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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BT·디자인 회사 옹기종기…‘소제동 융합타운’ 어떨까

[도시와 건축] 21세기형 스마트타운

21세기형 스마트타운

21세기형 스마트타운

판교는 분당보다 강남에 더 가까운 장점이 있다. 이곳에 한껏 멋을 부린 대형 사옥들이 들어선 IT타운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회사가 판교를 떠나 성수동 같은 구도심으로 이사 가기를 바란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왜 판교 대신 성수동을 선호할까?
 

대전역 동쪽 구도심 소제동
시간 멈춘 듯 특별한 공간감

배후엔 카이스트·대덕연구단지
익선동식 상업화, 재개발보다
새로운 기업타운 입지로 최적

일단 판교의 사옥은 출근해서 사원증 찍고 사무실에 들어가면 건물에서 나올 일이 없다. 건물은 여러 개 층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층간으로 사람들은 단절되어 있다.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타고 다른 층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건물에 발코니나 테라스도 없어서 바깥 공기를 쐬려면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서 현관을 나서야만 한다. 그나마 옥상을 개방한 건물은 사람들이 하늘을 보고 바람을 쐬러 옥상에 올라간다. 하지만 거기에는 같은 회사 직원들이 가득하다. 익명성이 확보되지 못하니 편히 쉴 수가 없다.
  
일터, 판교 대신 성수동 선호한다는데
 
대전역 동쪽의 소제동에는 일제강점기 철도 기술자·역무원 등이 거주하던 관사촌이 남아있다. [사진 소제동 아트벨트]

대전역 동쪽의 소제동에는 일제강점기 철도 기술자·역무원 등이 거주하던 관사촌이 남아있다. [사진 소제동 아트벨트]

인간은 자연을 봐야 하며, 다양한 사람들 속에 섞여 숨어서 쉬어야 하는 존재다. 구내식당 밥보다는 골목길을 걷다가 골라 들어가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선호한다. 그게 더 자기주도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융합하게 된다.
 
판교에는 각 회사가 자신의 사옥에 갇혀 있다. 대전 대덕연구단지도 마찬가지다. 그곳에는 거대한 연구소 건물이 평균 2㎞씩 떨어져 산에 박혀 있다. 이러한 곳에서 학제 간 융합은 일어날 수 없다. 융합은 연수원에 모여서 2박3일 워크숍을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융합은 한 공간에서 공통의 추억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그 장소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날 때 만들어진다.
 
‘지식산업센터’라고 불리는 곳은 더 삭막하다. 구로디지털단지 등에 있는 이런 건물은 처음에는 ‘아파트형 공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영민한 개발업자들은 은근슬쩍 ‘지식산업센터’라는 지적인 이름으로 바꿨다. 막상 가 보면 그냥 닭장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무슨 융합과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겠는가?
 
관사촌을 전시·공연장으로 활용한 ‘소제동 아트벨트-오늘 꾸는 꿈’이 8월 23일까지 열리고 있다. [사진 소제동 아트벨트]

관사촌을 전시·공연장으로 활용한 ‘소제동 아트벨트-오늘 꾸는 꿈’이 8월 23일까지 열리고 있다. [사진 소제동 아트벨트]

파주출판단지나 상암동방송단지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이런 곳은 전형적으로 ‘공단’을 만들던 사고방식으로 도시를 만든 것이다. 출판이나 방송은 사람이 사는 것을 글과 영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그것을 만드는 곳은 사람이 사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있다. 출판이나 방송을 하려면 인쇄기나 방송장비 등을 놓을 자리가 크게 필요하니 널찍하고 저렴한 빈 땅에 만든 것이다. 이건 도시가 아니라 공단이다.
 
젊은이들은 왜 성수동을 좋아하는가? 그곳에는 그들이 체험해 보지 못한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성수동은 예로부터 자동차 수리공장 같은 크고 작은 공장이 위치한 곳이다. 이런 공장들은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필지가 300평가량으로 나뉘어져 있고 기둥 사이의 간격도 넓고 천정고도 높다. 이러한 중간 크기의 공간은 서울의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공간구조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아파트에서 태어났다. 30평 정도의 집에서 컸고, 나오면 아파트 동 간의 넓은 공간에서 놀았다. 공간적으로 스몰사이즈와 라지사이즈만 경험한 것이다. 이전의 삼청동이나 익선동은 엑스스몰 사이즈의 공간을 체험하게 해 주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그러다가 성수동은 미디엄 사이즈라는 또 다른 공간체험을 제공해 준 것이다. 성공적이라고 하는 일본의 츠타야서점은 자신들을 라이프스타일과 공간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천명했다. 우리가 21세기형 기업을 위한 스마트타운을 만든다면 제대로 된 공간과 그 공간이 만드는 이전에는 없었던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이고 융합이 일어날 것이다.
 
