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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서만 공부’ 바꿔야, 훔볼트 같은 융합 인재 자란다

[책과 사람] 이종찬 아주대 의대 교수 『훔볼트 세계사: 자연사 혁명』

이종찬 아주대 의대 교수는 충격적 내용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는 ‘서구의 정체성 상당 부분은 열대와 접촉하는 가운데 나왔다’ ‘아이티 노예 혁명이 프랑스 혁명을 자극했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홈볼트 초상화와 이종찬 교수를 이중 촬영했다. 박종근 기자

이종찬 아주대 의대 교수는 충격적 내용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는 ‘서구의 정체성 상당 부분은 열대와 접촉하는 가운데 나왔다’ ‘아이티 노예 혁명이 프랑스 혁명을 자극했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홈볼트 초상화와 이종찬 교수를 이중 촬영했다. 박종근 기자

“아주 먼 훗날 어디선가 난 한숨지으며 이렇게 이야기할 겁니다. 두 갈래로 숲속 길이 나뉘었다고, 나는 인적이 드문 길로 갔다고,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근대 지리학의 아버지’ 훔볼트
인문·사회·자연 꿰찬 융합 원조

코로나 극복? 의학만으론 안 돼
경제·정치·지리학 두루 알아야

열대는 ‘슬픈 열대’ 이미지 아닌
마음씨 착하고 춤추는 열대…

이종찬 아주대 의대 의학과 교수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 ‘열대’라는 길을 가고 있다. 서울대(치의학 학사, 보건학 석사)와 존스홉킨스대(공공 보건학 박사)에서 공부한 그는 2009년 아주대학교에 열대학연구소(Institute for Tropical Studies)를 설립했다. 그는 최근 『훔볼트 세계사: 자연사 혁명』(사진)을 냈다. 공부가 깊은 독자라면 책 제목만 보고도 책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평범한 독서 무공으로는 『훔볼트 세계사: 자연사 혁명』의 의미를 꿰뚫기 힘들다. 이종찬 교수는 스스로 ‘융합 열대학자’를 표방한다. 세계 최초로 열대학을 정립한 그는, “열대가 서양의 정체성을 만들었다”고 세계 최초로 주장했다. 이 교수는 훔볼트라는 세계사적 인물을 10여 년간 연구했다. 그 결과물인 『훔볼트 세계사: 자연사 혁명』은 ‘근대 지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훔볼트(1769~1859)를 우리의 머릿속으로 다시 끄집어낸다.
  
아이티 노예혁명, 프랑스 혁명에 영향 줘
 
당대 유럽에서 나폴레옹 다음으로 유명했다는 알렉산더 폰 훔볼트. 괴테나 니체보다 더 유명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그는 잊힌 영웅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왜 훔볼트를 담론의 주인공으로 삼아야 할까. 궁금해서 이종찬 교수를 인터뷰했다.
 
이종찬 교수는 열대학자·문화디자이너로 알려졌다. 지금의 자기 정의(self-definition)는?
“사람의 정체성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지금은 제가 ‘융합 열대학자’라고 생각한다.”
 
책 내용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이티 노예혁명이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다. 세계 최초로 주장한 것인가?
“그렇다. 프랑스 혁명은 1789년, 아이티 혁명은 1791년 일어났다. 우리는 연대기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아이티에서 혁명적 상황은 1750년대부터 시작됐다. 노예들의 항쟁 소식이 마르세유·리옹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작가들이 아이티 소식을 글로 적어 파리로 전했다. ‘아이티의 노예들도 저렇게 항쟁하는데 우리는 뭔가’라며 혁명의 꿈을 품게 됐다.”
 
훔볼트 세계사

훔볼트 세계사

훔볼트와 융합(consilience)은 어떤 관계인가.
“우리나라에 융합이라는 단어·개념이 미국을 통해 들어왔다. 하지만 훔볼트가 원조다. 훔볼트가 최초로 자연과학과 인문학과 예술을 융합했다. 훔볼트로 말미암아 융합이라는 단어를 유럽 사람들이 사용하게 됐다.”
 
‘근대 지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훔볼트는 인문·사회·자연에 걸친 업적으로 유명하다. 21세기는 훔볼트 같은 인물이 절실하다.
“그렇다. 같은 의과대학 교수라도 내과와 외과 교수가 서로 무엇을 연구하는지 모르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수학과 교수들이 하는 말을 화학과 교수들이 모른다. 그러나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훔볼트 같은 융합적인 인물이 더욱 절박하다. 의학만 가지고 해결이 안 된다. 경제학·정치학을 알아야 하고 지리학도 알아야 한다.”
 
