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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소개팅 보냈더니 금세 응급실로 돌아온 전공의

기자
조용수 사진 조용수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51) 

"너 왜 퇴근 안 하냐?"
"제 환자 상태가 안 좋아서요."
중환자실 담당의가 여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해진 퇴근 시간은 이미 4시간이나 지났다. 곧 있으면 자정. 날을 넘기며 병원에 머물 요량일까?
 
"저녁은 먹었냐?"
그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입맛이 없다고 했다.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그런다고 환자가 좋아질 리도 없건만. 쓸데없이 진지한 모습에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중환자실 담당의가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여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 pxhere]

중환자실 담당의가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여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 pxhere]

 
집에 들어가라는 재촉을 못 해도 열 번은 듣고서야 겨우 녀석은 병원을 떠났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밥을 먹기에도 너무 늦은 시각이었고, 몇 시간 자고 나면 또다시 출근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의 어리석음이 한편으로는 딱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견하게 느껴졌다.
 
사실 환자를 보는데 그의 존재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옆에서 딱히 환자에게 해줄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분초를 다투며 처치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할 수 있는 처치는 이미 다 했고, 환자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하지만 담당의는 기도만 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는 내가 손을 놀릴 때마다 곁눈질했고, 내가 입을 놀릴 때마다 질문을 보탰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환자 곁을 떠나지 못했다. 가끔 눈에서 사라지면 치료법을 찾겠다며 논문을 뒤지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그는 오만 시간을 낭비하다 교수에게 떠밀리듯 병원을 떠난 셈이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처치를 다 하면, 환자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사진 pxhere]

의사가 할 수 있는 처치를 다 하면, 환자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사진 pxhere]

 
그렇다. 담당의는 근무 시간이 끝나면 칼같이 교대되어야 한다. 지엄한 법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근무 시간이 지나면 오더권마저 박탈당했다. 자기 환자에게 주사 하나 약 하나 처방 낼 수 없는 것이다. 얼핏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바람직한 변화다. 과거 주당 120시간 넘게 개처럼 부려지던 전공의들이었으니, 이것은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조치였다. 이 흐름은 결코 되돌릴 수 없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시대의 변화를 무조건 지지한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그중 하나가 낭만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기 시대의 파도 한가운데 철 지난 로맨티스트가 하나 있다. 비록 오더 한 줄 낼 수 없지만, 자기 환자 곁에 있겠답시고 소중한 젊음을 아낌없이 태워서 버리는. 근무 시간도 되기 전에, 동트기 무섭게 그새 또 출근하는. 중환자실을 들어서며 제일 먼저 자기 환자의 상태를 묻는. 조금 전에 자리를 떠난 거 같은데 어느새 돌아와 자리를 지키는. 그런 구시대적인 낭만이 내 눈앞에 있다. 대체 무엇이 그를…
 
그 담당의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하나둘 다른 전공의들도 발길을 이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지네들끼리 모여 치료법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새끼들 대체 정체가 뭐지?' 심지어 오프인 녀석까지 등장했다. 어처구니가 없어 쳐다봤더니, 환자가 응급실에 왔을 때 처음 봤던 의사가 자기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담당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가 맨 먼저 봤던 환자니, 본인도 지분이 있다고 항변했다.
 
이네들이 내 가족들이다. 몇 년을 동고동락한 전공의들. 진짜 가족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한 진짜 가족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환자에게 이끌리는. 같은 병원에서 같은 환자를 위해 같은 꿈을 꾸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이다. 나는 그게 자랑스럽다.
 
전공의 중 한명은 소개팅을 보냈더니, 몇 시간만에 돌아왔다. 종일 병원에서 환자만 보다 보니 일반 사람들과 대화할 거리가 없었단다. [사진 pxhere]

전공의 중 한명은 소개팅을 보냈더니, 몇 시간만에 돌아왔다. 종일 병원에서 환자만 보다 보니 일반 사람들과 대화할 거리가 없었단다. [사진 pxhere]

 
물론 이 녀석들은 정상이 아니다. 이들 중 하나는 연애 하랍시고 소개팅을 보내놨더니 몇 시간 만에 돌아와서 머리를 쥐어 싸맸다. 어땠냐는 물음에 좌절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큰일 났어요. 저 이제 소개팅 못 하겠어요. 일반 사람들이랑은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아무 말도 못 하고 시간만 보내다 끝났어요."
 
유행하는 가수가 누군지, 인기 있는 드라마가 무언지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정치도 뉴스도 아무것도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머릿속엔 온통 환자와 의학밖에 없었으니. 그러니 일반 사람들과 대화할 거리가 없었다. 오직 환자 얘기 의학 얘기만이 그의 온 삶이 되었다. 종일 병원에서 환자만 보다가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딱했다. 직장 일과 사생활을 구별해서 살지 못하는 그의 어리석음을 책망했다. 계속 그러다간 결혼도 못 하고 우물 안 개구리로 말라 죽을 거라고, 그러니 제발 세상을 넓게 보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위로했다. 모두 다 같이. 한잔 술을 함께 마시며.
 
우리는 어느 허름한 호프집에 앉아. 엊그제 그 환자가 마침내 좋아졌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또 다른 환자 B가 오늘 퇴원했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환자 C는 며칠 전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환자 D는 이제 이렇게 치료해보면 어떻겠냐는 얘기도 나누었다. 그렇게 술에 취하도록, 날이 새도록, 오로지 환자 이야기만으로, 끝이 없도록. 소개팅에서 한마디도 못 했던 그 녀석도.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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