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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퍼스펙티브] ‘한 입 콘텐트’는 산만한 뇌를 진정시키지 못한다

넓고 얕은 지식의 한계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독서의 세계에 ‘한 입 콘텐트’ ‘한쪽 지식’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는 중이다. 지난해 말부터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돌풍을 일으키더니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하루 한마디 인문학 질문의 기적』『좋아하는 철학자의 문장 하나쯤』 등이 뒤를 이었다. 요즘 들어선 『1일 1클래식 1기쁨』『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 등 신간들도 쏟아지는 중이다.
 

‘한쪽 지식’은 읽고 나면 지식인이 된 듯하지만
산만한 머리에 또다시 정보를 밀어넣은 것에 불과
읽기를 수동적 소비로 만드는 깊이의 실종이 문제
몰입 통해 인간 변화시키는 독서에서 깨달음 얻어야

이 책들의 구성은 아주 단순하다. ‘하루에 한 주제, 지식 하나에 한쪽’이다. 새 정보나 지식이 담겨 있진 않다. 공부 좀 했다는 이들은 이미 대충 알고 있을, 잘 정리된 상식 수준의 글이 대부분이다. 예부터 신문이나 잡지에서 흔했던 콘텐트이고, 온라인에서 비슷한 글을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 인터넷이 생겨난 후 무료로 이용 가능한 검색 탓에 출판의 세계에서 이런 종류의 ‘사전형 지식’은 줄어 들어왔다. 독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읽을 만한 콘텐트가 아니라는 사형 선고를 내린 셈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독자들이 요즈음 다시 ‘한쪽 지식’에 열광 중이다. 딱히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교양 수업 365』만 해도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150만 부 이상 판매된 밀리언 셀러였다.
 
인터넷 서점에 따르면 ‘한쪽 지식’의 주요 독자는 30~40대 직장인이다. 여성 독자가 60% 정도 된다. 구매자 댓글을 들여다보면 이 책들이 읽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읽고 나면 지식인이 된듯한 독서
 
첫째, 지식 또는 상식을 만들기 위해 읽는 정리형 콘텐트다. 인간은 변화를 추구하는 동사적 존재니까, ‘지식’보다 ‘쌓다’가 중요하다.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는, 또는 가만히 있어도 쏟아지는 바깥 정보가 넘치지만, 사람들은 자기 안에 지식이 있기를 바란다. 이때의 지식은 먹고사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이나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는 잡(雜)상식이 아니라 ‘교양,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즉 잘 정제된 인문적 지식’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기본의 결여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거기에 걸려 있다.
 
둘째, 공부 또는 독서 습관을 쌓기 위해 읽는 분절형 콘텐트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하루 하나씩, 지식을 차곡차곡히 ‘짬짬이 인문학’의 핵심적 가치다. 형태가 내용을 만든다. 글은 길지 않고 간략하게, 심심할 때 부담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쓰인다. ‘좋은 습관’을 바랐던 독자들 만족도가 높다. 나날이 똑똑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나날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책들은 본래 일일 일독, 단행본 형태로 제시된 구독형 콘텐트이기 때문이다.
 
셋째, ‘지적 대화’를 위해 읽는 과시형 콘텐트다. 검색 지식의 시대에 몸에 붙은 인문 지식은 ‘있어 보이는’데, 즉 일종의 차별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필요하다. 남보다 약간만 더 교양을 쌓아도 대화를 주도할 수 있고, 이야기 도중에 지식의 양념을 살짝 쳐 시선을 끌 수도 있다. 어디에 가서 아는 척하기 좋고, 친구들과 대화할 때 써먹기 훌륭하다. 읽고 나면 지식인이 된 듯한 느낌이다. 일단 멈춤. ‘척’이나 ‘듯’에 주목하자. ‘지적 대화’와 ‘지성의 대화’를 혼동하면 곧장 왕따 되기에 십상이다. ‘넓고 얕은 지식’에 머물러야지 제대로 따지자고 달려들면 금세 ‘진지충’으로 전락한다.
 
