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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칼럼] 삼성전자 액면 분할과 이재용 부회장의 운명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에 불기소 및 수사중단 권고를 내리면서 2018년 2월 1일의 한겨레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이 기사는 삼성전자 주식 50:1의 액면분할에 대해 “법원 판결을 앞두고 준비된 카드”라며 “황제주를 국민주로 바꿔 재판부와 일반 국민들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2년5개월 뒤를 내다본 놀라운 통찰력이다.
 

기소 남용과 무조건 항소·상고는
정치 반대자 괴롭히고 고통 줄 뿐
공정한 재판, 소송 당사자 보호란
원래 목적 내팽개친 사법적 린치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240만~250만원으로 일반 투자가들이 접근하기 힘들었다. 외국인(53%)과 오너 일가(20%),국내 기관투자가(17%)에 비해 개인 지분은 고작 3%였다. 국민연금(지분 9.7%)은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려 했다. 해당 기사는 “삼성이 액면분할로 개인투자자를 끌어들여 외부의 경영간섭에 맞서고 ‘이재용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예언은 쉽게 실현되지 않았다. 액면분할 이후에도 반도체 특수로 주가가 5만~6만원대 고공행진을 하면서 개인은 입질을 망설였다. 올해 초 코로나 19 사태로 극적인 반전이 생겨났다. 이른바 ‘동학 개미’들이 4만원대 초반까지 곤두박질한 삼성전자 주식을 긁어담은 것이다. 올 들어 개인의 삼성전자 순매수 규모는 8조8660억원으로 압도적 1위다. 소액 주주가 5배나 폭증하면서 말 그대로 ‘국민주’ 반열에 올랐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은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엇갈린다. 금융위와 증권선물위·금감원 등은 “분식회계”라고 정리했지만, 한국공인회계사회와 한국 회계학회는 “새로운 국제 회계기준(IFRS)에 맞게 제대로 처리됐다”는 입장이다. 당연히 일반인들은 어느 쪽이 맞는지 알기 어려운 노릇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사태는 정치적 여론전으로 번져갔다.
 
검찰은 1년7개월 동안 430여 건의 소환조사, 50차례가 넘는 압수수색을 통해 여론전을 펼쳤다. 두 개의 절대무기로 망신을 주면서 파렴치 범죄로 몰아갔다. 하나는 상속세 61억원만 내고 삼성그룹을 물려받았다는 해묵은 논리다. 또 하나는 삼성바이오를 압수수색해 공장 바닥에 숨겨놓은 컴퓨터 서버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엄청난 스모킹 건을 발견한 양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요즘 포털 사이트의 댓글만 봐도 사회 분위기는 검찰의 기대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진보 매체 기사에는 여전히 “돈의 힘이 무섭다” “역시 삼성공화국” 같은 댓글이 달리지만 소수다. 대다수의 기사에는 “이 부회장 좀 그만 놔둬라” “그렇게 오래 팠는데 영장 기각되고 불기소하라고 얻어터졌으니,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댓글이 넘쳐난다. 예전 같으면 “삼성이 댓글 부대를 풀었나?”라는 음모론이 터져나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 증권가에선 “동학 개미들이 이 부회장의 호위무사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댓글에서 2030의 톡톡 튀는 감성이 묻어나는 것도 동학 개미들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경영이 안정돼야 주가가 오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삼성전자 액면분할은 양날의 칼이었다. 오너 입장에선 개인 주주가 적을수록 유리하다. 외부 압력을 덜 받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바로 직전 주총까지 “액면분할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삼성은 액면분할이라는 극약처방으로 최악의 반(反)기업 정서와 고립에서 벗어나는 분위기다. 구속영장은 기각되고 불기소·수사중단 권고까지 얻어냈다.
 
다급해진 검찰은 기소를 위해 온갖 구실을 찾고 있다. 지난달 영장담당 판사의 결정문은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검찰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기각 사유가 핵심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피의자의 책임 유무는 재판 과정에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구절을 발췌해 신줏단지처럼 모신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구속됐을 때 주가가 더 많이 올랐다”는 카드도 빼들었다. 하지만 당시 영업이익 50조~60조원의 반도체 특수는 쏙 빼놓는 것을 보면 동학 개미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
 
검찰이 곧 이 부회장 기소 여부를 결정할 모양이다. 수사심의위는 검찰의 기소 남용을 막기 위해 문재인 정권이 마련한 장치다. 그런데도 이제는 권고는 권고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이런 분위기로 보면 검찰이 무리해서라도 기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불기소하면 무리한 수사를 자인한다는 두려움도 어른거린다. 하지만 무리한 기소로 무죄 판결이 나오면 더 큰 재앙이다.
 
요즘 웬만한 사건들은 모두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되고 있다. 툭하면 여야와 시민단체들이 성명을 쏟아낸다. 검찰도 무죄나 집행유예 판결이 나오면 항소부터 하고 보는 게 공식처럼 돼버렸다. 검찰 측 비용이야 혈세로 충당되지만 상대방은 변호사 비용 대느라 허리가 휘고 오랜 기간 고통에 시달린다. 일종의 사법적 린치다. 어느새 검찰 기소와 3심제 등 우리의 사법절차는 공정한 재판과 소송 당사자의 이익 보호라는 원래 목적이 증발되고, 정치적 반대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변질된 게 아닌지 의심받고 있다. 법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회가 법으로 고통을 주는 나라는 법치국가가 아니다. 이상한 나라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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