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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육신은 사라졌지만 노병은 죽지 않았다

고 백선엽 장군에게 ‘명예원수’ 추서 어떨까

지난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서 고인의 영현을 묘역으로 봉송하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 때 군복을 수의로 입은 채 영면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서 고인의 영현을 묘역으로 봉송하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 때 군복을 수의로 입은 채 영면했다. [연합뉴스]

“노병은 죽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사라질 뿐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해임된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52년의 군 생활을 마치면서 1951년 미 상하원에 연설한 고별사 일부다. 지난 11일 별세한 고 백선엽 장군의 장례식을 보면서 맥아더 원수의 말이 실감 났다. 그의 정신은 죽지 않았다. 육군장으로 치러진 백 장군의 장례식장 바깥에는 공식적인 일반인 분향소가 없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 없이 일반 시민들이 광장에 마련한 분향소는 들불처럼 번져 전국적으로 차려졌다. 광화문 시민 분향소에선 조문객이 수십 미터 줄을 섰다.
 

국민 마음 속에 살아 숨쉬는 노병
한국전쟁, 한미동맹, 국민 자강심
벨 “워싱턴과 같은 한국군 아버지”
북한 정권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나서 백 장군을 애도했다. 한국전쟁에서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진 백선엽 장군의 헌신과 전공을 높게 샀기 때문이다. 조문한 시민들은 백 장군에 대한 감사와 함께 대한민국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정신이 돼서 다시 살아났다. 노병은 죽지 않았고, 육신만 사라졌을 뿐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코로나19 이후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경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요즘 한 줄기 희망이 됐으리라. 그는 생전에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지켰고, 한·미 동맹을 통해 북한의 끝없는 위협을 막았다. 죽어선 국민에게 자강의식을 심었다. 그래서 국민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백선엽 장군에게 명예원수를 추서할 당위성이 제기된다.
  
원수 계급은 명예 … 프랑스는 300여 명
 
군대에서 ‘원수’라는 칭호는 명예의 의미가 더 크다. 과거 유럽에선 2개 군 이상을 지휘하는 경우에 주어지는 직책이다. 전 세계에서 원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는 프랑스다. 12세기 카페 왕조에서부터 현대의 미테랑 정부에 이르기까지 원수가 300명이 넘는다. 프랑스는 원수 직책을 전쟁 동안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수여해왔다. 최근에는 마리 피에르 코닉 원수인데 그는 사후인 1984년 추서됐다. 코닉 외에도 현대에 4명이 사후에 원수로 추서됐다. 프랑스에서 원수에겐 7개 별이 새겨진 지휘봉이 주어진다.
 
① 프랑스가 원수에게 지급하는 7개 별이 새겨진 지휘봉. ② 미군 원수가 착용하는 5성의 계급장. ③ 한국전쟁에서 유엔군 사령관으로 참전해 전쟁을 지휘한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 그는 1944년 원수로 진급했다.

① 프랑스가 원수에게 지급하는 7개 별이 새겨진 지휘봉. ② 미군 원수가 착용하는 5성의 계급장. ③ 한국전쟁에서 유엔군 사령관으로 참전해 전쟁을 지휘한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 그는 1944년 원수로 진급했다.

미국에선 원수가 5성 장군이다. 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대장들에게 주로 주어졌다. 맥아더·조지 마샬·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오마 브래들리 등 9명이다. 6성 장군인 대원수도 3명이다. 1차대전 영웅 존 셔먼, 남북전쟁과 스페인전쟁에 참전한 해군 제독 조지 듀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다. 이 가운데 워싱턴은 사후 63년 뒤인 1862년 링컨 대통령이 육군 대장에, 1869년 그랜트 대통령이 원수로, 1976년 포드 대통령이 명예 대원수 계급을 추서했다. 미국과 프랑스 외에도 독일, 이탈리아, 인도 등 많은 나라에 원수 계급이 있다. 한국은 군인사법 27조에 ‘원수는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대장 중에서 임명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면 백선엽 장군에겐 ‘명예원수’ 칭호가 가능할까. 백 장군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1사단장이었다. 그는 개전 초기엔 T-34 전차로 무장한 북한 인민군에 밀렸다. 그때 국군은 북한 전차를 파괴할 무기도 없었다. 인민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우리 국토는 낙동강 남쪽 끝자락만 남았다. 경북 칠곡군 다부동은 낙동강 전선의 요충지였다. 다부동이 뚫리면 대구가 함락된다. 경주-부산도 곧바로 끝장난다. 다부동 전투에 대한민국의 사활이 걸렸다. 백 장군은 미군 지원을 받아 1950년 8월 3∼29일 사이 다부동에서 인민군 3개 사단을 맞아 결전을 벌였다.
 
