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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거절 못하는 마음에 독하게 박히는 상처, 독박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74)

친구는 열불을 토한다. 자기가 다니는 기술학원에서 단지 젊다는 이유로 총무를 떠맡았는데 온갖 잡일을 다 시키더니 급기야 이번 주 현장견학에서는 간단히 사 먹으면 될 점심까지 기어이 자기한테 도시락 준비를 맡기더란다. 웃는 상(像)에 인사도 잘하는 성격이라 꼼짝없이 독박 쓴 것이다.
 
우선 용어정리가 필요하다. 독박은 혼자 모두 뒤집어쓰거나 책임지는 것이다. 자기 판단과 욕심으로 ‘Go!’ 했다가 뒤집어쓰는 고스톱판 독박과 달리, 일상의 독박에서는 목소리 작고 만만한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몽땅 뒤집어쓰고 부담을 벗은 다수는 자기들끼리 행복하다.
 
비슷한 건 ‘총대 메기’다. 그래도 이건 자발성, 희생정신, 사람들의 반응 면에서 차이가 있다. 독박보다 덜 불쾌하고(때론 자랑스럽다) 그 공이 주변에 알려지며 유무형의 보상도 받을 수 있다.
 
독박의 문제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결정과정을 통해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 권리를 가진 자와 책임지는 자로 나뉜다는 것이다. [사진 pixabay]

독박의 문제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결정과정을 통해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 권리를 가진 자와 책임지는 자로 나뉜다는 것이다. [사진 pixabay]

 
독박은 회사, 가정, 학교처럼 일이 있는 조직이면 어디에나 있다. 아니, 어쩌면 독박을 씌울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일도 있다. 몇십 년간 지내던 제사인데 종부가 죽은 후 떠맡을 사람 없다며 기독교로 개종하는 집안도 보았고, 자기가 암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되었더니 제사가 슬그머니 없어졌다는 어느 부인의 사연도 들었다.
 
젊은 층에는 ‘독박 육아’가 민감한 문제다. 많이 바뀌고 있다지만 아직도 육아는 엄마 몫일 때가 많다. 똑같이 맞벌이하면서 밤에 잠 못 자고, 아이 유치원 맡기고, 갑자기 야근 생기면 어린이집 눈치 보며 전전긍긍하는 것도 힘든데 나중에 아이가 대입에 실패라도 하면 “역시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해” 하는 힐난까지 뒤집어쓴다.
 
이처럼 합의와 선택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족쇄가 바로 독박이다. 사회 곳곳에 너무 일상적으로 침투해 있어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들다.
 
회사에서도 웃는 낯으로 열심히 일한 죄로 발목 잡힐 때가 있다. 일단 ‘쓸 만한 친구’로 등록되면 일할수록 일과 야근이 늘고, 위에서 놔주지 않아 다양한 경력개발도 안 된다. 반대로, 뺀질대거나 고집부리는 직원은 일이 점점 줄어들고, 설렁설렁 여러 부서를 떠돌며 기회를 더 얻기도 한다.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 밉보이지 않는 노하우가 있는데, ‘자기 일’만 확실히 챙겨 하고, 조금씩 나눠야 할 공동의 몫은 피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회의할 때 살살 분위기 타다가 결정적일 때 탁 떠넘기는 재주가 탁월하다.
 
일이 있는 곳 어디서든 ‘독박’ 상황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가정에서는 제사가 종종 그렇게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제사인데 다같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분담하지 않는 건 아이러니다. [사진 pixabay]

일이 있는 곳 어디서든 ‘독박’ 상황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가정에서는 제사가 종종 그렇게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올리는 제사인데 다같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분담하지 않는 건 아이러니다. [사진 pixabay]

 
대학교에도 공동과제(팀플)에 무임승차하는 얌체들이 있다. 미팅 때는 입도 벙긋 않고 남들 의견에 “네, 좋네요”만 연발하고, 자기가 맡은 일은 안 하느니만 못하게, 인터넷 내용이나 긁어다 던진 채 끝까지 ‘배째라’며 버틴다. 결국 가장 절박한 사람 혼자 대여섯명의 프로젝트를 떠맡는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독박은 사람 마음을 멍들게 한다. 만일 사람들이 갑자기 내게 라면을 끓여오라고, 아니 뭐든지 그냥 막무가내로 시킨다고 가정해보자.
 
- “왜 나한테 그러시죠?”
- (1단계) “네가 잘하잖아.” 억지와 비논리로 일단 떠본다. 대수롭지 않으면 이 단계에서 수락한다.
- (2단계) “우리 세대는 컴퓨터를 잘 못 해서...” 자기 비하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거부하면 왠지 좀 치사한 것 같다.
- (3단계) “너무 정확하시네.” 비아냥을 통해 공세로 전환한다. 할 수 없이 수락하지만 기분은 이미 찜찜하다.
 
2~3단계쯤 되면 집단에서 소외될 위기감도 느껴진다. 꼭 내가 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내가 버팀으로써 너댓명이 라면을 못 먹게 된다는 비논리적인 미안함도 생긴다. 독박 씌우는 자들은 그런 빈틈을 귀신처럼 찾아내서 파고든다.
 
독박이 왜 나쁜지 정리해보면, 첫째, 결정 과정이 비합리적이다. 박수와 시선으로 덮어씌우니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다. 둘째, 불공평하다. 같은 이해관계인데도 권리를 가진 자와 책임지는 자가 나뉜다. 셋째, 보상이 없다. 잘하면 본전이고 대부분 욕먹기로 끝난다. 결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뒷담화 하고, 기껏해야 입에 발린 칭찬 정도다.
 
공동작업에서 입도 벙긋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끝까지 버티면 누군가에게 떠맡기고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바로 공정한 사회의 가장 큰 애물단지, 독박의 가해자가 되는 길이다. [사진 pixabay]

공동작업에서 입도 벙긋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끝까지 버티면 누군가에게 떠맡기고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바로 공정한 사회의 가장 큰 애물단지, 독박의 가해자가 되는 길이다. [사진 pixabay]

 
우리 대부분은 독박 쓰지 않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처음이 중요하다. 뭐가 생기는 건지 아닌지 파악될 때까지 나서지 말고 아는 체 말고 수동적으로 끌려가야 한다. 또 끝까지 버텨야 한다. 답답함을 참지 못해 먼저 말하면 전체의 시선이 모이고 결국 내가 떠맡는다. 그런데 이런 건 아무리 생각해도 모임, 조직, 나아가 사회전체에 이로운 태도가 아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봤다. 세상에는 착한 부자도 많은데 그들이 왜 욕을 먹을까. 내가 얻은 답은 ‘이미 남을 위해 큰돈을 썼지만 더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인 독박이다. 나도 모르게 못된 습성이 발현되어 누군가에게 덫을 씌우고 뒤로 나앉아 왈가왈부한 적 없는지 반성해본다. 개인의 공정한 의식이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자명하다. 좋은 세상에서 모두 행복하려면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 나치군이 반항적인 발언을 한 유태인을 색출하기 위해 정렬한 유태인들 가운데 한 명을 쏘아 죽인 후 어느 꼬마에게 ‘누가 그랬는지 말하라’며 계속 으름장을 놓는다. 순간 그 똑똑한 꼬마는 죽은 사람을 가리키며 그가 그랬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칭찬할 만한 독박이었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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