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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는 일부다처제? 욕심 부리다 '반신불수 저주' 걸린다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를 비판할 때 종종 ‘일부다처제’를 거론합니다. 부족 국가도 봉건 국가도 아닌 요즘에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막상 이슬람교 신자를 만나서 물어보면 대답이 좀 다릅니다. “일부다처는 아주 소수에게만 해당한다”고 반박합니다. 이슬람교의 일부다처제, 그 뿌리와 현실은 어떤 걸까요. 정희윤 기자가 묻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답합니다.  

[백성호의 현문우답]

 
 
이슬람 창시자는 마호메트인가, 무함마드인가.
 
“영어로 하면 마호메트, 아랍어로 하면 무함마드다. 한 사람의 똑같은 이름이다. 이슬람 경전도 마찬가지다. 영어로 하면 ‘코란’, 아랍어로 하면 ‘꾸란’이다. 요즘은 ‘꾸란’이란 아랍어 표기를 더 많이 쓴다.”
 
일부다처제에 대해 알아보려면 시대적 배경도 중요하다. 이슬람교는 언제 생겨났나.
 
“무함마드는 1400년 전 인물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다. 신라는 원광법사가 화랑에게 세속오계를 전할 때다. 고구려는 중국 수나라가 침략해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있을 때다. 또 백제는 서동요의 주인공인 무왕이 왕위에 즉위할 때였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 전이다. 이런 시기에 이슬람교가 창시됐다.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만들기 전에는 아랍 남성이 거느리는 여성의 수에 제한이 없었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오른쪽)가 신자들을 향해서 설교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오른쪽)가 신자들을 향해서 설교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라고 했다. 당시 아랍권은 어땠나.
 
“아랍은 사막 지역이다.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각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오아시스에는 물도 있고, 식물 재배도 가능했다. 당시 아랍권은 부족간에 오아시스를 뺏고 빼앗기는 전쟁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부족간 약탈과 살육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가령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정복하면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는 모두 노예로 만들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아랍의 남성이 거느릴 수 있는 여성의 수에 제한이 없었다. 이슬람교가 생겨나면서 비로소 ‘아내를 4명까지 둘 수 있다’는 제한이 생겼다.”
 
아내가 4명이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줄어든 숫자라니 뜻밖이다.  
 
“꾸란 4장3절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너희가 고아(고아 소녀)들을 공정하게 대처하여 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좋은 여성과 결혼하라. 두 번, 혹은 세 번, 혹은 네 번도 좋으니라.’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을 무슬림이라고 한다. 무슬림들은 꾸란을 ‘하느님의 계시’라고 생각한다. 이 구절을 근거로 이슬람교에서는 아내를 4명까지 두는 게 허용된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무슬림 남성들은 다 아내가 여러 명인가.
 
“아니다. 지금은 무슬림의 99%가 일부일처제라고 보면 된다. 일부다처를 하는 무슬림은 소수에 불과하다. 사실 ‘꾸란’도 일부다처를 권하는 게 아니라 ‘일부일처’를 권하고 있다.”
1370년 된 현존 최고의 이슬람 경전. 영국에서 발견됐다. [중앙포토]

1370년 된 현존 최고의 이슬람 경전. 영국에서 발견됐다. [중앙포토]

 
꾸란이 아내를 4명까지 허용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꾸란’이 일부일처를 권한다는 건 무슨 말인가.
 
“꾸란 4장3절 다음에 이런 구절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공평을 베풀어 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한 여성이거나 너희 오른손이 소유한 것이거늘, 그것이 너희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것보다 적합한 것이라.’  다시 말해 ‘여러 아내를 공평하게 대할 수 없다면 한 여성과만 결혼해라’. 이런 말이다.”
 
아내를 공평하게 대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일부다처를 하려면 각 아내에게 각자의 집이나 방이 있어야 한다. 또 남편은 모든 아내에게 똑같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만약 한 여자에게 선물을 줬다면, 다른 모든 여자에게도 비슷한 급의 선물을 줘야만 한다. 돈 문제, 애정의 정도, 부부관계도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공평하게 해야 한다. 무슬림들은 일종의 ‘종교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꾸란에는 이렇게 돼 있다. ‘알라는 심판의 날에 아내들을 불공평하게 대한 남편을 반신불수로 만들 것이다’. 무슬림은 꾸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긴다. 그러니 무시무시한 말이다. 코로나 시국에는 아랍권에서 이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천사 가브리엘이 천상 여행을 하기 전에 무함마드의 가슴을 닦아주고 있다. 16세기 작품이다. [중앙포토]

천사 가브리엘이 천상 여행을 하기 전에 무함마드의 가슴을 닦아주고 있다. 16세기 작품이다. [중앙포토]

 
왜 문제가 됐나.
 
“일단 4명의 아내를 두려면 돈이 아주 많아야 한다. 또 집도 여러 채 있어야 한다. 아내들이 각자 자신의 집이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 사태로 인해 중동에서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가령 4명의 아내가 있다고 하자. 그럼 4일마다 그 집들을 돌아가면서 남편이 자야 한다. 그런데 통행금지 때문에 이동할 수가 없게 됐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이슬람법 율법 학자에게 종교적 해석을 요구하는 남편이 꽤 있었다.”
 
