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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김정은 건강에 쏠린 한반도 주변국 정보기관의 눈

고노 일본 방위상 ‘김정은 건강 의심’ 발언 왜 나왔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사망 26주기(8일)를 맞아 시신이 있는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전했다.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사망 26주기(8일)를 맞아 시신이 있는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전했다. [뉴시스]

최고지도자의 건강은 어느 국가, 어떤 체제에서나 중차대하다. 특히 북한에서는 공동체의 명운이 걸린 사안으로 받아들인다. ‘수령 유일 지배’라는 시스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유고가 곧 북한 체제의 위기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집권 8년 차인 김정은 위원장은 건강 문제와 관련해 몇 차례 불안한 모습을 노출시켰다. 지난 4월 중하순 벌어진 ‘사망설’과 ‘유고설’ 소동은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꼭 나와야 할 자리(4월 15일 김일성 생일 추모행사)에 불참하면서 들불처럼 번진 소문은 유력 글로벌 미디어인 CNN까지 대형 오보를 내는 상황을 연출시켰다. 3주 만에 공석 등장으로 “건재를 과시했다”는 평가를 받은 김정은의 건강 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 주변 국가의 정보기관들이 최근 은밀한 첩보 수집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어떤 단서를 포착했기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인지 추적해봤다.
   

일 정보당국 요원 서울 급파
김정은 ‘이상징후’ 포착했나
‘유고설’ 일단 잠재웠지만
건강 관련 미심쩍은 움직임

“김정은 안위와 관련해 중대한 정보가 있는지 확인 차 방문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신 내용이 있으신지 대답해 주십시오.”
 
베테랑 대북 정보 관계자 L씨는 지난달 중순 서울에 온 일본 정보당국의 오랜 지인과 만났다. 일본 측의 관심사는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특이한 대목이 있었다고 한다. 마치 뭔가 중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이를 확인하려 방한한 듯했다. L씨는 “위성을 통해 감청한 단편적이지만 결정적인 첩보의 의미를 파악해 ‘시인된 정보’(사실관계가 확인됐다는 의미)로 만들어보겠다는 의도가 감지됐다”고 말했다. 일본이 서울에서 활동하는 요원들 외에 복수의 대북정보 관계자들을 도쿄에서 직파한 사실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고 한다.
  
고노 방위상 “김정은 건강 의심”
 
열흘 정도 흐른 지난 6월 25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방위상은 김정은 건강과 관련해 “의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 체류 중인 외신 기자들의 모임인 외국특파원협회(FCCJ) 초청 기자회견에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거나 김정은 건강에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밝힌 고노 방위상은 기자들의 추가 질문에 “정보 사안을 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한국의 베테랑 대북 정보 관계자들은 고노 방위상의 이런 언급에 대해 “흘려 듣기에는 찜찜하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내각조사실 등 일본 정보 담당 부처를 중심으로 김정은 건강에 대한 첩보수집 활동이 증가한 직후 고노 발언이 나왔다는 점에서다. 불과 두 달 전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휩쓸고 지나갔는데, 재차 이를 언급한 고노 방위상의 발언 배경을 둘러싼 다양한 관측이 나왔다.
 
김정은 관련 서울발 첩보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건 일본뿐만이 아니다. 중국과 대만·몽골 등이 활발한 정보 수집에 나서고 있다는 게 우리 방첩 담당자들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중국의 경우 북·중 친선관계를 토대로 정보 교류가 이뤄지고 북한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최고지도자의 건강이나 권력 핵심의 동향 등 민감한 정보는 ‘거래’ 대상이 아니란 얘기다. 전직 고위 간부는 “북·중 간에는 통보제도라는 시스템이 있어 웬만한 정보는 상대측에 건네준다”며 “이 때문에 상호 간에 평양과 베이징을 무대로 정보전을 펼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우리가 중국 측에 신속히 관련 정보를 전해줬고, 이에 대해 중국 정보 당국이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대만의 경우 군 정보기관이 강세를 보이고 있고, 정교하고 깔끔한 일 처리로 국제 정보기관 사이에서 “닌자(忍者)처럼 일한다”는 평을 받는다. 몽골의 경우도 서울을 무대로 북한 관련 정보 수집에 공을 들이고 있어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미, “김정일 3년 내 사망” 적중
 