‘한 입 콘텐트, 한쪽 지식’은 모바일 시대 콘텐트의 존재론을 잘 보여 준다. 독자들은 자주 ‘집중력이 짧아도’를 말한다. 디지털 시대의 인간은 산만하다. 오늘날 전 세계에 축적된 디지털 정보량은 99조 기가바이트(GB)에 달한다. 매일 약 250억GB의 정보가 생성되는데, 인간은 총용량이 2GB 정도밖에 안 되는 생물학적 뇌로 이를 처리해야 한다. 정보 과잉에 빠진 뇌는 새로운 정보에 적절한 맥락을 부여해 기존 기억에 통합하지 못한다. 정보를 썼다 지우기를 너무 자주 반복한 뇌는 피곤해져 정보를 제때 수용하지 못하는 ‘주의력 결핍 상태’에 빠진다. 정보의 홍수가 머릿속을 휘젓는 상태,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가장 큰 불행 중 하나다.
 
정보량이 늘어날수록 콘텐트 소비자는 한눈에 알기 쉬운 정보, 즉 정리된 정보에 목마르다. 스티븐 로젠바움의 『큐레이션』에 따르면 콘텐트 과잉이 심할수록 넘치는 정보에 특정한 맥락을 부여해 시야를 맑게 하는 필터의 가치가 높아진다.
  
집중력을 만드는 독서 필요
 
읽기를 수동적 소비로 만드는 깊이의 실종이 문제다. 약간의 깊이라도 기대한 독자는 모두 실망한다. 벼락치기, 수박 겉핥기라는 반응이 선명하다. 책의 내용은 확인하고 덧붙이기에 가깝다. 한쪽에 지식을 압축한 잘 조직된 편집 기술은 멋진 일이나, 독자의 산만한 머릿속에 또다시 정보를 밀어 넣은 것에 불과하다. 불행히도 ‘한쪽 지식’은 정보 과잉을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집중력 자체를 생성하는 독서, 즉 필터 자체가 생겨나는 독서가 필요하다. 『다시 책으로』에서 매리언 울프는 몰입을 통해서 인간을 책 자체로 변화시키는 독서만이 산만한 뇌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고 말한다. 우리한테는 ‘깊이 읽기’가 필요하다. 
 
서사 잃으면 몰입 없고, 책과 독자가 하나 되는 일도 없다
퍼스펙티브 7/6

퍼스펙티브 7/6

모바일 읽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종이책도 스마트폰 화면을 쓱쓱 내리는 것처럼 읽고 싶어한다. 책의 판면을 지그재그로 훑어 읽는 ‘Z자 읽기’나 제목을 확인하고 내용은 눈에 들어오는 단어나 개념 중심으로 건너 읽는 ‘F자 읽기’가 흔해지고 있다. 편집자들도 독자들 욕구를 모르지 않는다. 본문 편집 역시 이에 발맞추어 진화 중이다.
 
장대한 서사, 끈질긴 논리로 독자를 사로잡는 책은 드물어지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책이 아니라도, 요즈음 책은 자꾸 토막글로 분할되어 간다. 잘 팔리는 책은 모두 ‘8쪽의 법칙’을 공유하는 것 같다. 『해빙』 『언컨택트』 『룬샷』 같은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도, 『오래 준비해 온 대답』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같은 에세이도, 『당신은 옳다』 같은 심리학 서적도 5~10쪽 사이 글들의 결합체다.
 
『1㎝ 다이빙』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처럼 글과 그림이 결합된 책들은 더 잘게 분할되는 중이다. 내용 한 꼭지가 그림 한 컷에 일상에 대한 짤막한 감상이 담긴 글 2~3쪽이 결합된 단상의 연속체에 가깝다. SNS상의 ‘구절 놀이’나 ‘인스턴트 철학’을 복제한 형태의 책도 많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같은 책들은 장면 하나에 저자도 없는 아포리즘 몇 줄이 전부여서 글이 1쪽을 넘기기 힘들다.
 
훑어 읽으려는 독자를 돕는 편집소도 적극 도입된다. F자 읽기가 가능하도록 자잘한 소제목들이 늘어난다. Z자 읽기를 하도록 문장에 밑줄을 긋거나 색을 칠해 둔다. 챙길 만한 내용은 박스에 넣어 요약해 준다. 본문에 강조할 개념이 나오면 견출명조나 견출고딕 등 눈에 확 띄는 굵고 강한 서체를 사용한다. 편집소가 늘수록 독자의 텍스트 몰입도는 낮아지고 가독성은 떨어진다. ‘한 입 콘텐트’ 시대의 독자에 맞추어 책은 진화 중이다. 본래의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방식으로. 서사를 잃으면 몰입도 없고, 몰입이 없으면 책과 독자가 하나가 되는 일도 없다. 이것은 혹시 책의 자살이 아닐까.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리셋 코리아 문화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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