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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내러티브’로 채워진 곳, 박물관

바우하우스 이야기 〈39〉

‘국민국가’의 탄생 이야기가 시작된 루브르 박물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국민국가’의 탄생 이야기가 시작된 루브르 박물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공간은 ‘콘텐츠’다. ‘빈 공간’도 하나의 콘텐츠다. ‘비어있음’이라는 문화적 의미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 혹은 ‘무소유’라는 시대적 맥락이 없다면 ‘빈 공간’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극도로 절제된 철학적 태도가 아니라면 대부분 자신의 공간을 ‘물건’으로 채운다. ‘의미’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물건’으로 만들어진다.
 

혁명으로 탄생한 새로운 ‘국민국가’
그 내러티브가 교육된 곳이 박물관

다윈의 ‘진화론’이 주목받은 건
사회변화 설명하는 역할했기 때문

집을 짓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의미’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집을 짓고는 다들 후회한다. 집을 잘못 지어서, 혹은 예상보다 돈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다. 다 완성된 집의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왜 집을 지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삶의 내용이 부재함을 확인한다는 이야기다.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자신만의 철학 또는 ‘물건’이 있는 사람이 후회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어떻게든 ‘의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모든 ‘물건’은 나름의 이야기를 갖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 순간 앉는 의자라고 다 같은 의자가 아니다. 의자 등받이의 기울기는 시대마다 다르다. 아무나 ‘뒤로 자빠지는 의자’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계급과 등받이의 기울기가 달랐던 시대가 있었다. 팔걸이가 없는 의자는 여인들의 허리 아래가 과장된 스커트 때문에 만들어졌다. 엉덩이를 편하게 하는 쿠션이 의자와 결합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단순히 쾌적함 때문이 아니다. 새로 등장한 ‘쾌락’이라는 문화적 가치 때문이다. 인류의 ‘신체’에 대한 의식이 변한 거다.
 
이처럼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물건은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 즉 ‘내러티브(narrative)’를 동반한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 ‘의미’는 ‘내러티브’를 통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19세기와 20세기는 ‘시간의 시대’였다.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의미’를 시간의 흐름에서 찾고자 했다. 철학자들은 ‘존재’를 ‘시간’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심리학자들은 ‘개인의 발달’을 ‘나이’에 맞춰 구성했고, 역사학자들은 ‘사회발전’을 ‘단계론’으로 풀어냈다. ‘시간’의 흐름을 ‘발전’ ‘발달’ 혹은 ‘진화’로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간 내러티브’는 흥미롭게도 박물관이라는 구체적 공간에서 출발했다(21세기는 ‘공간 내러티브’의 시대다. 발전과 진보의 ‘시간 내러티브’가 그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공간의 출현은 새로운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이를 문화학자들은 ‘공간적 전환’이라고 부른다).
  
‘의미’는 ‘이야기’를 통해 구성된다!
 
박물관은 르네상스 귀족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수집물 전시로부터 출발했다. 당시 이탈리아 귀족들은 자신들의 수집벽에 따라 구성된 자기만족적 전시공간을 ‘스투디올로(studiolo)’라고 불렀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진기한 물건들로 확인하던 귀족들의 수집과 전시 취미는 메디치 가문의 우피치 박물관에서 양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에 들어선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메디치 가문이 그동안 모은 방대한 양의 전시품들이 진열돼 있다. 그 공간을 ‘갈레리아(galleria)’라고 불렀다. ‘과시’와 ‘전시’의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영어나 불어의 ‘캐비넷(cabinet)’ ‘살롱(salon)’ 또한 비슷한 기능의 공간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독일의 귀족들은 ‘분더캄머(Wunderkammer·경탄의 방)’ 혹은 ‘쿤스트캄머(Kunstkammer·예술의 방)’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온갖 예술품이나 신기한 물건이 가득 채워진 방에서 ‘경탄’이 절로 나온다는 뜻이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자 유럽 귀족들의 개인 박물관은 더욱 다양하고 놀라운 물건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박물관’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뭔가 부족했다. 체계적 ‘분류’가 없었다. 전시품들은 놀라웠지만, 전시의 원칙과 기준은 제각각이었다. 컬렉터의 개인적 안목에 의한 그저 신기한 물건의 집합소였다. ‘경탄’은 있었지만 ‘이야기’가 없었다. 재미없었다는 말이다.
 
