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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1+1 행사제품 환영…편의점과 냉장고의 닮은 점

기자
심효윤 사진 심효윤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6)

이십대 시절 나는 취업 대신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용감한 선택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던 걸까. 내가 논문과 씨름하는 동안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해서 월급을 타기 시작했다. 부러웠고 나만 뒤처진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학위를 받는다고 뚜렷한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았다.
 
꿈을 좇아 무모한 도전을 했던 시절, 나는 편의점에 자주 들렸다. 편의점에 가면 마음이 편했다. 책값과 등록금, 영어 학원비에 눈치 없이 돈은 계속 들어가는데, 아낄 수 있는 건 식대와 시간뿐이었다. 편의점에 들러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학원이나 도서관을 다녔다. 편의점이 곁에 있어서 고마웠다. 컵라면에 삼각김밥 하나면 족했다. 덕택에 한 끼를 저렴한 가격으로 때울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 내일 또 찾아오고 싶지는 않았다. 벗어나고 싶었고,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편의점 인생을 졸업하고 싶었다.
 
일본에서는 18년 동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살아온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무라타 사야카. 그녀는 편의점 인생을 담은 자전적 소설을 발표했다(한글 번역본은 『편의점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살림출판사에서 발행했다). 소설 속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모태솔로에다 대학 졸업 후 취직 한번 못해보고,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취업과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사람과 구분된다. 그녀 주변의 ‘보통’사람은 그녀를 사회 부적응자로 재단하고, 별종인 그녀를 재판하고 마음대로 그녀의 인생에 개입하려 든다.
 
그녀는 삼시 세끼를 편의점에서 때운다. 아침에 출근해 편의점 빵을 먹고, 점심은 편의점 주먹밥이나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저녁도 피곤하면 그냥 가게 음식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녀의 몸 대부분이 편의점 식료품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녀 자체가 편의점이라는 세계 속 부품처럼 보인다. 그녀는 그런 삶에 만족해한다. 평소에는 보통사람처럼 살 수 없어서 힘들지만, 적어도 편의점에서는 ‘점원’으로 연기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인간』의 작가, 무라타 사야카. [사진 살림출판사]

『편의점 인간』의 작가, 무라타 사야카. [사진 살림출판사]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이 작품으로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고도 편의점에서 파트타임으로 계속 일하고 있다.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일할 때가 편하다고 한다. 그녀와 달리 나는 편의점을 졸업했고 보통 사람의 길로 들어섰다. 운이 좋게 취직도 하고 결혼도 했다. 그녀가 말하는 ‘보통’사람이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편의점에 발길을 끊게 되면서 무관심해졌다.
 
내가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다시 관심 두게 된 것은 ‘냉장고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다. 냉장고와 편의점은 생각할수록 닮은 게 많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개발되지 않았다면 편의점의 탄생도 없었을 것이고(편의점의 꽃인 냉동식품도 마찬가지다), 둘 다 편리한 생활을 만들어주기에 그것을 맛본 이상 계속해서 수요가 증가한다는 점, 1+1 행사제품은 환영받는다는 점, 인구가 증가할수록 가짓수가 계속해서 뻗어간다는 점, 그리고 편리할수록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더 큰 욕망을 만들게 한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혼밥과 편의점. [그림 김자혜]

혼밥과 편의점. [그림 김자혜]

 
편의점을 주목하니 자연스럽게 나와 같은 처치에 놓인 후배에게 눈길이 갔다. 세월이 흘렀어도 더 나아진 게 없는 세대다. 이들은 취업준비생으로 대학 졸업과 함께 사회에서 배제되는 계층이다. 대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끼니를 거르거나 간단하게 때우는 정도의 식사를 한다. 15분을 넘기지 않는 ‘번갯불 식사’라는 단어가 이들의 혼식을 대변한다. 혼식으로 애용하는 메뉴의 1위는 단연 라면이다. 순서대로 백반, 빵, 김밥, 그리고 샌드위치가 그 뒤를 잇는다.*
 
당장 수중에 돈이 없으면 먼저 식사비부터 지출을 줄이게 된다. 수입이 없으니 아르바이트는 해야 하고, 일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이 없으면 자격증이나 시험 준비에 소홀해지고, 결국에는 취업에 실패한다. 취업을 못 했으니 수입은 없고, 다시 식사를 거르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20~30대 청년에게는 상당히 보편적인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유*

 
[자료 심효윤]

[자료 심효윤]

 
그들에게는 한 끼의 따뜻한 ‘집밥’이 꿈이요, 맛집 탐방은 사치가 된다. 빈곤한 청년에게 한 끼는 차려 먹는 것이 아니라 때우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없는 돈과 시간을 쪼개서 일도 하고 학원도 다녀야 하니 식사는 혼자 최대한 서둘러 먹어야 한다. 편의점은 혼밥의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다.
 
음식을 먹는 건 소비의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어디에서 먹는지에 따라 우리의 처지, 경제적 신분, 더 나아가 사회 계급을 말해준다.* 세상에서 먹고 마시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식품은 매일 지속해서 소비할 수밖에 없으니 끊임없이 자기를 인식하게 된다. 정말 말 그대로 ‘You are what you eat’이다. 먹는 것이 곧 나를 만든다는 말이다. 건강이 먹거리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뿐 아니라, 음식을 통한 소비는 나의 처지나 신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내가 누구와 함께, 무엇을, 어디에서 먹는지에 따라 내가 누구인지 결정된다는 말이다. 누구는 수입산 고급 와인과 치즈를 쇼핑카트에 넣으면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걸 자각하겠지만, 누군가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할인상품인 삼각김밥을 사면서 자신의 현실을 뼈저리게 인식한다.
 
미래사회에도 인류학자나 고고학자가 있다면, 편의점이라는 공간 연구는 매력적인 주제가 될 것이다. 21세기 편리함의 끝판왕, 편의점 맵핑을 통한 창업의 불패신화 분석, 청년 아르바이트의 실태, 누군가의 허기를 신속하게 달래는 곳(10분 이상 지체하지 않으면서)처럼 다양한 주제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편의점에서 발굴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영양가 없는 즉석 냉동식품을 보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시대에 과연 인류가 정말 풍요롭게 살았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겠다. 왜 당시에 인류가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지 않았을까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 오유진, 「1인 가구 증가양상 및 혼자식사의 영양, 식행태 분석」, 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 2016 하계 심포지움, 2016 참조.
* 변진경, 『청년 흙밥 보고서』, 들녘, 2018 참조.
* 서울시 청년명예부시장팀 ‘청년암행어사’, 「먹을거리 실태조사」, 2011 참조, 변진경(2018:41)에서 재인용.
* C. Fischler, “Food, Self and Identity,” Social Science Information 27, no.2 (1988) 참조.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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