미국의 경우 대북 감시장비와 휴민트(HUMINT,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수집)를 무기로 북한 체제의 내부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김정은 건강은 관심 순위 1위로 꼽힌다. 2008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순환기계통 이상으로 유고 상태에 빠졌다 그해 11월 복귀했다.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서울 거점 I.O(intelligence officer, 정보 수집 요원)들은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3년을 넘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CIA를 비롯한 미 정보 당국의 정확한 판단을 가능케 한 정보 원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물론 김정은의 건강 문제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다. 북한이 철통 같은 보안을 유지하기 때문에 대부분 베일에 싸여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열차역에서 담배를 피운 김정은 위원장의 꽁초를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재떨이를 받쳐가며 챙긴 것도 자칫 타액 등을 통한 건강 또는 DNA 정보가 새나가는 걸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적성국이나 비우호 국가를 방문한 대통령이나 최고지도자급 인사의 배설물이나 모발 등을 고스란히 챙겨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창나이인 36살 청년을 두고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건 무엇보다 불안정한 김정은의 건강 이력 때문이다. 2010년 9월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공개 석상에 처음 등장한 김정은은 건강해 보이는 ‘후계자’였다. 하지만 173cm 정도 키에 체중이 90kg 정도였던 그가 집권 이후 130kg 이상 되는 상황으로 급격히 비만해지면서 우려가 제기됐다. 공개 활동 시 다리를 절거나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였고, 공장이나 협동농장 참관 시 전동카트를 이용하는 경우까지 나타났다. 결국 2014년 9월 건강 이상이 생긴 그는 40일간 공백을 보였고, 다시 등장했을 때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스트레스와 흡연·가족력 문제
 
의료 전문가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과도한 흡연, 가족력을 김정은 건강의 3대 위협요인으로 꼽는다. 촘촘한 대북제재와 풀리지 않는 남북 및 북·미 관계, 그리고 경제난으로 인해 자신의 건설 프로젝트마저 차질을 빚는 상황은 공개회의에서 간부들을 질책하는 영상을 통해 드러난다. 줄담배를 피우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내 말을 도통 안 들으려 한다”는 부인 이설주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이 모두 심근경색으로 급작스레 사망했다는 점도 김정은 건강에 대한 우려를 높인다.
 
지난봄 사망설까지 나왔던 김정은 위원장은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건재를 과시했다. CNN뿐만 아니라 한국의 일부 매체와 전문가, 탈북 인사들이 잘못된 정보 분석과 오보 사태로 뭇매를 맞았다. 부정확한 정보와 분석으로 북한과 김정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하려 했다는 질타도 받았다. 하지만 이후 행보는 수상쩍은 대목이 적지 않다. 당 중앙군사위 확대 회의(5월 24일 보도)→정치국 회의(6월 7일)→중앙군사위 예비회의(6월 23일)→정치국 확대 회의(7월 2일)→김일성 사망 26주 참배 행사(7월 8일) 등 최소한의 동선만 드러냈다. 그나마 일부는 관련 영상도 공개 않았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김정은 건강문제를 둘러싼 관련국 정보기관의 첩보전은 지금부터가 진검 승부”라고 말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 최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유고설에도 국정원 침묵…"정보위 가동해 국민에 알려야”
북한 최고지도부 핵심 인사의 신상 문제는 남북관계나 한반도 정세에 큰 파장을 부를 요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건강이나 여동생 김여정의 위상 변화, 부인 이설주의 동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선 성역처럼 여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8년 평창 겨울 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특사로 온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육성이 공개되는 걸 막으려 당국이 오디오를 삭제하고 영상을 언론에 제공했다가 ‘북한 눈치 보기’라는 논란이 일었다.
 
지난 4월 김정은 건강 이상설로 나라 안팎이 시끄러웠지만, 대북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은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통해 “이상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이미 일파만파였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어느 여당 의원은 국정원 보고 한번 요구 않다가 김정은 등장 이후 ‘가짜뉴스 때리기’에만 몰두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이런 모습을 두고 이전 정부 때보다 퇴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7년 2월 황장엽 노동당 비서 망명 당시 정부는 언론사 편집·보도 국장을 한자리에 모아 민감한 관련 내용을 전하며 보도협조를 요청했다. ‘보안’을 이유로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정부 당국자들이 정작 정보관리에 소홀한 경우도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생모 고용희가 프랑스 파리에서 수술 중 숨진 정보를 쉬쉬하던 고위 당국자는 술자리에서 안줏거리 삼아 이를 발설해 언론에 뒤늦게 보도됐다.
 
국익에 긴요한 대북정보가 아니라면 국회 정보위 등을 통해 관련 사안을 국민이 믿을 수 있게 공개하거나, 청와대와 국정원이 언론에 설명해 대형 오보 사태를 막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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