시작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었다. 혁명군은 교회와 왕궁, 그리고 귀족들의 저택에 남겨진 수집품들을 보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청난 물건들이었다. 혁명정부는 몰수된 수집품을 죄다 루브르 궁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1793년 8월 10일, 루브르 궁전은 ‘공화국 중앙예술박물관(Muséum Central des Arts de la République)’으로 바뀌었고, 몰수된 수집품들은 일반인들에게 전시되었다. 수집품이 이제는 ‘공화국 국민들’의 것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주인이 바뀌었다면 그에 합당한 ‘내러티브’가 있어야 한다. 전시품들은 ‘공화국 국민들’의 것이 아니었다. 전시품들을 공화국의 이야기로 ‘분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혁명을 배신한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았다. ‘공화국 박물관’도 ‘나폴레옹 박물관(Musée Napoléon)’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박물관은 나폴레옹이 온갖 정복 전쟁에서 빼앗아온 전리품들로 채워졌다. 내러티브 측면에서 봤을 때, ‘나폴레옹 박물관’은 ‘공화국 박물관’보다는 훨씬 풍부한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황제의 이야기는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공화국’과 ‘국민’의 내러티브에 걸맞은 내러티브, 즉 공화국에 상응하는 전시품의 체계적 ‘분류’가 가능해지기까지는 한참 더 걸렸다.
 
왕·교회·귀족의 수집가적 안목과 자랑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분류의 토대는 ‘역사’였다. ‘역사’는 물론 고대부터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역사 서술의 주체와 대상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했다. 왕과 교회의 역사가 아닌 ‘국민’을 중심으로 한 역사여야 했다.
 
프랑스 혁명은 ‘국민국가(nation state)’라는 새로운 이야기의 주체를 탄생시켰다. ‘국가(state)’는 통치체제를 말하고, ‘국민(nation)’은 그 통치체제에 속한 구성원을 의미한다. 프랑스 혁명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한 사건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역사는 국민과 국가에 관한 이야기로 바뀌게 된다. 그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구성되고 교육된 곳이 바로 ‘박물관’이었다.
 
‘진화론’은 대표적인 시간 내러티브
 
박물관을 통해 구현된 새로운 역사는 발전과 진보의 ‘시간 내러티브’였다. 대항해시대를 통해 유럽인들은 지구상에 셀 수 없이 다양한 민족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게 되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타민족의 물건과 존재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설명되어야 했다. 체계적으로 분류되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비슷한 시기에 활발해진 고대 유물들의 고고학적 성과들도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분류되어야 했다. 바로 이때 나타난 사상이 ‘진화론’이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과 이를 확대한 ‘사회 진화론’은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국가’로의 사회변화를 설명해줄 새로운 내러티브가 간절했던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자신들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변화들의 ‘깔끔한 분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진화론’이라는 ‘직선적이고 누적적인 시간 내러티브’의 발명은 엄청난 지식혁명이었다.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1882)의 진화론은 생물학적 변화와 발전에서 ‘신’이라는 ‘비생물학적 요인’을 제거한 일대 사건이었다. 물론 다윈 이전에도 진화의 개념은 있었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와 발전은 어디까지나 신의 섭리와 목적 하에 가능한 것이었다.
 
‘발생 반복설’을 주장한 에른스트 헤켈

‘발생 반복설’을 주장한 에른스트 헤켈

다윈은 생물의 ‘적응’과 ‘자연선택’으로 변화를 설명했다. 신 없이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아주 새로운 형식의 ‘시간 내러티브’였던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에른스트 헤켈(Ernst H. Haeckel·1834~1919)의 ‘발생 반복설’과 결합하면서 19세기를 지배하는 대중적 지식으로 자리 잡는다. 특히 “개체발생은 그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헤켈의 ‘발생 반복설’은 이제까지 쉽게 분류되지 않던 제 현상들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정리해줬다. 식물·동물은 물론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은 이제 같은 방식의 ‘시간 내러티브’로 ‘분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발생 반복설’은 ‘새로운 것’의 출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논리적 결함을 갖는다. 개체가 매번 종족의 발생을 반복한다면 도대체 새로운 개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런데도 ‘발생 반복설’이 시대를 설명하는 대중적 지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설명의 개체와 그 개체가 속한 집단의 발달수준을 가늠하는 설명의 단순명료함에 있다. 19세기는 ‘분류의 시대’였다. ‘창조의 시대’가 아니었다(‘발생 반복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잘 기능하는 암묵적 지식이다. ‘인종 차별’의 토대다).
 
박물관의 수집품들은 그 발달과 진보의 수준에 따라 분류되기 시작했다. 도무지 ‘분류’할 수 없었던 회화, 조각과 같은 예술품에도 이 같은 진보의 논리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미술사’의 발명이다. 예술품도 이제 그 역사적 수준에 따라 ‘분류’되기 시작했다. 평범한 예술과는 구별되는 더 높은 수준의 ‘파인 아츠(fine arts)’도 생겨났다. 보다 진화된 예술품만이 박물관에 진열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박물관에 전시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문제는 도대체 누가 그 수준을 결정하고, 박물관에 전시를 허락할 수 있느냐는 거였다. 예술품의 수준과 전시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은 예술아카데미에 있었다. 예술아카데미는 예술 기법의 교육은 물론 미술품의 감정, 평가 및 미술사 서술의 권력을 독점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반 유럽의 각 도시에서 우후죽순 생겨난 제체시온들은 바로 이 박물관과 예술아카데미간의 감정-심사-전시의 ‘분류 카르텔’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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