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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칼럼니스트의 눈] “나라는 망해도 권력은 영원하다” 포퓰리즘의 힘

포퓰리즘을 쏘다 ⑥ 니콜라스 마두로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지난달 베네수엘라의 포퓰리즘은 중요한 전기를 맞았다. 공짜 휘발유 시대가 마침내 끝났다. 베네수엘라의 휘발유 가격은 30년 동안 ℓ당 1센트 미만, 사실상 공짜였다. 타렉 엘 아이사미 에너지부 장관은 “휘발유값이 ℓ당 5000볼리바르(2.5센트, 약 30원)로 오르고 1인당 한도도 한 달에 60~120ℓ로 제한된다”고 발표했다. 일부 주유소는 ℓ당 50센트에도 팔수 있도록 했다. ℓ당 50센트는 이웃 나라 콜롬비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21세기 사회주의’ 결과는 국가파산
민주주의와 경제, 둘 다 망쳤지만
집권 세력·진영엔 장기 집권 효자
21세기 대한민국도 따라 할까 걱정

월스트리트 저널은 “30년 만의 역사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공짜 휘발유’는 베네수엘라 포퓰리즘의 상징이었다.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과 정부 보조금이 만들어낸 과잉 복지의 산증인이기도 했다. 정치적 의미도 크다. 포퓰리즘이 만연한 남미 국가에서 휘발유값 인상은 정권을 뒤흔들 치명적 악재다. 지난해 10월 에콰도르와 칠레를 뒤흔든 대규모 시위의 기폭제도 에너지 보조금 폐지와 지하철 요금 인상이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런 정치적 부담을 무릅쓸 만큼 베네수엘라의 재정이 어렵다는 의미다.
 
익히 알려진 대로 마두로 정권의 7년 성적표는 참담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나라”가 됐다. 2019년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실업률+물가상승률)는 8백만11.4로 조사대상 62개국 중 압도적 1위다. 2위 아르헨티나(51.4)보다 15만배 이상 높다. 인플레이션과 대출금리, 실업률, 1인당 GDP 성장을 기준으로 따진 케이토연구소의 경제고통지수도 결과는 같다. 95개 대상국 중 베네수엘라(2019년 1736만439)가 4년 연속 1위다. 2위는 아르헨티나(105.6)다.
 
극심한 식량난은 그 유명한 ‘마두로 다이어트’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유엔식량계획에 따르면 올 2월 현재 베네수엘라 인구의 3분의 1인 930만명이 ‘아주 극심한 식품 불안정 상태’(영양실조)다. 베네수엘라 3개 주요 대학 조사 결과 2016년 8㎏에 이어, 2017년 국민 체중은 평균 11㎏이 줄었다. 난민도 쏟아졌다. 유엔난민기구는 올 5월 현재 베네수엘라 난민·이주민을 510만명으로 추산했다. 전쟁 통에 대량 난민이 생긴 시리아를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 최대다. 주변국이 몰려드는 베네수엘라 난민 처리를 놓고 골머리를 앓을 정도다.
 
그렇다고 마두로 탓만 할 수는 없다. 마두로는 차베스를 철저히 따라 했다. 정치·외교·경제 철학과 정책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차베스가 설계자라면 마두로는 열렬 추종자요 시행자였다. 공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마두로는 포퓰리즘의 끝을 확인해줬다. 특히 차베스를 열렬히 추종한 한국의 주류 좌파에게 경각심을 줬다. 마두로가 아니었다면 한국 주류 좌파에게 차베스는 “급진 분배로 빈곤을 해결한 지도자”요, 그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남미 평화의 초석을 닦은 미완의 실험(2013년 3월 7일 자 한겨레 사설)’으로 영원히 남았을 수도 있었다. 마두로야말로 "차베스의 사회주의 실험이 장기적으로는 완전한 실패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살아있는 증명”인 셈이다.
 
①통제·인상·반(反)기업=마두로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싸운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통제. 마두로는 ‘부르주아지 기생충들’이 인플레이션의 주범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군인들을 전자제품 상점에 보내 상품에다 낮은 가격표를 붙이게 했다.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안 베르네 뮐러)
 
둘째 인상. 그는 인플레만큼 임금을 올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2017년 이후 수시로, 기하급수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렸다. 2018년엔 6차례, 2019년 3차례 인상했다. 2018년 8월엔 약 3000% 올리기도 했다. 올해 1월에도 월 15만 볼리바르에서 25만 볼리바르로 50% 넘게 올렸다. 그런데도 달러로 환산한 실질 최저임금은 한 달 7달러 수준이다. 겨우 4일 치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이다.(베네수엘라 위기와 라틴아메리카의 고독. 2019년 12월 이베로아메리카 제21권. 최명호)
 
셋째 국유화. 헌법에 가격 인상을 혐의로 자산을 몰수할 수 있는 조항을 넣었다. 이를 근거로 2016년 P&G, 클로락스, 킴벌리 클라크의 공장을 몰수해 국유화했다. 이들 기업이 적자로 공장 가동을 멈추자 ‘의도적인 생산 중단’으로 몰아세웠다. 2017년엔 GM 공장을 몰수하고 완성차 시설을 뜯어냈다.
 