어느 제약회사에서 창의적인 사람의 특징을 조사했더니 우편배달부나 옆 부서 직원들과 쓸데없는 잡담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다양한 사람과 편하게 이야기를 할 때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창의적 융합이 일어나는 스마트타운을 만들려면 우연한 만남이 기분 좋게 일어나는 공간이어야 한다.
 
관사촌을 전시·공연장으로 활용한 ‘소제동 아트벨트-오늘 꾸는 꿈’이 8월 23일까지 열리고 있다. [사진 소제동 아트벨트]

관사촌을 전시·공연장으로 활용한 ‘소제동 아트벨트-오늘 꾸는 꿈’이 8월 23일까지 열리고 있다. [사진 소제동 아트벨트]

예를 들면 골목, 분위기 좋은 카페, 공원과 벤치, 도서관, 갤러리 같은 공간들이다. 이런 도시적 요소들이 사무공간과 융합이 되어 있는 곳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다음세대의 스마트기업타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공간적 재료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대전역 동측에 있는 소제동 같은 곳이다. 대전역 광장은 역의 서측에 위치한다. 그래서 반대쪽인 동측 편은 개발되지 못했다. 보존된 단층짜리 건물과 골목길은 수십 년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특별한 공간감을 제공한다. 마치 서울의 익선동 같은 분위기를 가진 이곳은 지난 몇 년간 카페 등이 들어서면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대규모 아파트 재개발이 계획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소제동에는 익선동식 상업화나 대규모 아파트 재개발 둘 다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도시를 없애고 하는 개발은 기존의 공간적 가치를 잃게 된다. 익선동 같은 힙플레이스가 되어 봐야 하나의 유행처럼 인스타그램의 세트장으로 소비되고 말 가능성이 크다.
 
대신 이곳은 새로운 기업타운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곳이다. 우선 대전역은 전국의 어디서든 1시간 이내에 찾아올 수 있다. 소제동은 그런 대전역에서 걸어서 5분이다. 게다가 대전에는 카이스트를 비롯한 많은 연구소의 우수한 두뇌들이 배후에 위치하고 있다. 소제동의 독특한 공간적 컨텍스트와 대전의 인재들이 합쳐진다면 차고창업이 일어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스마트타운이 만들어질 수 있다.
 
소제동에 스마트타운을 만들기 위해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소프트웨어인 건축법규만 바꿔 주면 된다. 정부에서 진행하는 스마트타운 프로젝트는 보통 예산이 50억 이하다. 그 정도로는 건물 하나 리모델링할 돈도 안 된다. 차라리 지자체나 국토부와 협의해서 그 지역의 건폐율과 주차장법을 완화해 주는 게 낫다.
  
광주·대구 사투리 융합 풍경 기대도
 
창고를 활용한 성수동 대림창고 카페. [중앙포토]

창고를 활용한 성수동 대림창고 카페. [중앙포토]

현행법으로는 건물을 부수고 나면 좁고 높은 건물을 짓고 1층에는 필로티주차장이 들어설 수밖에 없다. 사업성도 없고 또 다른 흉측한 개발이 된다. 대신 정부 예산 50억으로 근처에 주차장건물을 짓고, 그곳에 주차공간을 임대하는 것으로 주차장을 대체하게 해 줌으로 필로티 주차장을 없앤다. 건폐율을 완화시켜 단층으로 증축을 가능하게 해 준다.
 
서울의 익선동이 활기를 띤 이유는 한옥 중정의 불법증축을 ‘적당히’ 눈감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규모 민간자본이 들어왔고, 덕분에 다양한 가게들이 모인 동네가 된 것이다. 적은 돈으로 1층에 확장된 공간에 벤처기업부는 심사를 통해 가능성 있는 기업들을 잘 배치해 주면 된다. 쇼핑몰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게의 다양한 배합을 하는 MD구성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벤처기업부는 BT(바이오기술)연구소 옆에 IT연구소를 배치하고, 그 옆에는 디자인회사를 배치하는 것 같은 기업배합에 힘을 쏟으면 된다. 또한 대덕의 여러 연구소에서 젊은 연구원을 열 명씩 지원받아서 위성연구소를 소제동에 배치하는 것이다. 건폐율 주차장 완화를 해 주는 대신 건물주는 연간 임대료 인상률을 5% 이하로 낮추어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게 한다. 건물주의 재산권 보상은 동네가 좋아지면서 지가상승으로 받으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제동타운에서 광주사투리로 대구사투리 쓰는 이성에게 작업 거는 풍경이 연출된다면 대성공인 것이다. 뉴요커처럼 ‘소제러’라는 말이 생긴다면 대박인 것이다.
 
진정한 융합은 BT회사 연구원과 IT회사 연구원이 연애할 때 시작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소제동에만 국한된 시나리오가 아니다. 전국 어디든 독특한 공간구조를 가진 곳이 있고 우수한 인력의 접근이 쉬운 곳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지역마다 이런 개성 있고 매력적인 타운들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30여 개의 국내외 건축가상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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