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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반달가슴곰 85마리가 이사 왔다…곰도 사람도 괴롭다

경기도 여주시의 사육곰 농장에서 반달가슴곰이 우리 밖으로 혀를 내밀어 물을 마시고 있다. 왕준열 기자

경기도 여주시의 사육곰 농장에서 반달가슴곰이 우리 밖으로 혀를 내밀어 물을 마시고 있다. 왕준열 기자

깜깜한 철창 속에 갇혀 있는 곰들.
 

[애니띵] 국내 최대 사육곰 농장에 가다

오물과 뒤섞인 음식을 먹고, 혀를 쭉 내밀어 간신히 물을 마십니다. 비좁은 우리에 살면서 발바닥은 갈라졌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이상행동까지 보입니다.
  
이 곰들은 어쩌다 이런 곳에서 살게 된 걸까요?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5월에 갑자기 이사 온 반달가슴곰 85마리

경기도 여주시의 사육곰 농장 내부 모습. 왕준열 기자

경기도 여주시의 사육곰 농장 내부 모습. 왕준열 기자

16일 경기도 여주시 덕평리의 한 마을.
 
도로변에 철제펜스로 둘러싸인 창고가 있는데요. 바로 웅담 채취용 사육곰들이 사는 농장입니다.
 
원래는 경기도 안성에 있다가 지난 5월에 갑자기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는데요. 직접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원래 이곳은 오리 농장이었다고 하는데요. 사육장 내부는 어두웠고, 바닥에 떨어진 배설물 때문에 심한 악취가 났습니다. 철창에는 2m는 넘어 보이는 곰들이 두 마리씩 갇혀 있었습니다. 가슴에 선명한 흰 무늬가 있는 이 곰들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입니다. 이곳에서만 85마리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죠.
 
경기도 여주시의 사육곰 농장에서 철창 안에 반달가슴곰 두 마리가 갇혀 있다. 한 마리는 털이 빠진 채로 누워 있다. 왕준열 기자

경기도 여주시의 사육곰 농장에서 철창 안에 반달가슴곰 두 마리가 갇혀 있다. 한 마리는 털이 빠진 채로 누워 있다. 왕준열 기자

곰들은 무기력하게 바닥에 쓰러져 있거나, 불안한 듯 고개를 빙빙 돌리면서 우리를 서성였습니다. 
 

열악한 사육 환경 속에서 살다 보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하죠. 그래서 무의미하게 고개를 흔든다든지 철창 안을 왔다 갔다 계속해서 반복해서 다닌다든지 하는 그런 정형 행동들을 보이는 겁니다.”

 
동행한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가 설명했습니다. 박 활동가는 “흙바닥을 밟고 나무를 타면서 사는 야생의 곰들과 달리 사육곰들은 철창 위에서 살다 보니 발바닥이 갈라지거나 염증이 생기는 등 신체적으로도 약하다”고 말했습니다.
 

새끼곰 탈출해 119구조대 출동하기도

사육곰 농장에서 탈출한 새끼곰이 농수로에 빠져 있다. 여주소방서 제공

사육곰 농장에서 탈출한 새끼곰이 농수로에 빠져 있다. 여주소방서 제공

졸지에 곰을 이웃으로 둔 주민들은 불안합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이 사육장에서 새끼곰이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마을을 돌아다니다 농수로에 빠져 허우적대던 곰을 마을 주민이 발견했고, 119구조대까지 출동했습니다.
 
