘에이트’를 감동으로 읽었다. 변화도 시대를 따라가는 문화의 한 모습이란 말이 이해가 간다. 세상이 급변하고 그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의 미래를 알려준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것에게 지배받기보다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인간의 감성, 사랑, 소통 등 인문학적 교육을 우선으로 꼽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아무리 삶이 변해도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인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 속에 어울려 사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더 행복감이 크고, 우리가 점점 사람과 어울리기를 멀리하는 사이에 가족과 공동체는 해체되고 세상 속에서 점점 더 외롭게 살다 죽어간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아 밑줄 친 내용이다.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인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 속에 어울려 사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더 행복감이 크다. [사진 pexels]](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07/29/8432bbfb-f6bc-4fce-bd04-a9bc1eac5cef.jpg)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인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 속에 어울려 사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더 행복감이 크다. [사진 pexels]
삶의 한 부분인 제사의 모습이라도 변화시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즐거운 시간, 행복한 시간으로 바꿔 보면 인간이 기계와 다른 모습으로 어울려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좁은 소견이다. 정치·경제·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해도, 가족과 함께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움직이면 먹고 사는 건 해결된다. 사회의 소속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등만 잘 지켜도 그럭저럭 잘 사는 비결이다.
오랫동안 제사문제로 옥신각신하던 안동 권씨 양반 집안인 앞집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밤중에, 먹을 이도 없는 제사상을 차리고 혼자서 절을 하는 모습도 보기 싫다며, 부인은 제사가 끝나고 나면 늘 투덕거리셨다. 제사 문제만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던 남편이 변했다. 얼마 전 허리 수술로 힘들어하는 부인을 위해 당신 살아있을 때 큰 결정을 내리셨다. 명절 차례는 지내지만 여러 번 지내던 제사는 한 번으로 모아서 치르기로 한 것이다.
제삿밥 먹으러 오라 이른 아침에 부른다. “마지막으로 잔 올립니더~ 가족의 평화를 위해 그리하였으니 용서 하시소”라고 고하는데 울컥했다며 그래도 내심 좋아하신다. 밤 12시에 지내던 것을 저녁 7시로 바꾼 것도 자랑한다.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아닌가. 죽기 전에 해결하고 싶었던 일이라며 기운이 난 목소리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문제로 투덕거린다. 남편은 “고생만 하다가 일찍 돌아가셔서 평생 가슴에 응어리로 남은 엄마 기일로 합치자”하고, 부인은 “난 시모님을 못 뵈었으니 잘 모른다. 장날이면 도포자락 휘날리며 다녀오셔서 엿가락 건네주시며 나를 예뻐해 주신 시아버지가 더 생각나니 그날에 합치자”며 다른 의견을 낸다.
나는 훈수를 둔답시고 말했다. “그거야 간단하지요~두 분이 가위 바위 보를 하던가, 사다리 타기를 하던가. 그리고 아무 날이면 어때요? 이전까진 따로따로 오시다가 이제부턴 손잡고 같이 오실건데요 뭐. 그 문제는 서로 져 주는 게 이기는 거네요~~호호호.”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