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신동미의 미래를 묻다] 쓴맛 잘 못느끼세요? 알코올성 질환 조심하세요

DNA에 새겨진 ‘신토불이’ 

신동미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신동미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 슬쩍 취기가 오른다. 팀이 회사 내 실적 1등을 한 기념 회식이다. 나는 입사 10년 만에 개인 실적 1위가 됐다. 와인을 마시며 기분 좋게 떠드는 중이다. 가만, 내가 얼마나 마셨더라. 석 잔째다. 스마트폰이 권유한 제한치인 와인 반병에 거의 다가선 것 같다. 얼마 전 앱을 깔고 내 유전체 정보를 입력했더니 스마트폰이 식생활 코치가 됐다.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내 체질상 어떤 음식이 좋고, 어떤 건 안 좋고, 술은 어느 정도 이상 마시지 말라고 결과를 내놨다. 오늘 놓인 음식 사진을 찍었더니 그걸 분석해 어떤 거 위주로 먹으라고 잔소리까지 한다. 슬쩍 센서에 대고 입김을 불었다. 화면에 노란불과 ‘85%’라는 수치가 뜬다. 술을 제한치의 85% 정도 마셨다는 의미다.
 

한국인은 양식보다 한식 먹을 때
염증 관련한 유전자 발현 감소
건강 관련 개인 유전정보 분석해
맞춤 식단 추천하는 세상 곧 도래

순간, 배우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젠 그만 마시지?” 내 스마트폰과 연동돼 같은 정보를 받아보고 보낸 메시지다. 그런데 후배가 갑자기 나선다. “오늘의 주인공, 김 과장님 한 말씀 하시죠.” 일어서 감사 인사를 했다. 그냥 앉으려니 뻘쭘하다. 잔에 남은 와인 두어 모금을 건배 삼아 들이켰다. 잠시 후 왁자지껄한 사이 다시 한번 입김을 불어봤다. 100%! 빨간 불이다. 어쩌지? 앞으로 한 시간은 더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미각 관련 유전자가 술 섭취량 좌우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될 수 있는 장면이다. 개인의 유전자는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건강한 식생활과 관련한 정보도 듬뿍 담겨 있다. 술에 관한 유전자형도 있다. 우리가 마신 알코올은 몸속에서 아세트알데하이드와 아세테이트란 물질로 분해된다. 특정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은 같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해도 남들보다 아세트알데하이드 축적량이 적다. 이런 이들은 술을 많이 마셔도 얼굴색이 잘 변하지 않는다. 술이 세다고 좋아할 수도 있지만, 알코올 의존증 등 술과 관련된 부정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커진다.
 
미각에 관련된 유전형의 차이도 술 섭취량과 관련이 있다. 특정 물질의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유전자형에 의해 결정된다. 흥미로운 발견은 쓴맛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반대로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유전자형을 미리 파악한다면 자칫 과도한 음주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비만과 관련한 유전자도 있다. 만약 유전체 정보를 분석한 결과 비만 고위험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다면, 총섭취 열량을 줄이고 체지방 축적을 낮추는 식사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게 좋다. 이렇게 유전체 정보는 질병, 특히 식습관과 관련성이 높은 질병을 매우 성공적으로 예방할 수 있게 해 준다.
 
영양 보충제는 또 어떤가. 사실 균형 있는 식생활을 하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영양 보충제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혈액 속 ‘호모시스테인’이란 물질과 관련 깊은 유전자가 있다.  
 
이 물질이 정상 수준보다 높으면 심혈관계 질환과 조산·자연유산 등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유전자를 살펴 ‘호모시스테인 고위험군’인 경우에는 엽산 보충제를 복용해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비타민C가 있다. 비타민C는 인체 내 조직인 ‘콜라젠’ 등의 구성 성분이 되고, 항산화 작용으로 각종 질병과 노화를 예방하며, 뇌 기능과 면역 기능을 조절하는 등 생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필수 영양소다. 그러나 어떤 유전형을 가진 사람들은 비타민C 흡수율이 정상보다 매우 낮다. 이 경우, 비타민C가 풍부한 과일이나 채소를 먹어도 혈액 중에 비타민C 농도가 충분히 올라가지 못한다. 이러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고농도 비타민C 보충제를 복용해야 비타민C 농도를 정상 수준으로 맞출 수 있다.
 