그때 백 사단장은 빗발치는 총탄에 후퇴하는 부하들에게 “이곳을 지키지 못해 대구를 내준다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바다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우리가 물러나면 미군들도 곧장 철수할 것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망한다”고 타일렀다. 이어 그는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라와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고 말한 뒤 권총을 빼 들고 적이 있는 고지로 뛰어갔다. 사단장이 앞서 나가자 뒤를 따르던 부하들이 “이제 우리가 나아가겠습니다”고 했다. (백선엽 『6·25 전쟁 징비록』)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전투에서 국군 1만여 명, 인민군 2만4000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국군은 낙동강 전선을 사수했고, 북한 김일성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에 힘입어 맥아더 UN군 사령관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다. 전세는 역전됐다.
  
전투는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백선엽 장군은 다부동 전투 외에도 수 없는 전장에서 승리했다. 1951년 지리산 빨치산 소탕작전을 지휘하고, 휴전 이후엔 1군사령부를 창설하는 한편, 한국군 증강계획을 착수했다. 휴전 직전인 1953년 5월 미국을 방문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제안했다. 그때만 해도 미국은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백 장군의 설득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한다. 이 조약으로 현재 한·미 동맹이 유지되고 있다. 그는 전쟁 공로로 태극·을지·충무무공훈장 5번, 은성무공훈장 등 미국 훈장도 4번이나 받았다. 최초로 육군 대장에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2번에 합참의장까지 맡았다. 90세가 넘어서도 군부대를 찾아 후배들에게 옛 경험을 전했다. 그의 전투는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은 백 장군을 존경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백 장군 영결식에 보낸 화상에서 “백선엽 대장의 전장에서 용기, 한·미 동맹을 위한 인내, 한반도 평화를 위한 헌신은 영원히 기억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버웰 벨 전 사령관도 “백 대장은 미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과 같은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 정권 입장에선 백 장군은 가장 미운 존재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김일성의 적화통일계획 무산, 공비와 빨치산 토벌, 한·미 동맹 구축, 한국군 증강을 주도했다.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이 가장 싫어하는 일만 했던 셈이다.
 
미군들이 백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육군총장을 지낸 권오성 육군협회장에 따르면 전황이나 작전에 대한 그의 평가는 어떤 한국군 장교보다 객관적이면서도 겸손했다는 것이다. 또 그는 천재적인 작전능력을 갖췄다는 게 미군 측 평가다. 뿐만 아니라 백 장군은 한·미 동맹의 상징이었고, 한국전쟁의 살아있는 전설이었고 한다. 전쟁 때 함께 싸웠던 미군 장성들은 모두 사망했지만, 백 장군만이 생존해 당시 기억을 생생하게 전해줬다고 한다.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백 대장은 한·미 관계, 한·미 동맹의 위대한 롤모델이었다”고 말했다.
 
백선엽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다가 무산됐다. 그가 1943년부터 2년여간 만주군 간도특설대 복무경력이 논란이 돼서다. 독립군을 잡았다는 주장이다. 백 장군의 입장은 다르다. 간도특설대 복무 땐 태평양전쟁이 한창이었는데 이미 일본군이 만주를 장악하고 있었다. 간도엔 무장 독립군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찰활동이 그의 주 임무였다는 것이다. 실제 무장 독립군은 1921년 자유시 참변 사건 이후 간도에서 거의 사라졌다. 자유시 참변은 대한독립군이 공산당을 돕지 않는다는 이유로 레닌의 소련 적군이 자유시에서 독립군 1000여 명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아간 사건이었다. 또한 백 장군의 중위 초급장교 시절 잠시 간도특설대 복무는 그의 한국전쟁 공적에 비교가 안 된다. 미국 독립을 이끈 워싱턴도 독립전쟁 전에는 영국군 소령이었다. 백선엽은 한국전쟁의 실질적인 영웅이다. 그에 맞는 영웅 대접에 인색하지 말자.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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