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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죽음 안타깝지만 진실을 덮어서도 안 된다

믿기 어려운 비극이 벌어졌다. 1000만 시민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 7시간 만인 어제(10일) 자정 직후 끝내 시신으로 발견됐다. 박 시장이 당초 예정됐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잠적하기 직전 딸과의 통화에서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발언을 한 데다 공관에서 그가 남긴 친필 유서가 발견된 점으로 볼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전 비서의 성추행 고소 다음날
박원순 서울시장, 극단적 선택
피해자 향한 2차 가해 없어야

워낙 초유의 사건인 데다 사고 바로 전날까지 그럴만한 조짐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크다. 박 시장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서울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그린뉴딜 비전을 발표했다. 또 이날 저녁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부동산 문제 해법과 관련한 정책 협의를 하기도 했다.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자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의 한 사람으로 이렇듯 활기찬 행보를 이어가던 터라 이유 불문하고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무엇이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서울지방경찰청이 “전날 박 시장 비서를 지낸 7급 공무원으로부터 성(性) 비위 관련 고소장이 접수됐다”고 밝힌 만큼 이 사건에 따른 심리적 압박이 결정적 요인이었을 거라 추측할 뿐이다. 이 전직 비서는 고소인 조사에서 2016년 이후 최근까지 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속해온 성추행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텔레그램을 통해 박 시장으로부터 받은 사적인 사진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는 보도가 있다.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국내 1호 성희롱 사건인 이른바 ‘서울대 우 조교 사건’ 무료 변론을 맡는 등 평소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박 시장이 이런 추문으로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이 우선 충격적이다. 게다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여권 지자체장의 권력형 성범죄가 잇따라 드러나 법의 심판과 여론의 질타를 받는 와중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사안은 더욱 엄중하다. 비단 이들 지자체장뿐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 내에서 크고 작은 성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범여권에 권력과 맞물린 왜곡된 성도덕 의식이 만연한 게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갑작스런 죽음 앞에 측근들의 애석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나 성찰이 부족한 애도 역시 우려스럽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장례위원장을 자청하면서 성추행 의혹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주요 당직자와 여권내 다른 유력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모습은 자칫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유족 동의하에 공개된 유서에서도 박 시장은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면서 정작 피해자에 대한 언급이나 사죄는 없었다. 피해자는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조촐한 가족장 대신 장례 기간 5일의 서울특별시장(葬)을 치르기로 한 결정도 논란이다. 재직 시 사망에 따른 마땅한 예우라고는 하나 공무 중 사망이 아니라 개인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당에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외에 서울시 청사 앞에 별도 분향소까지 마련해 시민들의 대규모 조문까지 받겠다는 조치에도 비판이 따른다.
 
지난 2002년 출간한 책에 미리 쓴 유언장에서 박 시장은 “부음조차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살아생전 소박한 장례를 원했다. 5일장이 과연 고인을 위한 것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 우려로 모든 교회의 구역 예배 등 일체의 소모임이나 식사가 금지된 와중에 방역의 한 축인 서울시가 대규모 조문객을 받겠다는 결정 역시 충분히 숙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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