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양성희 논설위원이 간다] 아이돌 산업과 엘리트 체육 공통점 ‘합숙소’

K팝·K스포츠의 민낯

멤버 괴롭힘 폭로가 나온 AOA. 가해자로 지목된 리더 지민(왼쪽 둘째)이 팀 탈퇴와 연예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중앙포토]

멤버 괴롭힘 폭로가 나온 AOA. 가해자로 지목된 리더 지민(왼쪽 둘째)이 팀 탈퇴와 연예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중앙포토]

“기획사와 데뷔조 계약을 했는데 먹지도 못하게 하고 잠도 거의 못 자고 학교도 못 가게 하면서 연습만 시켰다. 숙소 생활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집 가서 부모님 보는 것도 못하게 했다.”
 

성적지상주의 K팝과 엘리트 체육
멤버간 괴롭힘, 가혹행위 묵인 구태
소속사 뒷전 아이돌 인권 ‘빨간불’
인권 감수성 있어야 K팝 경쟁력

“(회사가) 고등학생을 1년에 두 번이나 단식원에 보냈다. 48kg을 만들어야 한다며 일주일 동안 물만 먹고 지낸다.”
 
“아이가 조금만 잘못해도 계약 위반이라고 한다. 머리를 마음대로 자르는 것도 안 되고 SNS도 금지다. 아이가 견디지 못하고 나왔는데 무단이탈, 계약위반이라고 위약금을 물어내라고 한다.”
 
“기획사에서 아이들을 상품 다루듯이 거칠게 한다.”
 
“한 달에 한두 번 기획사에서 심리 상담을 제공하는데 심리상담 선생님이 회사 소속이다 보니 아이들을 설득시키는 거지, 아이 입장을 고려한 상담이 아니다.”
 
지난 3월 콘텐츠진흥원이 펴낸 ‘2019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실린 아이돌 연습생 부모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돌은 평균 3년 정도 연습생 시절을 거쳐 70%가 데뷔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을 자랑하는 K팝이지만, 그 이면엔 아직도 기획사의 과도한 통제와 인권침해가 있다는 얘기다.
  
# 술자리 해프닝? 소속사의 갑질?
 
더이스트라이트. [중앙포토]

더이스트라이트. [중앙포토]

며칠 전 SNS에는 유명 남자 아이돌이 술자리에서 소속사 대표에게 머리를 얻어맞는 영상이 공개됐다. 인기 아이돌 인피니트의 두 멤버 남우현과 김성규가 데뷔 10주년을 맞아 SNS 라이브방송을 하던 중 벌어진 일이다. 소속사 울림엔터테인먼트 이중엽 대표가 남우현의 머리를 쥐어박았고 “니 얼굴은 80kg” “얼굴 최악이야”라는 막말과 욕설을 했다. 멤버들의 ‘군백기’(입대로 인한 공백기)에 라이브방송 등 팬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채근하고, 외모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일이었다(남우현은 현재 사회복무 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멤버들은 웃어넘겼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국내 대표적인 K팝 아이돌 스타가 소속사 대표에게 모욕스런 언행을 당하는 장면이 글로벌 팬들 앞에 공개됐다.
 
비판이 쏟아지자 이중엽 대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경솔하고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팬과 두 멤버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이후 내부적으로 아이돌의 라이브 방송을 금지시켜 사안을 호도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팬은 “상대가 30살 가까운 아이돌이다. 그저 격의 없는 술자리 해프닝으로 봐 넘기기에는 기분이 씁쓸하다”고 꼬집었다.
  
# 멤버 간 괴롭힘, 소속사는 뭘 했나
 
멤버 간 괴롭힘으로 팀 최대 위기를 맞은 여자 아이돌 AOA는 더 심각한 경우다. 지난해 팀을 탈퇴한 (권)민아가 “리더 지민으로부터 10여년간 괴롭힘을 당해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었다”는 폭로 글을 SNS에 올리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2012년 8인조로 출발한 AOA는 그간 민아, 초아 등 3명의 멤버가 팀을 떠난 상황이었다. 처음엔 “소설”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던 지민은 “당시 20대 초반이어서 팀을 이끌기에 부족했다”며 사과했지만, 비판 여론이 잦아들지 않자 결국 팀 탈퇴·연예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해 M.net ‘퀸덤’에서 페미니즘 코드 무대로 각광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은 AOA 앞날에 빨간 불이 켜졌다.
 
