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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라떼 회장님이 망가진 이유

서경호 경제에디터

서경호 경제에디터

재미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현대카드와 우아한형제들이 지난 7일 배달의민족 전용 신용카드인 ‘배민카드’를 출시하는 파트너십을 맺으며 찍은 사진이다.
 

낮춰야 통한다…열린 CEO에 박수를
‘현장경영’ 메시지 부실땐 역효과
기부도 적당히 알려야 돋보이는 법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둘이 보타이를 매고 찍은 사진도 있었지만 위 사진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행사를 준비한 실무자를 포함해 12명이 폼 잡고 찍은 컷이다. 정 부회장과 김 의장은 사진의 중앙이 아니라 그저 실무자 사이에 파묻혀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의 시선은 제각각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조직원의 생각과 목표를 오케스트라 지휘하듯 하나의 하모니로 끌어내는 게 바로 경영의 요체임을 웅변하는 듯했다. 아하, 그래서 경영학 서적에 조직의 비전과 임직원의 마음을 일치시키는 얼라인먼트(Alignment)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무슨 협약식 사진은 천편일률적이다. 행사내용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회사 대표끼리 악수하거나 나란히 웃고 있는 사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신문 편집자들은 이런 진부한 사진을 2단 이상으로 크게 쓰는 걸 몹시 싫어한다.
 
디자인 경영과 문화마케팅으로 많이 알려진 현대카드이고,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등의 톡톡 튀는 광고 카피에서 느낄 수 있는 ‘펀(fun) 경영’의 우아한 형제들이니, 뻔한 체결식 사진을 피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유쾌하게 ‘망가지는’ 회장님과 사장님은 한둘이 아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앞줄 왼쪽 셋째)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뒷줄 맨오른쪽).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앞줄 왼쪽 셋째)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뒷줄 맨오른쪽).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사내방송에 출연해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사회적 가치를 설파했는데, 방식이 이랬다. 유명 드라마 제목을 패러디한 ‘최태원 클라쓰’라는 컷을 달고 등장한 최 회장에게 사회적 가치 측정을 몸으로 설명하라는 미션이 떨어진다. 다양한 손짓으로 개념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어느 유명한 광고 카피를 흉내 내 “이거 참~좋은데 표현할 수가 없네”라고 답답해한다. 직원들은 “내용은 B급 개그지만 진심이 느껴진다” “권위를 내려놓은 회장님이 친근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완신 롯데홈쇼핑 대표는 지난달 유튜브 생방송으로 진행된 사내방송에서 직원들로부터 “신입사원 때 사장되실 줄 알았나”란 질문을 받았다. 그는 “친구들이 한 달 다니면 많이 다닌 것”이라고 했다는 고백을 했다. 항상 밑진다는 생각으로 직장 생활을 하니, 상대방이 손을 내밀어줬다는 선배로서의 성공 팁도 전수했다. 춤까지 추며 격의 없이 소통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물론 최고경영자(CEO) 이미지 통합(PI·President Identity)의 일환으로 옆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홍보팀이 적극 개입해서 만들어낸 사례들일 것이다. 하지만 경영자의 통 큰 승낙이 없었다면 스스로 ‘망가지는’ 이미지까지 연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이든 경영자가 ‘라떼(나 때)는 말이야’ 하며 과거 스토리만을 틀어대는 ‘라떼 회장님’ 이미지를 벗고 직원들과 낮은 자세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권위를 거부하고 디지털로 소통하는 미래의 회사 주역인 20~30대 젊은 직원들의 마음을 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낮춰야 통한다.
 
독자와 기업 사이에서 기업의 PI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현장경영이 중요한 이유는 탁상경영을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겠지만 대외적으로 CEO의 현장 방문을 알릴 때는 메시지 관리가 중요하다. 어떤 현장에, 누구와 만나, 어떤 얘기를 했느냐에 방점에 찍혀있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언젠가 본 듯한 하품 나는 메시지를 담아 PI 자료를 뿌리면 전혀 다른 메시지가 전달된다. ‘저 회사는 회장님이 황제처럼 군림하나 보네, 별 내용도 없는데 현장에 ‘왕림’하셨다는 내용을 알리고 싶어서 밑에서 안달복달하는 것을 보면.’
 
혹은 이럴 수도 있겠다. ‘겨우 이런 메시지라니. 어떤 메시지가 전달되는지도 모르고 방치하는 걸 보면 그 회장님의 판단력이나 안목을 미뤄 알 수 있겠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중요하고 알릴 필요도 있다. 하지만 적당히 알려야 돋보이는 법이다. 기부 소식을 너무 자주 알리는 어느 기업을 보면 참 답답하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굳이 강조하지는 않겠다. 기업 이미지를 오히려 고루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다 아는 사실을 이 회사 회장님만 모르고 있다.
 
서경호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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