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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 공정성의 가치와 연대에 눈뜨다

2030여성 출판계를 지배하다

요즘 출판가의 베스트셀러 순위는 다채롭다. 우선 김훈의 판타지 장편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이 1일 현재 교보문고 종합 10위(6월 17~23일 판매 집계), 황석영의 대작 장편  『철도원 삼대』가 종합 32위에 올라 있다. 선 굵은 남성 작가의 귀환이다.
 

386세대의 대표적 희생자로 인식
여혐·제사 다룬 정세랑 소설 돌풍

작가는 아이돌, 소설은 문화상품
SNS 활용해 적극적 애정표현

정작 인상적인 작품은 따로 있다. 종합 15위를 차지한 84년생 여성 소설가 정세랑의 장편 『시선으로부터,』다. 이 작품의 실시간 성적표는 놀라운 데가 있다. 새롭기도 하다. 소설은 지난봄 출판사 문학동네의 인터넷 웹진 ‘週間(주간) 문학동네’에 연재됐다. 연재 당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연재가 끝난 후 6월 5일 종이책 출간에 앞서 출판사는 2주간 온라인 서점 예약 판매를 내걸었다. 그만큼 많이 팔릴 거라고 기대했다는 뜻이다.
 
출판사는 초판만 1만2000부를 찍었다. 갈수록 책 한 권의 씨알이 작아지는 상황에서 이례적인 물량이다. 그런데 예판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 소화돼 2쇄 1만 부, 이마저 금세 소진돼 3쇄 1만 부를 추가로 찍었다. 출간 열흘 만에 3만2000부. 책을 만든 문학동네 김영수 편집자는 “다른 출판사 어떤 책과 비교해도 초기 반응이 뜨겁다. 10만 부 안 팔리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책, 어떤 내용이길래? 주간 문학동네에는 아직도  이런 ‘작품 소개’가 남아 있다.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를 찾은 어느 가족의 이야기’.  
 
여기서 제사의 주인공은 가족의 할머니인 심시선. 책 제목의 그 ‘시선’이다. 시선 할머니는 젊어서 폭력적인 독일 남성 예술가로부터 악행을 당한 적이 있다. 여성 학대 또는 혐오, 제사, 가족, 이런 키워드가 손에 잡힌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 여성 소설가가 쓴 여성 이야기.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성별, 연령별 구매자 분포에 따르면 20대 여성 구매자 비중이 무려 32.4%, 30대 여성이 29.6%나 된다. 2030 여성 독자가 2030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을 베스트셀러로 끌어올리는 형국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전통적으로 문학 출판 시장을 여성이 호령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18세기 서양 근대문학의 태동기부터 그래 왔다고 할 수 있다(성균관대 국문과 천정환 교수). 다만 국내 문학 시장의 경우 갈수록 여성 독자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현상을 보여 왔다〈교보문고 그래픽 참조〉. 20대 때 열심히 한국소설을 읽다가 30~40대에 이른 여성 독자들은 여전히 최신 소설을 따라 읽는 반면 어려서부터 종이책보다 모바일,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액정 화면 스크롤다운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1985~96년생), 그러니까 20대 중반~30대 중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소설을 덜 읽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다음소프트의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some.co.kr)를 통해 세대별 취미활동을 분석한 결과 2030 여성들의 독서에 대한 관심은 3040 여성에 비해 확실하게 낮았다〈썸트렌드 그래픽 참조〉.  
 
정세랑의 돌출 현상은 그런 가운데 소설 읽는 재미에 눈뜬 2030 여성들이 집중 선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행복한 작가는 물론 정세랑만은 아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의뢰한 결과 최근 몇 년 새 시장 판매, 문학 평판 모두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 주목받은 최은영(84년생,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김초엽(93년생, SF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금희(79년생, 장편 『경애의 마음』) 같은 작가들이 모두 2030 여성들의 강한 지지를 받았다〈예스24 그래픽 참조〉. 퀴어 서사에 천착하는 남성 소설가 김봉곤(85년생, 소설집 『시절과 기분』), 박상영(88년생,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도 젊은 여성들의 ‘승인’을 받은 작가군에 포함시킬 수 있다.
 