멤버 찬미의 어머니 임천숙씨의 과거 인터뷰 내용도 다시 화제가 됐다. “찬미가 데뷔 3년쯤 됐을 때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아이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다. 회사를 나오고 싶다고 했는데, 위약금이 투자 금액의 3배로 수십억 원 규모였다.” “5년 만에 첫 정산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의 태도다. 줄곧 무대책·무반응으로 일관하던 FNC는 지민의 탈퇴가 결정된 후에야 “지민이 팀을 탈퇴하고 연예활동을 중단한다. 당사 역시 책임을 통감하고 아티스트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 좋지 않은 일로 걱정을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는 짧은 입장문을 내놨다. 수년간 팀 내 갈등을 몰랐을 리 없는 소속사가, 멤버 개인 간 문제로 상황을 좁히고 가해자로 지목된 멤버의 퇴출로 상황을 마무리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FNC에는 유재석, 정용화 등이 소속돼 있다.
  
# AOA, 최숙현-합숙소에서 생긴 일
 
고(故) 최숙현 선수에 대한 가혹 행위로 수사를 받고 있는 감독과 동료 선수들. [뉴시스]

고(故) 최숙현 선수에 대한 가혹 행위로 수사를 받고 있는 감독과 동료 선수들. [뉴시스]

사실 AOA 사태는, 정도는 다르지만, 감독 등 팀 내 가혹 행위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최숙현 철인3종경기 선수의 경우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청소년 시절부터 합숙생활을 하고, 같은 팀 선수·멤버 사이에 괴롭힘이나 따돌림이 있었다. 위계질서가 확실하고 폐쇄적인 합숙생활을 하며 리더(주장)가 ‘권력대행’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일부 소속사는 멤버 관리의 용이함을 이유로 리더의 갑질을 묵인·방조하기도 한다.
 
칼럼니스트 이승환에 따르면 “엘리트 체육과 아이돌 산업이 공유하는 것이 병영문화의 잔재인 합숙소”다. 트레이닝의 효율성은 높지만 과도한 통제, 일상의 서열화, 생활권력의 남용 등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 범죄 수준의 폭력이 만연해도 은폐가 용이한 구조이기도 하다. 지난해 심석희 쇼트트랙 선수의 ‘미투’ 사건 이후 구성된 스포츠혁신위원회가 합숙소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한 이유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료에서도 스포츠 분야 폭력의 18.6%, 성폭력의 36%가 합숙 과정에서 발생했다. 물론 혁신위의 합숙소 폐지안은 엘리트 체육의 약화를 우려하는 대한체육회 등 체육계의 ‘현실론’에 부딪혀있다. 성적만 좋으면 된다는 실적 만능주의의 공고한 벽이다. 청소년 운동선수의 합숙소는 아이돌 숙소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법원은 지난 3월, 아이돌 더이스트라이트 멤버들에 대한 소속사(미디어라인) 측의 폭행·괴롭힘 사건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아동학대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김창환 미디어라인 회장은 90년대 김건모·박미경 등을 키워낸 명 작곡가·프로듀서 출신이다. 이는 극단적 사례지만 차제에 K팝 산업 내부의 ‘인권 감수성’을 돌아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은 “이번 AOA 사건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폭력의 본질이 K팝에서 불거진 사례”라며“가장 큰 책임자는 어린 공연예술가 노동자를 혹독한 조건 속에 던져넣고, 폭력을 조장·방치하면서 이익을 본 FNC”라고 강조했다.
 
AOA는 당장 9월 출연 예정이던 원더우먼 페스티벌에 불참키로 했다. 직장 내 괴롭힘, 갑질 문화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AOA에 대해 악화된 여론을 쉽게 되돌리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위계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힌 아이돌들이 팝스타 비욘세나 심지어 작곡가 비발디마저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웃지 못할 장면이 종종 연출되는 게 K팝의 현주소다. K팝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인권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소년 인권침해 온상 지목 운동선수 합숙소
청소년 인권침해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운동선수 합숙소 문제는 지난 2003년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로 9명의 초등학생이 사망하면서 처음 논의가 시작됐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학교 운동부 합숙소 폐지와 중·고등학교 합숙소 개선을 권고했지만 실효가 없었다.
 
지난해 10월 인권위가 ‘합숙소 앞에 멈춘 인권’ 토론회에서 발표한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합숙소 내 단체 기합과 상습 구타, (성)폭력 위험, CCTV 일상 감시 등 인권 침해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전국 16개 중·고교 학생선수 50명을 면담한 결과다. 과도한 생활수칙 요구, 휴대폰 사용과 외출 제한, 삭발 강요, 선배들 빨래 강요, 이성 교제 적발 시 삭발, 샴푸 꼭지 한 방향으로 정리, 관등성명 외치기 등 병영적 통제·규율도 여전했다. 유사성행위 등 (성)폭력 사건도 4건이나 드러났다.  
 
또 스프링클러 미비 등 안전시설 문제도 지적됐다. 토론회에서 인권위 특별조사단은 학생의 선택권과 사생활이 보장되고 적정 시설을 갖춘 인권친화적인 기숙사로 전면 개편 등을 제시했지만, 전면 폐지 없이 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양성희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