이종찬 교수는 세계 최초로 ‘열대학’이라는 학문 분과를 만들었다.
“그렇다. 열대의학(tropical medi-cine)을 넘어 인문학·사회과학과 융합했다.”
 
왜 열대인가? 우리는 온대도 잘 모른다.
“그렇다. 우리는 하루하루 24시간 삶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우리가 온대에 살고 있는지 열대에 살고 있는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겨울에 태국·베트남·싱가포르 등 동남아 관광지로 갔을 때 비로소 열대를 느낀다. 서구가 선진국이 된 결정적인 운동력은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동남아시아·남태평양 등 열대를 지배하면서 나왔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열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너무나도 중요한 과제가 된다.”
 
‘열대’ 하면 떠오르는 것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1955)이다. ‘슬픈’을 대신할 더 좋은 형용사가 있는가. 예컨대 검은 열대, 즐거운 열대, 미래의 열대?
“저는 ‘마음씨 착하고 춤추는 열대’라고 하겠다. 왜 그러냐? 열대 원주민들과 조금만 쉽게 친해지면 그들은 우리를 춤추는 공간으로 안내한다. 그들에게 춤은 우리 옛날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춤과 마찬가지로 삶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니체는 ‘인생을 춤추듯이 살아라’라며 핵심을 찔렀다. 열대 원주민들에게 춤은 문화예술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본질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문명-야만 구분을 격렬히 비판했다. 그런데 온대-열대, 북반구-남반구와 같은 이분법이 불가피한 것은 아닌가. 대안적 이분법은 없는가.
“제게 열대에 대립적인 개념은 온대가 아니라 ‘음침한 기후’다. 한국인은 사실 지구 전체로 보면 햇빛이 부족한 지역에 살고 있다. 서유럽은 우리보다 그래도 낫다. 네덜란드·영국·프랑스·스페인도 우리보다 햇빛이 많다. 그런데도 늦가을부터 시작해 초봄까지 음침하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위축된다. 17세기가 문제인데···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으니··· 굶고 죽느니 뛰쳐나온 나라가 네덜란드다. 설탕·차·커피를 가지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이다.”
 
열대와 서구, 열대와 일본의 만남은 제국주의로 귀결됐다. 한국과 열대의 만남 또한 제국주의와 닮은꼴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당연히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우리 한국은 같은 열대 대부분의 나라가 겪었던 식민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제국주의적인 욕망을 버리고 열대와 우리가 같이 상생하는 국제협력, 무역, 발전으로 나아가야 한다.”
 
책에 보면, “(1) 콩고 노예의 노동력, (2) 유럽의 해양무역 시장, (3) 카리브해의 플랜테이션··· 청년 훔볼트는 세상이 이 세 가지 힘의 결합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나온다. 오늘의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저는 여전히 전 세계 열대 시장의 노동력이 3대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은 유럽·미국·중국이 장악한 지구적인 시장··· 그 당시에는 플랜테이션··· 지금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의 자본력이 3대 요소라고 생각한다.”
  
역사 교육은 한국사보다 세계사 중심으로
 
21세기 한국은 이 세 가지 힘에 다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 만만치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중요한 이유는, 특히 세계사를 배우는 중요한 이유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훔볼트와 살았던 시대, 영·정조 시대의 상황과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는 한국사 중심 아니라 세계사 중심으로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21세기 교육환경에서 훔볼트가 나오기 힘들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훔볼트를 양성하려면?
“저는 우리 교육이 자연스럽게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 대학에서만 4년간 배우게 하는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훔볼트는 무려 4개 대학을 다녔다. 우리도 입학하는 대학과 졸업하는 대학이 똑같아야 할 이유가 없다. 융합형 교육의 첫 번째 출발점은 문호를 활짝 열어서 4년간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대학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다. 부산에서 해양의학을 공부했다가 서울에 와서 지리학을 공부할 수도 있다.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같이 모든 대학 수준이 비슷하면 가능하다. 한국 대학은 서열화돼 있다. 아무래도 ‘기득권’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몇몇 교수들이 이미 제안을 했다. 이미 상당히 많은 종합적인 연구를 해 놓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최소한 국립거점대학만이라도 먼저 서로 문을 열어야 한다. 우리도 예를 들면 경북·부산·전남·충남의 국립거점대학은 상호 순환적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앙SUNDAY 독자 여러분께 강조하실 말씀은?
“21세기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미래를 누구도 진단할 수 없다. 21세기 전문화·분화된 세상에서는 전 분야를 조금씩 아는 제널럴리스트(generalist)의 교양과 이를 기반으로 한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김환영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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