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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당의 추경 폭주, 이런게 ‘일하는 국회’인지

대한민국 헌법 54조는 국회의 국가 예산안 심의 권한을 명기하고 있다. 입법 및 행정부 견제와 함께 재정 감시가 국회의 주요 권한이자 역할이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라도 알만한 일이다.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3차 추가경정예산안의 심사 과정은 이런 국회의 기본 책무마저 망각한 폭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비상한 방법 강구” 청와대 주문에 맞춰
야당 배제한 채 속전속결 35조원 처리
‘재정 감시’라는 국회 책무 스스로 포기

35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추경안이 국회를 거친 시간은 단 닷새였다. 지난달 29일 여당 단독으로 상임위원장 선출을 마치자마자 군사작전 하듯 속전속결식으로 추경안을 처리했다. 여당 단독으로 열린 각 상임위에서는 대부분 1~2시간 만에 정부안 심사를 끝내 버렸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정부 제출안보다 3조1000억원을 증액하는 ‘예산 뻥튀기’까지 이루어졌다. 여당의 졸속 처리에 범여권인 정의당 의원마저 “이런 심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였다.
 
이 와중에 일부 여당 의원들은 4000억원 가까운 지역구 민원성 예산까지 끼워 넣었다. 예산결산특별위원장마저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군 병원 관련 예산을 요구했다. 국회 예산안 심사 때마다 불거졌던 ‘쪽지 예산’의 관행을 한시가 급하다는 여당 단독 밀실 심사에서 고스란히 되풀이한 것이다. 국민 세금 집행의 엄중함을 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론의 비판에 여당은 예산 증액 및 민원성 예산 끼워 넣기를 포기하기는 했다. 집행 가능성이 떨어진 사업의 예산을 깎으면서 정부 원안보다 다소 감액되기도 했다. 그러나 “역대 추경 최대 규모의 감액”이라는 여당 생색에도 불구하고 부실·졸속 심사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35조원이 넘는 추경안을 여당 의원 5명만이 참석한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주무른 것은 정상적 재정 감시 활동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추경안 내용을 제대로 따졌는지도 의문이다. ‘한국판 뉴딜’을 내세워 9조원을 들여 일자리 60만개를 만들겠다지만, 3~6개월짜리 단기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도서관 책 배달, 멧돼지 폐사체 수색, 100대 명산 순찰요원 등 억지로 만든 아르바이트성 일자리가 숱하다. 논란 많은 대학등록금 환불 예산이 증액되는 등 선심성 편성도 여전했다. 반면 코로나19 대응 예산이나 안보 대처용 첨단과학훈련 예산 등은 깎였다. 국회예산정책처마저 “질 낮은 일자리만 과잉 공급할 우려가 있어 국회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여당은 ‘쓸데없는 지적질’이라는 식의 고압적 반응을 보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재정 투입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국민 세금을 이렇게 날림으로 처리하는 것은 국회의 직무 유기다. 3차 추경안 중 3분의 2 정도는 적자 국채를 발행해 메워야 한다. 재정 건전성을 따지기 전에 국민에게 천문학적 빚을 지우면 미안한 기색이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랑곳없다. 야당이 시간을 주면 예산안 심사에 참여하겠다고 했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역대급 졸속 추경”이라는 비판에는 “터무니없는 트집”이라고 일축할 뿐이다.
 
국회의 일사천리 추경 통과 뒤에는 청와대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3차 추경안의 빠른 통과를 주문하며 “비상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추경 처리 폭주는 이런 청와대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무리수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여당의 눈에는 청와대만 보이고, 세금 내는 국민은 보이지 않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여당의 행태는 스스로 의회 위상을 떨어뜨리고 삼권 분립 정신을 망각하는 ‘정당 정치의 부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은 ‘일하는 국회’를 내걸지만, 그 일이라는 것이 권력 핵심의 의지를 충실히 집행하자는 의미는 아닐 터다. 지난 총선에서 거대 의석을 몰아준 국민의 뜻도 국회가 행정부 견제 책무를 포기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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