사육곰 농장에서 탈출한 새끼곰. 여주소방서 제공

사육곰 농장에서 탈출한 새끼곰. 여주소방서 제공

결국 이 새끼곰은 잠깐의 자유를 맛본 뒤 다시 좁은 철창 안으로 돌아가야 했죠. 이날 농장을 찾은 권순철 덕평1리 이장은 농장주를 향해 “주민들이 우려했던 게 결국 현실이 되지 않았느냐”면서 마을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사육곰 농장 주인인 김 모 씨는 “강아지 담는 케이지에 새끼곰을 넣어서 데리고 다니는데 우유를 먹이고 (케이지) 문을 덜 닫아놔서 곰이 빠져나갔다”며 “길들여진 곰이라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곰 탈출하면 다 죽는다” 불안한 주민들

사육곰 농장(오른쪽)에서 불과 30m 떨어진 곳에 가정집이 있다. 왕준열 기자

사육곰 농장(오른쪽)에서 불과 30m 떨어진 곳에 가정집이 있다. 왕준열 기자

사육곰 농장에서 불과 30m 떨어진 곳에도 가정집이 있었는데요. 집주인 황태근(86) 씨는 “곰들이 이사 온 뒤로는 사육장에서 우리 집으로 바람이 불 때마다 악취가 난다”고 했습니다. 
 

“계속 항상 불안하잖아요. 큰 짐승 나와서 이거 다 부시면 우리 다 죽는 거죠. 금방 다 죽는 거예요. 짐승 보셨잖아요. 엄청나게 크잖아요.” - 황태근씨

   
마을 주민들은 하루빨리 사육곰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길 원합니다. 농장 건너편에도 ‘깨끗한 청미천 옆!! 곰 사육시설 입지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민원이 계속되자 환경부와 한강유역환경청, 여주시청에서도 이날 합동 점검을 나왔습니다. 하지만, 농장주에게 곰들을 잘 관리해달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달가슴곰을 몰수하더라도 현재 국내에는 이렇게 많은 곰을 보호할 시설이 없기 때문이죠.
 
김영민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사무관은 “(곰을 언제 몰수할 수 있을지는) 기한을 정해서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관할 경찰서와 한강유역환경청의 공조로 순찰·점검을 강화해서 위급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관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죽는 날 기다리는 사육곰 400여 마리

경기도 여주시의 사육곰 농장에 갇혀 있는 반달가슴곰. 왕준열 기자

경기도 여주시의 사육곰 농장에 갇혀 있는 반달가슴곰. 왕준열 기자

사실 곰을 이웃으로 둔 주민들도 불편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건 좁은 철창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육곰들입니다.
 
사육곰의 비극은 1980년대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국가적으로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곰 사육을 장려했고 1985년까지 총 493마리의 곰이 재수출용으로 수입됐죠. 하지만, 한국 정부가 1993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곰 거래가 금지됐습니다.
 
정부는 수출길이 막힌 농가의 손실 보전을 위해 10년 이상 산 곰의 웅담 채취를 허용했습니다. 사육곰 산업을 종식하겠다며 곰 중성화 수술도 진행했죠. 결국 사육곰들은 철창 속에서 시한부 삶을 살다가 웅담 채취용으로 도축되는 신세가 됐습니다.
 
지리산에서 복원 중인 반달가슴곰. 국립공원공단

지리산에서 복원 중인 반달가슴곰. 국립공원공단

더 역설적인 건 현재 지리산에서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반달가슴곰을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곰에도 귀천(貴賤)이 있느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사육곰 농장주인 김 씨는 “반달가슴곰 복원에 쏟아붓는 돈의 100분의 1만이라도 농가들의 사육곰 처분 손실을 보상하는 데 써달라”며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사육곰들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사이 일부 농가에선 수익을 위해 곰을 불법 증식하거나 고기를 요리해 파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죠. 박 활동가는 “지난해 환경부가 몰수보호시설 예산으로 90억을 신청했지만 전액 삭감됐다”며 “불법 증식된 사육곰을 국가의 재산으로 몰수하는 등 강력한 조치가 없다면 사육곰 산업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전국에 남아있는 웅담 채취용 사육곰은 400여 마리. 이 곰들은 이렇게 좁은 철장 안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이 곰들을 구할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요?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은 영혼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유래했습니다. 인간이 그렇듯, 지구상 모든 생물도 그들의 스토리가 있죠. 동물을 사랑하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만든 ‘애니띵’은 동물과 자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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