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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의 밀담] 전쟁을 멈춘 정전협정, 평화도 승리도 없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1953년 7월 27일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금색 펜을 들어 정전협정문에 서명했다. 만년필로 유명한 파카가 이날을 위해 특별히 만든 펜이었다. 클라크 사령관은 서명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기쁨을 느낄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정전협정에서 희망을 얻는다면, 끊임없이 경계하고 노력해야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인식으로 그 희망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남북관계
손에 잡힐듯 빠져간 한반도 평화
평화 노력하면서도 늘 경계해야

미국의 역사 저술가인 T.R. 페런바크는 『이런 전쟁』에서 정전협정의 효력이 발휘한 27일 오후 10시 당시 상황에 대해 “전선을 따라 자리한 고지들이 고요해졌다. 바다에서는 회색빛 찬 북한 바다에 나가 있던 배들이 뱃머리를 돌렸고, 활주로에는 은빛 항공기들이 조용히 서 있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더 이상 전쟁은 없었다. 그러나 평화도 없었다. 승리도 없었다. 이것은 정전으로 불렸다.”
 
전쟁도, 평화도, 승리도 없는 정전체제가 27일 67주년을 맞는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북관계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초현실주의 회화와 같을지도 모른다. 모순과 이율배반으로 뒤덮였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은 남북의 적대·대결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클라크 사령관은 판문점 조인식에 참가하지 않았고, 유엔군 회담 대표가 묵었던 문산 숙소에서 따로 서명했다. [사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1953년 7월 27일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클라크 사령관은 판문점 조인식에 참가하지 않았고, 유엔군 회담 대표가 묵었던 문산 숙소에서 따로 서명했다. [사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반면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부터 2018년 9·19 평양 공동선언까지 남북합의는 화해·협력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쯤 북한이 서해 연평도에 포격을 퍼부을 무렵, 연평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개성공단에선 한국이 자본을 대고 북한이 노동을 제공한 공장에서 열심히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한반도 평화는 남북관계의 종속변수처럼 돼 버렸다.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으로 바뀌면 꽃피지만, 적대·대결로 들어서면 곧 시든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에선 전쟁의 위기가 높아졌다. 그러다 2018~2019년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두 번의 북미회담으로 평화의 시대가 오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난달 북한이 개성공단 남북 공동연락소를 폭파하고, 9·19 남북 군사합의 무력화를 발표했다. 한반도의 평화 체제는 손에 잡힐 것만 같았는데, 금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양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막판에 발을 빼면서 토대마저 허물어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한다고 밝혀 언제라도 다시 공세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남북관계를 되돌리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16일 북한은 개성공단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

지난달 16일 북한은 개성공단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

현실은 이처럼 냉엄한데도, 정부와 여당에선 딴소리가 들린다. 6·25전쟁 7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이 “정전협정의 종식을 통한 유엔사의 역할 변화”를 언급했다. 다음 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더 강화해 당사국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며 조 차관에 화답했다. 남북관계가 파탄의 위기를 맞은 이유가 정전체제 탓이라는 게 이들 발언의 기본 인식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남북관계가 다시 어려워진 책임은 핵·미사일을 좀처럼 놓지 않으면서 대북 제재를 먼저 풀려는 북한에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청와대 안보실 1차장을 지낸 이상철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은 『한반도 정전체제』에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그 필요성과 정당성이 충분하다”면서도 “그렇지만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정전협정의 이행·준수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평화체제의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데도 ▶정전협정 종식 ▶유엔사 역할 변화 ▶종전선언을 꺼내는 것은 선후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북한은 한국 안보의 조그만 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1968년 무장공비가 휴전선을 넘어 청와대를 습격해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고, 76년 판문점 경비를 위해 미루나무를 자르던 미군 장교를 도끼로 살해했다. 2010년 북한 잠수정이 한국 영해로 침투해 천안함을 공격했다. 북한은 자신들이 유리하다면 망설임 없이 정전협정뿐만 아니라 남북합의도 무시했다. 남북대화나 남북관계 개선은 굳건한 안보 위에서나 가능하다는 점은 역사의 교훈이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의 호의와 변화에만 바라보는 ‘천수답(天水畓)’처럼 돼 버릴지도 모른다.
 
최근 외교안보 라인 개편의 방점은 남북대화에 찍혀있다. 정부는 앞으로 꽉 막힌 남북 대결국면을 소통과 대화로 뚫으려는 노력을 강화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분석이 아닌 희망과 낙관에 기반을 둔 대북 정책의 종착역은 결국 파국일 가능성이 크다. 73년 전 클라크 사령관은 북한의 흉계를 꿰뚫어 봤다. 늘 경계하면서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놓지 말라는 게 그가 경고를 통해 후세에게 남긴 가르침일 게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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