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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서울에 용적률을 허하라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빨대 꽂힌 세대. 듣는 순간 앞이 캄캄해진 말이다. 그들은 졸업한 내 제자들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끔찍한 단어로 자신들을 지칭하게 만들었을까. 그 배경에 집이 놓여있다, 아파트로 통칭되는.
 

전원도시 꿈꾸며 탄생한 강남
지금은 메트로폴리스의 중심지
밀도 규제로 세대와 계급갈등
서울의 주거지 용적률 높여야

여전히 ‘인서울’이라는 단어로 대학입학의 성패가 평가된다. 그러나 그 대학교들의 기숙사 수용인원 사정은 대체로 형편없다. 그나마 대학교가 기숙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이를 막아선 집단이 대학가 원룸 주택 소유자들이다. 겨우 집 하나 가진 노년층인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하지 말라고 했다. 방을 쪼개고 갈라내 불법 증축한 비루한 공간으로 최대한의 월세를 빨아내던 이들이다. 학생들에게 사회적 약자 행세하던 이들은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였다.
 
꿋꿋하게 졸업한 제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좋은 직장 얻었다. 그런 직장은 대개 도심에 있다. 그러나 주거지는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통근시간 3시간을 빼곡한 지하철이나 도로에서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임금을 모아서는 집을 마련할 길도 없다는 좌절이 그들의 몫이었다. 영원히 전세와 월세를 빨리며 살아야 한다는 구조에 대한 분노의 단어였다. 빨대 세대.
 
만발하는 대책을 비웃으며 아파트값은 여전히 올랐고 미소와 절규가 교차한다. 아파트값이 오르는 건 아파트값이 오르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속적 공급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백약이 무효하다. 그래서 부족하다는 택지공급을 위해 신도시 개발안을 꺼내놓는다.
 
특정한 곳의 집값이 앞장서 오르는 이유는 살기 좋기 때문이다. 주거지 평가에서 교육경쟁력은 한국의 특이변수고 짧은 통근거리는 세계의 공통변수다. 두 변수의 교집합을 그리면 한국에서는 서울 강남이 나온다.
 
이 강남의 출생 근원을 찾으려면 산업혁명까지 거슬러 올라야 한다. 인클로저운동으로 토지 잃은 농민들이 결국 도시로 몰려들어 노동자가 되었다는 영국 이야기다. 도시과밀이 문제가 되자 산업혁명의 주인공인 중산층이 도시를 버리고 교외로 향했다. 햇빛 충만하고 텃밭·녹지로 둘러싸인 이 저밀도 주거지를 영국에서 전원도시라 불렀다. 새 도시의 블록 크기는 초등학교의 보행거리 단위로 계획하자는 제안은 미국에서 나왔다. 근린주구이론이라 부른다.
 
한국의 계획도시들은 영국과 미국의 두 이론을 강령으로 삼았다. 서울의 강남에서 출발했다. 일조량 절대확보는 전원도시의 원칙이고 도시블록 복판에 자리 잡은 학교들은 근린주구이론의 증거다. 그런데 지금 강남은 교외가 아니고 도시를 넘어 초거대도시, 즉 메트로폴리스의 한복판으로 변했다. 강남은 뉴욕이나 런던에 가깝다. 질문은 메트로폴리스 복판의 전원도시 유지가 옳으냐는 것이다. 용적률이 변수다.
 
용적률 제한으로 도시밀도 규제를 시작한 것은 뉴욕이다. 그런데 지금 뉴욕 중심부의 용적률은 1800%를 넘고 구도심 주거지도 500%를 넘는다. 런던은 몇 곳 예외 빼고 도시 전체의 용적률 상한이 일괄 500%다. 전면도로 면적도 기준에 포함한 것이니 우리 계산으로 치면 훨씬 높다. 300%를 넘지 못하는 서울의 주거지보다 훨씬 고밀도시들이다. 원래 도시는 이렇게 모여 사는 곳이다.
 
얽힌 실타래를 푸는 방법은 가끔 전복적 사고다. 용적률 상한제가 아니고 용적률 하한제. 지금보다 훨씬 고밀한 아파트단지로 더 많은 공급을 보장하지 않으면 아파트 재건축을 불허하는 것이다. 용적률 상승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일조권이다. 거실에 4시간 직접 태양빛을 받아야 한다는 금과옥조. 이건 전원도시에서는 가치지만 메트로폴리스에서는 사치다. 기성세대가 확보하려는 일조시간이 그만큼 긴 시간의 지옥철 통근을 다음 세대들에게 요구한다면 공평한 사회 아니다.
 
원도심과 산지 주변을 제외한 서울의 용적률은 높여야 한다. 고밀주거의 실험은 이미 상업용지의 주상복합 아파트와 주거용 오피스텔에서 충분히 시행되었다. 고밀주거가 불편하면 그 공간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전원도시로 이주하면 된다. 용적률 증가로 추가공급되는 아파트 물량을 일반분양 몫으로 생각하면 이것도 곤란하다. 최소 사업성 확보를 위한 분량 외에는 공공임대주택으로 당연히 환수되어야 한다. 황금분할의 구분선은 사안마다 다르겠다.
 
한국은 주거 상속으로 금이 그어진 계급사회에 진입했고 금 너머 계급구성원을 금수저라 표현한다. 두 계급 사이에 다리는 무너졌고 사다리는 넘어졌으니 오직 빨대만 빽빽이 가로지르더라고 분개한 것이 내 제자들이다. 건강한 전원도시가 건강하지 않은 사회불만을 키우는 텃밭이라면 우리는 전원도시를 포기해야 한다.
 
역병창궐로 세상이 어수선하다. 코로나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건 대인밀도지 주거밀도가 아니다. 위험한 건 잦은 이동인데 낮은 주거밀도는 이동거리를 증가시킨다. 신도시개발은 다음 세대에 넘겨줄 녹지에 꽂는 빨대다. 더 많은 도로와 자동차와 화석연료를 그 빨대가 빨아들인다. 그리고 소중한 시간을 빨아 길 위에 뿌린다. 우리는 좁은 땅에 더 빽빽이 모여 살아야 한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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