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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장군 대전현충원 안장식…여당 지도부는 오지 않았다

 고(故)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 대장) 안장식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서 엄수됐다. 

유가족,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등 참석
현충원 안장 찬성과 반대 단체 대치하기도

 
고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대장) 안장식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2묘역에서 엄수됐다. 이날 육군의장대원들이 고인의 영현을 묘역으로 봉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고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대장) 안장식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2묘역에서 엄수됐다. 이날 육군의장대원들이 고인의 영현을 묘역으로 봉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안장식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서욱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시작됐다. 안장식에는 유가족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성우회 회장단과 고문단, 역대 참모총장, 한미동맹재단, 육군협회 회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 이외에 정부 주요 인사나 여당 지도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영결식은 김판규 전 육군참모총장의 추모사 낭독으로 시작됐다. 김 전 참모총장은 "70년 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대한민국이 공산화될 뻔했지만, 백선엽 장군이 지휘하는 국군이 온몸으로 막아냈다"며 "백선엽 장군은 전설이며 국가의 보배이자 국민의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전 총장은 "백 장군은 혼신을 다해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안보초석을 다지는 데 일생을 바쳤다"고 덧붙였다.   
 
 김 전 총장의 추모사에 이어 유가족 등 참석자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경북 다부동 전투 참전용사 4명과 육군 장병 4명이 백 장군 묘에 허토했다. 백 장군은 6.25 전쟁 당시 착용한 전투복 차림으로 이곳 묘역에 잠들었다. 유족은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낙동강 다부동과 문산 파평산, 파주 봉일천 등 6·25 전쟁 격전지 8곳의 흙을 묘역에 뿌렸다.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서 해리 해리슨 주한 미 대사가 헌화와 분향을 한뒤 돌아서고 있다. 김방현 기자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서 해리 해리슨 주한 미 대사가 헌화와 분향을 한뒤 돌아서고 있다. 김방현 기자

 
 안장식이 열린 대전현충원 앞에는 국립묘지 안장에 찬성하는 단체와 반대하는 단체가 대치하기도 했다. 운구차가 현충원 안으로 들어갈 때 물리적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경찰은 8개 중대 420명의 인력을 동원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집회 시작 전 격앙된 반응을 보인 일부 참가자를 제지하기도 했다.
 
 앞서 이날 오전 7시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영결식이 열렸다. 영결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역대 참모총장들이 참석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미래통합당 지도부도 이날 영결식을 끝까지 함께 했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불참했다. 다만 국회 국방위원장인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영결식에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
 
 송영근 예비역 중장은 추도사에서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 당시 갑오동 전투에서 ‘내가 앞장설 테니 따르라’며 돌격을 강행했다”며 “당시 갑오동에서 (북한군에) 패배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고 저나 여러분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故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의 시민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故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의 시민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뉴스1

 백 장군은 1920년 11월 23일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평양에서 지낸 뒤 평양사범학교를 나왔고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했다. 일본군 간도특설대에 배치됐던 백 장군은 해방 직후인 1945년 평양에 돌아왔고, 독립운동가인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일하다 김일성이 권력을 잡자 그해 12월 월남했다. 
 
 월남 직후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간 백 장군은 1946년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해 부산 제5연대 중대장을 맡았다. 창군 원년 멤버가 된 것이다. 6·25 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대령으로 제1사단장이 되어 개성 지역을 담당했고, 전쟁 발발 당시 고급 간부 훈련을 받고 있었다.
 
고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대장) 안장식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2묘역에서 엄수됐다. 이날 육군의장대원들이 고인의 영현을 묘역으로 봉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고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대장) 안장식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2묘역에서 엄수됐다. 이날 육군의장대원들이 고인의 영현을 묘역으로 봉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백 장군은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다부동 전투 등에서 전공을 세우며 32살 나이에 국군 최초의 대장에 올랐고, 태극무공훈장을 두 차례 받았다.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에서 그는 패퇴 직전인 아군에게 "내가 앞장설 테니 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고 말하며 인민군이 점령한 고지로 뛰어올라갔고 전세를 뒤집었다. 많은 6·25 전사가들은 "이 전투에서 패했다면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한편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 지난 10일 설치된 시민분향소에는 20여만명이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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