사실 생명 현상의 작동 원리는 DNA만으로 간단하게 결정되지는 않는다. 유전자형이 같다 하더라도 유전자가 실제로 발현되느냐, 그리고 얼마나 발현되느냐가 운명을 가르기도 한다. 여기에도 식품이 관련됐다. 익히 아는 생태계 속의 극단적 사례가 일벌과 여왕벌이다. 둘은 똑같은 꿀벌로 태어나지만, 로열젤리를 먹은 꿀벌만 여왕벌이 된다. 로열젤리가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기 때문이다(어떤 분은 오늘부터라도 로열젤리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우리는 꿀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사람의 유전자 발현도 음식의 영향을 받는다. 필자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처음 4주간은 한식만을 먹고, 2주 쉰 뒤 다음 4주간은 양식만 먹으면서 영향을 살핀 적이 있다. 결과가 어땠을까. 한식을 먹었을 때 염증과 관련한 유전자 발현이 줄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옛말이 영양유전체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던 셈이다.
  
영국엔 유전정보 활용하는 레스토랑 등장
 
유전체 정보를 식생활에 적용하고 산업화하는 시도는 이미 시작됐다. 영국의 한 레스토랑은 고객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고, 비만 위험도나 카페인 민감성 같은 분석 결과를 고려해 건강한 식사를 추천한다. 사실 이런 서비스는 좀 이른 감이 있다. 아직은 인류가 유전체 정보와 관련한 지식을 쌓아가는 단계여서다. 유전체 정보를 식생활에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와 음식의 관련성에 관한 학술적 정보와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의 분석이 지속해서 업데이트돼야 한다. 개개인의 유전체 정보를 유출 없이 안전하게 관리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미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밴드 같은 기기를 활용해 필요할 때마다 개인의 유전체 정보를 쉽게 찾아보는 앱이 개발되고 있다. 아직 기술적 한계와 윤리적인 문제처럼 더 고민하고 해결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유전체 정보를 활용한 식생활의 시대를 살고 있을 것이다. 미래에 걸릴 수 있는 질병을 예측하고 예방을 위한 식단을 제공받는, 그런 세상 말이다. 또한 운동하는 동안 피부에 붙은 패치가 내 생체 정보를 분석해 현재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해 줄 수 있는 개인 맞춤형 음료를 알려줄 것이다.
 
장(腸) 속 미생물 따라 기분도 변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 몸에는 무려 70조 마리가 넘는 공생(共生) 미생물들이 존재한다. 특히 그중 3분의 1 정도가 장(腸) 속에 번식하면서 우리와 같이 생활하고 있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들은 우리 자신에게 영양분을 공급하지만, 동시에 장 속 미생물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장 속 미생물 총체와 미생물 유전자들을 ‘장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균형이 깨지면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 비만·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뿐 아니라, 면역 질환과 치매·자폐 같은 뇌 기능 관련 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르신들에게 장내 미생물 균형과 관련한 식품을 드렸을 때 뇌의 인지 기능과 관련된 성분이 혈액 속에 많아진다는 결과를 필자는 실험으로 직접 확인했다. 장내 미생물을 통해 치매 예방의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장내 미생물은 기분까지 좌우할 수도 있다. 행복감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인 ‘세로토닌’의 95%가 장에서 만들어진다. 장 마이크로바이옴에 좋은 음식을 제공해야 결과적으로 우리의 신체 및 정신 건강에도 이로운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마치 혈액형처럼 사람마다 장 마이크로바이옴 타입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를 ‘엔테로타입(entrotype)’이라고도 한다. 한국인의 엔테로타입을 분석해 보면 ‘프리보텔라(prevotella)’라는 미생물이 많은 부류와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가 많은 부류가 있다. 최근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한국인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식과 서양식을 각각 한 달씩 먹었을 때 장내 미생물 조성이 어떻게 바뀌고, 혈액 내의 화합물(대사체 물질) 성분은 또 어떻게 바뀌는지를 분석했다. 결과 중 눈여겨볼 한 가지는 같은 종류의 식사를 하더라도, 엔테로타입에 따라 다른 종류의 대사체 물질이 혈액 속에서 검출됐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 맞춤형 식생활을 계획할 때 개인 유전체 정보뿐 아니라 우리와 공생하는 장내 미생물의 집합체, 즉 장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정보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신동미 교수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이자 생물정보협동과정 겸무교수다.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알레르기ㆍ전염병 연구소에서 일했다.

 
신동미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