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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다닥다닥 붙고, 울타리 넘고···국립공원 ‘막무가내 인증샷 몸살’

18일 덕유산 향적봉~주봉 능선에서 촬영한 꼴불견 현장. 단체 산악회원 한 명이 울타리를 넘어 출입금지 구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최승표 기자

18일 덕유산 향적봉~주봉 능선에서 촬영한 꼴불견 현장. 단체 산악회원 한 명이 울타리를 넘어 출입금지 구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최승표 기자

“자, 마스크 벗고 하나! 둘! 셋! 찰칵!” 
18일 덕유산 최고봉 향적봉(1614m)은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코로나 시대, 등산이 국민 레저라는 걸 실감했다. 탐방객 모두 탁 트인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볼썽사나운 장면이 펼쳐졌다.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2m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출입금지 구역을 함부로 넘나드는 등산객을 곳곳에서 마주쳤다. 
 
출입금지 안내문은 아랑곳하지 않고 울타리를 넘는 탐방객이 정말 많았다. 대부분 중장년층이었고, 가방에 산악회 리본을 달고 있었다. 원추리·범꼬리 같은 야생화를 짓밟고 사진을 찍는 이도 있었고, 위험한 바위에 걸터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이들도 많았다. 막걸리를 걸치기도 했다. 등산객이라기보다는 행락객에 가까워 보였다. 현장에는 국립공원 직원이 안 보였다. 몇몇 탐방객에게 최대 과태료 30만원에 해당하는 위법행위인 걸 아는지 물었다. “그런가요? 몰랐네요.” “아이고, 압니다. 미안합니다.” 성가시다는 투였다. 
 
비법정탐방로 출입은 덕유산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고,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꼭 산악회 문제라고도 할 순 없다. 그러나 주말마다 전국의 산을 다니는 산악회라면 더 투철하게 법을 지키고 자연을 아낄 거라 생각했기에 당혹스러웠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중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지금 원추리 꽃이 만개했다. 아고산대 식생 복원을 위한 출입금지 구역인데도 꽃밭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 탐방객이 많았다. 두 발과 등산스틱으로 꽃을 뭉개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다. 최승표 기자

덕유산 향적봉에서 중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지금 원추리 꽃이 만개했다. 아고산대 식생 복원을 위한 출입금지 구역인데도 꽃밭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 탐방객이 많았다. 두 발과 등산스틱으로 꽃을 뭉개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다. 최승표 기자

덕유산 정상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아고산(亞高山) 지역이다. 연중 습하고 바람이 센 고산 지대여서 희귀 식물이 많이 산다. 구상나무와 주목이 대표 종이고 지금은 샛노란 원추리꽃이 만개했다. 국립공원공단은 2014년부터 아고산대 식생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탐방객이 훼손한 자연을 살리기 위해서다.
 
천홍래 국립공원 덕유행정과 계장은 “한동안 주춤했던 단체 산악회가 조금씩 늘고 있다”며 “직원이 순찰하긴 하지만 넓은 공원에서 불법행위를 모두 단속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비법정탐방로 출입’으로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전국 22개 국립공원에서 907건이었다. 음주(416건), 취사(328건), 흡연(320건)보다 많긴 했지만 대부분 주의를 주거나 지도장을 발부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조성빈 국립공원공단 환경관리부 계장은 “울타리 너머 한두 걸음 들어간 이들보다 고의로 비정규 탐방로로 산행하는 이들이 단속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덕유산 정상부는 정규 탐방로만 걷도록 돼 있다. 과태료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는데도 울타리를 넘어 가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최승표 기자

덕유산 정상부는 정규 탐방로만 걷도록 돼 있다. 과태료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는데도 울타리를 넘어 가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최승표 기자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30m 이상 줄지어 선 모습도 황당했다. 국립공원공단의 ‘2m 이상 거리두기’ 캠페인은 인증사진 앞에서 소용없었다. 사람 사이 간격은 겨우 한 뼘 정도였다.

 
때 아닌 정상석 인증사진이 왜 열풍일까. SNS의 유행이 결정적이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아웃도어 업체 블랙야크는 등산 커뮤니티 플랫폼인 BAC에서 국내 100대 명산의 정상석 인증사진을 남기면 수건이나 등산용품 할인권을 준다. 6월 현재 BAC 가입자는 16만 명을 넘어섰다. 부산시와 울산 울주군도 산악관광 활성화 명목으로 정상석 인증사진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남윤주 블랙야크 마케팅팀장은 “경쟁적인 정상 등정보다는 산행 자체를 즐기는 캠페인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향적봉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긴 줄을 선 사람들. 국립공원이 권하는 2m 거리두기가 소용 없었다. 최승표 기자

향적봉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긴 줄을 선 사람들. 국립공원이 권하는 2m 거리두기가 소용 없었다. 최승표 기자

여름휴가가 본격화하면 전국의 산이 더 붐빌 것이다. 국립공원공단은 더 강력한 캠페인과 불법 행위 단속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에 앞서 탐방객 스스로 달라진 시대에 적응해야 하겠다. 정상 등정과 인증에 집착하기보다 안전과 환경을 생각하자. 코로나 시대의 도피처를 더불어 즐기고 싶다면.
 
무주=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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