궁금하다. 이슬람 학자는 뭐라고 답을 했나.
 
“남편이 네 집 중 한 집에만 머물러야 한다면, 다른 아내들의 허락을 모두 받아야 한다고 했다. 만약 수용하지 못할 경우 해당 여성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내에게 공평하게 대한다’라는 게 정말 엄격한 기준이다. 또 이런 해석도 있었다. 아내들이 동의할 경우, 코로나 시국에 어느 집에 머물지를 아내들의 제비뽑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꾸란 4장4절에는 이렇게 돼 있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각 아내를 공정하게 대할 자신이 없다면, 아내를 한 명만 거느리도록 해라. 그러는 게 더 낫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이라는 대목이 코로나 시국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거다.”
이슬람교 성지인 메카를 찾아서 기도하고 있는 무슬림들. 일상에서도 무슬림들은 메카를 향해서 기도르 한다. [중앙포토]

이슬람교 성지인 메카를 찾아서 기도하고 있는 무슬림들. 일상에서도 무슬림들은 메카를 향해서 기도르 한다. [중앙포토]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무슬림들. 사원 안에서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평등하다. 남들과 똑같은 공간에서 엎드리며 기도를 해야 한다. [중앙포토]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무슬림들. 사원 안에서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평등하다. 남들과 똑같은 공간에서 엎드리며 기도를 해야 한다. [중앙포토]

 
무슬림의 99%는 일부일처라고 했다. 그래도 일부다처를 하는 1%가 남지 않나. 요즘 기준으로 보면 ‘일부다처’는 무척 낯설다.
 
“무함마드 당시에는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남자들이 많이 죽고, 고아와 미망인이 많이 늘었다. 여성은 대외적 경제 활동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먹고 살 길이 없었다. 일부다처제가 일종의 시대적 산물인 측면도 있다. 이슬람 쪽에서는 이렇게 반박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일부일처’라고 하지만 사실상 ‘일부다처’다. 왜냐하면 바람을 피우거나, 돈을 주고 여자를 사거나, 첩을 두거나, 숨겨둔 정부가 있거나. 이런 경우가 꽤 있지 않나. 그런데 이슬람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가령 일부다처라 해도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아내로서 법적인 권리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강제에 의한 결혼은 이슬람 사회에서는 철저하게 무효로 인정된다.”
 
그럼 무함마드는 어땠나. 무함마드의 아내는 몇 명이었나?
 
“무함마드는 25세 때 40세인 카디자라는 과부와 결혼을 했다. 그녀는 부유한 상인이었다. 그런데 무함마드보다 먼저 죽었다. 무함마드는 50세까지 혼자 살았다. 그러다 50세부터 재혼을 하는데, 전승에 따르면 모두 13명의 아내가 있었다고도 한다. 한 명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과부이거나 이혼녀였다. 그런데 그 한 명이 아이샤라는 여성인데, 53세인 무함마드와 결혼할 때 9살이었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이슬람교 사원의 바깥 모습과 실내. 창에 새겨진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다. [중앙포토]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이슬람교 사원의 바깥 모습과 실내. 창에 새겨진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다. [중앙포토]

 
9살 여자 아이랑 결혼했다니. 요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무함마드의 절친이자, 무함마드 사후 제1대 정통 칼리프가 된 아부 바크르의 딸이었다. 일종의 정치적 동맹, 그 연장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꾸란에 의하면 아내를 4명까지 둘 수 있다고 제한돼 있다. 그런데 무함마드는 왜 그렇게 아내가 많았나.
 
“이슬람에서는 그건 신의 계시였다고 설명한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도 모두 일부다처였다고 말한다. 서구 사회에서 주로 비판하는 게 9살짜리 여자 아이와 결혼한 일, 그리고 양자가 있었는데 그 양자의 부인을 무함마드가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점이다. 그 둘을 갖고 주로 무함마드를 비판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7세기 아라비아 사막 부족의 관습이 녹아있는 측면도 있으리라 본다. 요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무함마드가 기도를 하다가 천사 가브리엘을 만나고 있다. [중앙포토]

무함마드가 기도를 하다가 천사 가브리엘을 만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럼 이슬람교와 아랍 사회, 이 둘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는 말인가.
 
“저는 그렇게 본다. 아랍 사회에는 사막에 있던 부족 사회의 전통과 관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는 측면이 있다. 일종의 부족사회적인, 봉건사회적인 사고와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그건 종교와는 다른 거다. 이슬람교와 별개의 이야기다. 우리도 조선시대 때는 사실상 일부다처제가 있었지 않나. 사대부 양반들은 상당수가 정실 부인 외에 첩을 두었으니까 말이다. 그건 서구사회도 마찬가지였다. 무함마드가 살았던 시대는 1400년 전이니까 말이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ㆍ정희윤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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