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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의 순회 방문, 배터리 말고도 다른 이유 있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2일 충북 오창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찾아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2일 충북 오창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찾아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현대차그룹

지난 5월부터 매달 이어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삼성·LG·SK ‘배터리 순방’은 재계에선 이례적인 장면으로 회자된다. 비록 총수 간 만남이긴 해도 거래 관계에서 뚜렷한 우위를 가진 발주 기업이 부품 기업들을 돌아가며 만나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의 이 같은 행보는 친환경차·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미래차 시대’가 예상보다 앞당겨진 데 따른 비상 대응으로 풀이된다. 겉으로 드러난 이슈는 전기차와 그 안에 들어가는 배터리지만, 사실상 소프트웨어가 차를 지배하는 모빌리티 혁신이 현실화하면서 현대차가 서둘러 국내 정보기술(IT) 대기업과의 협업을 타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배터리 3사 최고…“현대차는 행운”

전문가들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3개사 방문 이유 중 하나를 당분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원하는 ‘양질의 배터리’가 부족할 것에서 찾는다. 배터리 분야 권위자인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는 “전 세계 모든 완성차 브랜드가 수십 개씩 전기차 모델을 내놓겠다고 하는데 배터리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현대차도 3사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3사 배터리 수준은 중국의 CATL보다 훨씬 우수하고 일본의 파나소닉과 비교하면 동급이거나 더 낫다”며 “장거리를 달리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가 핵심인데 이를 충족하는 건 한국 3사와 파나소닉 정도”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전기차 시장을 크게 키워 놨다. 유럽 주요국들의 코로나 경기 부양책은 전기차 보조금 확대에 맞춰져 있다. 이미 유럽의 6월 전기차 판매 대수는 약 8만대 수준으로 4~5월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7월부터 정책 효과가 본격화하면 올해 유럽의 전기차 판매는 10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 관계자는 “우수한 품질의 배터리 3사가 모두 한국기업이라는 게 현대차에는 행운”이라고 말했다.
 

전기차보다 시급한 ‘모빌리티 혁명’ 

하지만 정의선 부회장의 진짜 고민은 배터리 수급보다 모빌리티 역량 부족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저희가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는 분명하지만, 미래에는 자동차가 50%, 나머지 30%는 개인 항공기(하늘을 나는 차), 20%는 로보틱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서비스를 주로 하는 회사로 변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순방 배경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019년 10월 22일 서울 양재동 사옥 대강당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그룹의 미래 비전을 밝히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019년 10월 22일 서울 양재동 사옥 대강당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그룹의 미래 비전을 밝히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완성차 브랜드가 ‘갑’이었다면 자율주행차 시대에 자동차의 핵심 경쟁력은 IT기술”이라며 “테슬라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직접 생산하지만, 현대차의 경우 혼자서 할 수 있는 모빌리티 역량이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래차 혁신을 주도하는 테슬라는 기존 자동차 기업과 완전히 다른 사업 모델을 지녔다. 노동 인력이 필요 없는 완전 자동화 제조 시스템을 갖추고 자동차의 핵심축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옮겼다. 자율주행 기술인 ‘오토파일럿’과 전기차 전용 플랫폼 등으로 새 차를 사지 않더라도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것만으로 새 차와 동일한 성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또 테슬라는 1만2000기에 달하는 위성을 쏘아 올려 전 세계 곳곳까지 빠른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하려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건물 숲의 난반사 등을 고려하면 자율주행차가 보편화했을 때 테슬라의 기술이 앞설 수밖에 없다.
 

반도체·통신기술이 곧 車 경쟁력 

차량용 반도체는 곧 차의 두뇌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에 따르면 자동주행차가 본격 상용화하는 2022년에는 차 한 대당 약 2000개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이미지 센서, 디스플레이 구동칩, 신경망 프로세스유닛, 보안 집적회로 메모리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로선 배터리 분야 외에도 5G(세대) 이동통신을 비롯해 다양한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LG유플러스·SK텔레콤 등 국내 IT기업들과 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세계 전기차 시장 1위인 미국의 테슬라가 빠른 속도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해11월 보급형인 모델3가 국내에 출시된 후부터 판매가 급증해 1분기에는 벤츠와 BMW에 이어 국내 수입차 업계 판매 3위로 도약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테슬라 서울종로수퍼차저에 충전 중인 테슬라. 연합뉴스

세계 전기차 시장 1위인 미국의 테슬라가 빠른 속도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해11월 보급형인 모델3가 국내에 출시된 후부터 판매가 급증해 1분기에는 벤츠와 BMW에 이어 국내 수입차 업계 판매 3위로 도약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테슬라 서울종로수퍼차저에 충전 중인 테슬라. 연합뉴스

테슬라가 내년 초 상용화하겠다고 밝힌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 ‘로보택시’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고객이 차를 사서 운전하던 기존 방식 대신 자율주행차를 ‘구독’한다는 개념이다. 고 센터장은 “이제 글로벌 완성차들의 100년 전통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며 “수많은 메카닉 엔지니어로 움직이는 ‘기계 공화국’ 현대차의 생존 노력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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