②실패한 감성팔이=로이터 통신은 마두로를 "차베스의 짝퉁(Poor copy)”이라고 평가했다. 마두로는 “내가 차베스다”를 가장 열심히 외쳤다. 차베스를 ‘신’으로 부르고 자신은 ‘사도’로 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차베스만한 존재감과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했다. 급기야 마두로는 차베스의 감성팔이도 흉내 냈다. 2016년 11월부터 ‘살사의 시간’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했다. 차베스의 리얼리티 TV쇼 ‘안녕하세요, 대통령님(Alo President)’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하지만 차베스처럼 인기몰이는 못 했다. 첫 방송 중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아내와 살사 춤을 추는 모습을 SNS에 올렸다가 되레 “국민이 굶는데 독재자가 춤이나 추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③민주주의의 종언=차베스에 이어 마두로는 권력의 사유화를 가속화했다. 선거 부정을 사법·행정·입법 권력의 힘과 군부를 동원해 덮었다. 마두로는 2013년 대통령 선거부터 부정선거 논란에 휘말렸다. 야당 후보에 1.5%포인트 차이로 신승했다. 야당이 법원에 제소했지만 조사는 유야무야됐다. 2015년 총선 땐 더했다. 야당이 압승해 마두로의 국민소환을 추진하자 선거관리위원회를 동원해 국민소환투표를 무산시켰다. 2016년엔 지방선거를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이듬해 10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선 23개 주 중 17개 주에서 승리했다. 야당은 투표 방해, 불법 전출입 등 광범위한 선거 부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2017년엔 제헌의회를 소집했다. 제헌의회는 헌법상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했지만, 무시했다.
 
차베스와 마두로의 포퓰리즘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국가 파산이란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하지만 마두로·차베스 개인과 진영 쪽의 눈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나라는 망하고 국민은 굶주려도 ‘차비스모’(차베스주의)는 살아남았고 ‘차비스타’(차베스 열혈 지지층)는 건재하다. 여전히 “내가 차베스다”를 외치는 열성 지지층 덕에 마두로는 아슬아슬하지만 8년째 권좌를 지키고 있다. 차베스는 10년 전 “3485년까지 베네수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호언대로 앞으로 1465년을 더 베네수엘라가 포퓰리즘의 노예로 살게 될지 누가 알겠나. 권력의 눈으로 보면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영구 집권을 가능케 하는 화수분일지 모른다.
 
“민주주의가 실제로 시장 지배적 소수 집단에 맞서 전투를 벌일 때 종국적인 결과는 재앙일 수 있다. 가장 안 좋게는 민주주의와 경제, 둘 다 망가질 수 있다. 우리는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서 이런 일을 목격했다.”(『정치적 부족주의』) 안타깝게도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21세기 대한민국에도 남의 일이 아닌 듯하다.
 
포퓰리즘의 끝, 쿠바의 꼭두각시가 된 베네수엘라
패트리샤 루커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태어났다. 1981년 일곱살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2016년 웨스트버지니아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차베스 집권 이후 그의 가족은 고국으로의 복귀를 포기했다. 자유의 몰락 때문이었다. 지난해 11월 그가 헤리티지 재단과 한 인터뷰는 베네수엘라의 현실과 미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회주의의 결과를 보고 싶은 사람은 베네수엘라를 보면 된다”며 “차베스가 1823년부터 베네수엘라가 1세기 넘게 누려왔던 자유의 가치와 유산을 철저히 파괴했다”고 말했다. 차베스는 집권 초 “주택의 소유자가 실거주하지 않는 경우, 주택이 필요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해 누구든 빈집을 침입해 무단거주하더라도 권리를 정부가 보호해주겠다”고 선포했다. 루커는 “내 가족의 집에서도 무단 침입과 불법 거주가 이뤄졌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차베스를 이은 현 마두로 정권을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차베스가 포퓰리즘으로 나라를 망쳤다면 마두로는 쿠바의 꼭두각시가 돼 나라를 통째로 쿠바에 넘길 태세라고 걱정했다.
 
“마두로는 베네수엘라 국민을 믿지 못해 쿠바 군인을 앞세웠다. 이 쿠바 군인들이 베네수엘라인들의 안녕을 신경이나 쓸까? 사실상 베네수엘라는 다른 국가가 점령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더는 베네수엘라라고 부를 수 없다. 이제는 쿠바 땅이다. 쿠바인들은 어떤 목적이든지 간에 베네수엘라를 이용할 것이며 절대 평화롭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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