2030 여성들이 이 작가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이들의 소설은 거칠기보다 섬세하고, 강렬하기보다 잔잔하다. 이런 인상비평을 얼마든지 늘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교하고 알기 쉽게 그 직접적인 원인을 분석해내는 속 시원한 비평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배경을 얘기해 볼 수는 있다. 서강대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는 『불평등의 세대』에서 네트워크로 똘똘 뭉쳐 21세기 한국형 위계 구조의 정점에 있는 386세대의 대표적인 희생자로 청년과 여성을 꼽은 바 있다. 둘의 교집합은 젊은 여성. 2010년대 후반 들어 급진화된 페미니즘의 부상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공정성이라는 가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조치에 쏟아진 젊은 층의 분노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 운동은 보다 직접적으로 2030 여성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래서 가령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재현하는 소설 장면에서도 2차 피해가 없도록 묘사하는 재현의 윤리나, 성소수자 등 타자를 배척하지 않는 정치적 올바름이 요청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요즘 사랑받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이런 까다로운 심문을 무사히 통과한 무공해, 무혐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독자들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사랑하는 작가들에 대한 애정 표현에 적극 나서는 일도 이전에는 없던 현상이다. 이 분야에서도 역시 정세랑이 선두주자다. 『시선으로부터,』의 편집자 김영수씨는 “예판 초기 5만원어치 샀다는 인증샷을 올린 트위터 멘션을 본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소설의 정가는 1만4000원. 5만원이면 딱 떨어지게 몇 권을 살 수 있는 금액도 아니다. 어쨌든 세 권 이상을 사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뜻. ‘반복 구매’라는 전형적인 팬덤 현상이다. 작가를 아이돌처럼, 소설을 대중문화 상품처럼 소비한다는 얘기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92년생 직장인 여성 A씨는 2017년부터 트위터 계정 ‘정세랑 봇@Serangbot1’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자기 돈 들여 만든 굿즈를 나눠 주며 정세랑 소설을 알리는 일을 한다. 어떤 소득이 있느냐고 트위터 메시지로 묻자 이렇게 답했다.
 
“여성으로서의 연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여성들의 삶, 서로의 용기가 되어주어야 한다, 등을 책을 사는 2030 여성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상품 소비가 아닌 여성 연대의 방편이라는 얘기다.
 
'알파걸'들이 맞닥뜨린 남성위주 현실
트렌드랩506 이정민 대표는 2030 여성들이 연대를 중시하는 현상을 이렇게 분석했다. 밀레니얼 여성들은 또래 남자아이들과 똑같이 키워져 모든 면에서 뛰어난 알파걸이 많은데, 정작 사회에 나와 예상과 달리 남성 위주 현실에 맞닥뜨리다 보니 연대의식에 눈뜨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의 날카로운 트위터 감성은 자신들의 윤리 기준에 미달하는 작품을 만나면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2018년 여성 섹스로봇이 등장하는 소설가 장강명의 SF 단편 ‘노라’의 표지가 여성 성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트위터에 ‘리디북스 노라 판매중지 총공 프로젝트@ridi_complain’ 계정이 만들어져 리디북스는 결국 표지를 바꿔야 했다.
 
민음사·예스24·알라딘·밀리의서재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2030 여성 7명에게 독서·라이프스타일·스마트폰·사회 이슈 영역에 걸쳐 40여 개의 질문을 던졌다. 트렌드랩506의 도움을 받아 설문 문항을 작성했다. 표본 숫자는 적지만 이들의 내면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달 평균 두 권에서 열다섯 권까지, 책 구입하는 데 2~3만원에서 15만원까지 지출하는 사람들이었다.
 
7명 가운데 4명이 SNS, 1명이 유튜브, 2명이 온라인 서점 등에서 책 구매 정보를 얻는다고 답했다. 7명 전원이 SNS나 인터넷 블로그에 책 읽은 기록을 남긴다고 했고, 북스타그램 계정을 별도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불법 촬영 동영상 에피소드가 나오는 윤이형의 소설 『붕대 감기』와 최은영·장류진의 소설, 박상영 산문집 등을 꼽았고,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을 읽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3명이 읽고 싶다, 2명이 모르겠다, 1명이 계획 없다, 1명이 이미 읽었다고 답했다.
 
동성결혼·비혼은 대부분 찬성이었고 인국공 사태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를 보였다. 1983년생 이예주씨는 가정·직장에서의 여성 차별 문제가 “곳곳에 존재한다”고 답했고, 85년생 홍인선씨는 “종종 페미니즘 책을 읽고 SNS에 공유한다”고 했다. 96년생 취준생 B씨는 최근 가장 안타까웠던 사건으로 n번방 사건을 꼽았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도움말 주신 분=문학평론가 소영현·김영찬, 민음사 서효인·박혜진, 문학동네 이상술, 두비출판사 원미선 대표,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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